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하고 망령되다는
‘망초’ 풀이름과 광복절
[푸른솔 식물생태] 풀과 민초의 삶
    2018년 08월 14일 11: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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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생각하는 어떤 풀이름

망초<Conyza canadensis (L.) Cronquist(1943)>는 국화과 망초속의 두해살이 풀이다. 북미원산의 귀화식물로 조선말 개항기에 국내로 유입되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늦은 여름과 가을에 싹을 틔우고 그 잎은 로제트형으로 바닥에 붙어 겨울을 나서 이른 봄에 줄기를 위로 올려 자란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망초라는 식물명은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기록되어 국가표준식물목록(2017)에서 추천명으로 사용하는 이름이다. 먼저 조선식물향명집의 기록을 살펴 보자.

Erigeron canadensis Linne ヒメムカシヨモギ (歸化)
Mangcho 망초
<정태현외 3인, 조선식물향명집, 조선박물연구회刊(1937),p165>

이렇게 기록된 ‘망초’라는 이름은 도대체 어떤 유래를 가지는 것일까?

경기도 화야산

경기도 분당

경기도 분당

경남 중부지역

망초라는 이름의 유래를 둘러싼 견해의 대립

이에 대하여 강원대 명예교수인 이우철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래] 망초(亡草), 기주일지호(祁洲一枝蒿). 구한국 말 쇄국정책을 완화하자 서세(西勢)의 문물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유리그릇과 같이 파손되기 쉬운 물체 사이사이에 보첨으로 끼워서 들여온 북미 원산인 귀화식물로, 이 식물이 들어온 뒤에 나라가 망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우철, 한국식물명의 유래, 일조각(2005), p216>.

망초라는 식물명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이었고, 다들 이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해석에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시는 분이 있다. 그분 이야기를 다소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보자.

“망초라는 이름은 처음에 ‘망쵸’ 또는 ‘망국초’로 기록된 바 있다(森, 1921). 개망초는 앞서 기록된 망초란 이름에 ‘개’가 더해진 것이다. 그런데 망초(정태현등, 1937)란 한글명은 이 식물이 나타나면서 나라가 망했다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우철, 2005)이라고 한다. 씁쓸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패배의식을 심어주는 비루(鄙陋)한 명명이다….(중략)…많고 많은 신귀화식물종들 가운데 유별나게 이 종을 그렇게 망할 ‘망(亡)’ 자의 망초라고 이름을 만들어 붙였다는 것에 그 연유를 찾아볼 수가 없다. 망초의 ‘망’은 분명 ‘망(亡)’ 자가 아니다. ‘망(亡)’으로 망초를 지었다고 한다면, 일제의 교묘한 망령(亡靈)이다. 잡초, 풀 우거질 ‘망(莽)’의 망초(莽草, 망풀)(한진건 등, 1982)라는 기록이 있다. 망초는 그렇게 묵정밭에 우거지는 잡풀이니, 딱 맞아 떨어지는 명칭이다.”<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1, 자연과 생태, p161 이하>

요약하면, 망초를 ‘망할 망’의 의미의 망초(亡草)라고 해석한다면 비루한 명명이고 일제의 망령이기에 ‘풀우거질 망’의 망초(莽草)로 해석되고, 그러한 해석에 대한 논거도 있으며 생태적으로 그러한 해석이 딱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맞는 말일까?

망초는 왜 나라를 망치는 망국초(亡國草)가 되었을까?

먼저 김종원 교수의 주장, “풀 우거질 ‘망(莽)’의 망초(莽草, 망풀)(한진건 등, 1982)라는 기록이 있다”는 내용을 살펴보자. 그가 인용한 ‘한진건 등, 1982’는 한진건외 3인, ‘한조식물명칭사전’, 료녕인민출판사(1982)를 의미한다.

그 책 p197은 기재 내용을 보면 ‘飞蓬 망풀(飞蓬油<商品名) 망초’라고 기재한 것이 전부이다. 약간의 해설을 가해 보면, 중국명으로는 비봉(飞蓬 : 직역하면 나는 쑥이라는 의미)이라 하는데 기름을 짜서 비봉유라는 상품을 만들고, 조선명은 ‘망풀’ 또는 ‘망초’라는 것이다. 그곳 어디에도 망초 또는 망풀을 풀우거질 망의 莽草(망초)로 해석하는 내용은 없다.

