• 이란침공, 53년 전엔 쿠데타 이젠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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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05일 09: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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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CIA가 주도했던 이란의 쿠데타는 최초의 CIA 주도 쿠데타로 기록된다. 1953년 CIA가 주도한 쿠데타로 이란의 민족민주적인 정권이 붕괴된 역사적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란에서의 쿠데타를 성공한 뒤부터, CIA는 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대륙에서 친미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수많은 쿠데타를 기획하고 성사시켰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란과 미국의 적대적인 대립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란 쿠데타 배후 조종의 원조는 영국

       
     
    ▲1979년 이란 혁명 사진=스위스 인디미디어
     

    2차대전 이전의 중동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이 패권을 쥐고 있었다. 이란은 영국이 군사적으로 점령하여 석유를 독점하던 시대가 있었다. 1921년 영국은 쿠데타를 지원하여 이란에 ‘샤’ 국왕을 권좌에 앉혔고 이를 통해 석유자원을 점령했다.

    영국은 ‘앙글로-이란오일회사(AIOC)’라는 이란에서 가장 큰 석유회사를 운영하면서 이란의 석유를 통째로 독점해왔다. AIOC는 나중에 BP(British Petroleum)라는 이름으로 회사가 바뀐다. 석유회사가 이란에 지불한 로열티는 순이익의 26%에 불과했는데, 영국에 납부한 소득세가 이란에 지불한 로열티보다 훨씬 더 많았다. 무엇보다도 이란에서 생산된 석유를 이란국민들에게 높은 가격으로 되팔면서 이중의 이익을 올리기도 했다.

    2차대전이 끝나면서 이란에도 민족주의바람이 몰아쳤고, 영국이 소유하던 석유회사를 국유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당시 이란의 샤 국왕의 아들인 젊은 국왕 샤 팔레비가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의회의 권력이 국왕의 권력을 압도했다.

    51년 석유산업 국유화하자 미·영 합작 쿠데타 음모

    1951년, 이란의회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할 안건을 정식으로 통과시키면서 모사데크 박사를 수상으로 선출했다. 모사데크 수상이 선출되고 의회의 석유국유화 결의안이 통과되자 당시 황금알을 낳던 석유회사를 잃을 위기에 처한 영국은 금수조치의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의 수상이던 처칠은 이란의 모사데크 수상을 공산주의로 몰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쿠데타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쇠퇴해가던 영국의 힘만으로는 쿠데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영국은 미국을 끌어들였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트루먼에게 이란의 쿠데타를 제안하면서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 당하기도 했다. 트루먼에 이어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당선되자 이란에서의 쿠데타작전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정부는 쿠데타작전인 일명 ‘아작스’를 위해 100만 달러를 승인했다.

    미국의 CIA와 영국의 MI6는 이란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던 모사데크 정부를 약화시키기 위해 정부관료와 의회지도자, 언론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면서 모사데크 정부를 비난하는 근거없는 유언비어를 유포시키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이란의 민심을 혼란시키기 위해 테헤란 시내에 방화를 하기도 했고 청부업자들을 동원하여 반정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국민 지지 절대적이었던 모사데크 정부 몰아내려, 방화 – 유언비어 유포

    또한 이들은 이란의 종교지도자들을 들쑤셔 "공산주의자인 모사데크 정부가 이슬람교를 탄압할 것"이란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CIA는 이란의 군부지도자들도 매수하여 쿠데타계획을 착실하게 진행시켜 나갔다.

    1953년 8월 19일, 미국과 영국의 정보부는 그 동안 매수했던 군부의 지도자들과 병사들을 총집결시켜 모사데크 정부의 청사와 관저를 공격하여 300여명의 사상사를 발생시키면서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나중에 모사데크는 체포돼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투옥됐고 이탈리아로 망명했던 샤 팔레비국왕은 이란으로 귀국했다.

    쿠데타가 성공한 뒤, 물론 국유화된 이란의 석유회사는 컨소시엄으로 넘어가 영국이 50%, 미국이 40%를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민주정부가 무너진 뒤부터 샤 팔레비 국왕이 무자비하게 통치했던 이란은 한번도 정치적 평화가 이뤄진 적 없었다.

    국유화 된 석유회사 다시 미·영 손으로

    1953년 미국과 영국의 정보부에 의해 주도된 쿠데타가 비록 성공하기는 했지만 지난한 이란민중들의 저항은 1979년 호메이니혁명을 성공시켰다. 결국 이란에는 반미 신정독재체제가 들어섰고 미국과 영국은 이란에서 모든 것을 잃고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했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이던 올브라이트는 "이란의 쿠데타가 이란의 정치적 발전을 후퇴시켰다"면서 "왜 이란이 계속 반미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자책적인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했다.

    이미 53년이 지났지만 과거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1979년 이란에서 축출된 미국은 다시 이란으로 돌아가 이란의 석유를 점유하기 위해 핵문제를 부각시켜 군사적 타격의 수순을 밟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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