다음으로 망초는 묵정밭에 우거지는 잡풀이니, 莽草(망초)라는 이름이 딱 맞아 떨어지는 명칭이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망초라는 이름이 채록될 즈음인 1927년 7월 12일 동아일보는 “두려운 赤痢病”이라는 제목하의 기사 중에 “이로 보면 우리에는 衛生的 未開墾地가 多하다. 이 未開墾地로부터 赤痢病병이 猖獗​함은 比컨대 莽草가 무성함과 他異가 無하다.” 라는 내용이 있다.

피가 묻어나는 설사를 하는 적리병은, 조선에는 위생적이지 않은 미개간지가 많고 이 미개간지로부터 적리병이 창궐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잡초가 무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그것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의미)는 내용의 기사이다. 이 기사를 살펴보면 莽草(망초)는 특정 종(species)의 식물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라 미개간지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여러 종류의 잡초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김종원 교수가 말하는 생태적 특징과 딱 맞아 떨어지기는 하지만, 특정 종의 식물인 망초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莽草(망초)를 국화과의 두해살이 풀인 ‘망초’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은 다음 문헌을 살펴보면 보다 명확하다.

“莽草(망초) [植] 名 木蘭科에 屬하야 暖地에 自生하는 常綠樹니 高가 十餘尺에 達홈. 葉은 橢圓形으로 互生하고 花는 葉腋에 生하야 黃白色의 細長한 花(?)으로 成하며 果實은 輪狀으로 叢集한 乾果니 猛毒이 有하야 往往히 人을 斃함이 有홈. 葉은 乾燥하야 抹香을 製홈”<조선총독부 사서관실 사서위원회, ‘조선어사전’, 조선총독부(1920)>.

한자가 많아 어렵게 보이지만, 莽草(망초)라는 제목하에 목란과(木蘭科; 현재의 목련과)에 속하는 목본성 식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총독부가 망령된 생각으로 莽草(망초)라는 식물명을 왜곡했을까?

다른 문헌을 살펴보자. 일제강점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19세기 초반에 저술된 것으로 알려진 광재물보(廣才物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莽草 木如石南而無花 臭如椒 一說乃藤生者也 諸家皆謂之草 而’本草’居木也 菵草 芒草 鼠菵仝”[莽草(망초)는 石南(석남)을 닮은 나무이지만 꽃이 피지 않는다. 냄새는 산초나무와 비슷하다. 일설에는 덩굴로 자란다고도 한다. 다들 이를 풀이라고 하고 있지만 ‘본초강목’은 나무로 산다고 하였다. 菵草(망초), 芒草(망초), 鼠菵(서망)이라고도 한다](저자미상, 광재물보, 19세기 저술 중 ‘莽草’ 부분 참조; 정양원외 2인, ‘조선후기한자어휘검색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163 참조).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莽草(망초)는 중국에서 전래된 약재의 이름으로 붓순나무과의 상록 활엽 소교목인 붓순나무를 지칭하는 것인데(김창민외 4인, 한약재별감, 아카데미서적 참조),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제주도 및 남부지방에 붓순나무가 서식하는지 여부가 밝혀져 있지 않았고, 중국의 본초강목에 따라 목본으로는 이해하였으나 자세한 내용이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위와 같이 기록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옛 문헌에서 莽草(망초)는 목본성 식물인 ‘붓순나무’를 가르키는 이름이었다(다른 용례가 발견되기는 하지만 본 글의 논지와는 상관이 없으므로 그에 대한 고찰은 생략한다). 따라서 국화과의 초본성 식물인 망초에 대하여 목본성 식물인 한자어 ​ 莽草(망초)를 관념화한다는 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그럼 이우철 교수는 왜 망초의 이름이 ‘망할 망’의 亡草(망초)에서 유래한다고 보았을까? 이것은 김종원 교수가 지적하듯이, 조선식물향명집이 상당한 영향을 받았던 조선식물명휘(1921)에서 Erigeron canadensia Linne에 대한 조선명을 ‘망국쵸(mangukcho), 망쵸(Mangcho)’로 기재한 것과 관련이 있다(森爲三. 조선식물명휘, 조선총독부, p357 참조). 망초를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한, 망쵸와 함께 기록된 ‘망국쵸’는 나라를 의미하는’국(國)’이 있어 그 앞의 망을 亡(망)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문헌이 또 있다.

​​”망초, 망국초, 철도풀(京畿)”[이덕봉, ‘조선산 식물의 조선명고’, 한글5(한글학회, 1937.1.) p12].

이덕봉 교수는 조선식물향명집(1937)의 공동저자 중의 1인으로 조선식물향명집이 1937.3.에 발표되기 직전에 조선식물향명집의 내용 중 국화과에 대하여 위 논문을 통해 미리 소개하였다. ‘한글’은 조선어학회가 한글의 보급을 위한 편찬한 잡지이었다. 이글에서 이덕봉 교수는 망초에 대하여 망국초로도 쓰인다는 것을 명시하면서, 망초, 망국초 및 철도풀 모두 경기도 지역의 방언을 채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망초도 같은 이름으로 망국초가 있으므로 망한다는 뜻의 ‘亡'(망), 즉 나라를 망치는 풀이라는 의미가 분명하다. ‘철도풀’의 ‘철도’는 기차가 다니는 길인 철도(鐵道)를 의미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진 우리말이 없다는 점에서 또한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철도는 1896년에 미국인 모스와 체결된 계약에 따라 경인선이 제일 먼저 건설되기 시작하였고, 1899년에는 이르서는 경부선의 건설작업이 시작되었다. 철도풀은 북미 귀화식물인 망초가 이즈음의 철도가 건설되는 경로를 따라 급속하게 번져 나가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던 모습을 형상화한 이름으로 이해된다.

한편 여기서 주목할 것은 조선식물향명집은 (i) 과거 수십 년간 조선각지에서 실제 수집한 향명(즉, 조선인이 널리 사용하는 이름)을 주로 하고, (ii) 종래 문헌에 기재된 것을 참고로 하되, (iii) 그래도 조선명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학문상 및 실용상 부득이한 경우)에는 새로운 이름을 신청하였는데(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 참조), 위 ‘조선산 식물의 조선명고’는 조선식물향명집에 실린 국화과 139종에 대하여 위 (i), (ii), (iii)의 유형 중에 어디에 속하는지를 밝혀 놓았다는 점이다.

​위 ‘조선산 식물의 조선명고’에 따르면 망초라는 이름은 실제 경기도 지방에서 사용하던 망초, 망국초, 철도풀 중에 ‘망초’를 대표적인 이름으로 보고 추천명으로 기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이 임의로 ‘망초’라는 이름을 명명한 것이 아니라 19세기말의 개항기부터 조선식물향명집이 저술된 1937년 3월까지 사이에 이 식물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 민중들 사이에 생겨났던 것이다. 그렇게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이 채록되어 기록된 것이 1921년의 ‘조선식물명휘’, 1937년 1월의 ‘조선산 식물의 조선명고’, 1937년 3월의 ‘조선식물향명집’이었고, 조선식물향명집은 여러 이름 중에 ‘망초’를 널리 사용되는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이름으로 보고 이를 기록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김종원 교수가 생각하듯이 망초라는 이름은 조선식물향명집에 의하여 비로소 명명(!)된 것이 아니었다. 조선식물향명집은 그말을 사용하였던 민중들의 언어를 린네의 분류학에 맞추어 반영하였을 뿐이었다. 그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패배의식이고 비루하며 일제의 망령이라는 비난은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를 살아 간 민중들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망초가 도입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귀화하던 시기는 외세에 저항하던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피로써 진압된 이후로 나라의 형편은 급격히 기울어 일본과 서구열강으로 급속하게 넘어 가던 때이었다. 탐관오리의 수탈과 외세의 침탈에 제대로 된 저항이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낯선 풀들이 새로이 건설되던 철도길을 따라 급속하게 전국으로 번져가는데, 풀발, 길가 묵밭 상관없이 심지어는 경작하는 밭에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들어오고, 번식력이 좋아 제거를 해도 또 돋아나는 풀. 변변한 농약조차 없어 일일이 손으로 뽑지 않으면 경작지에서 제거조차 힘든 상황.

고통. 애환. 슬픔, 절망, 울분, 원망들이 서리고 그래서 이름이 나라를 망하게 한 풀이어서 망국초이고 줄여서 망초이다. 많고 많은 신귀화식물종들 가운데 유별나게 이 종을 그렇게 망할 ‘망(亡)’ 자의 망초라고 이름을 만들어 붙였다는 것에 그 연유를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나라가 망하는 시기와 외국으로부터 귀화시기가 겹쳐있고 번식하는 행태와 식물 재배에 삶을 의존하는 농경사회에서 생겨날 수 있는 이름이고 그리 생겨난 이름이라는 것은 망초의 또 다른 이름인 망국초와 철도풀이 입증하고 있다.

마치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슬프고 아픈 이야기이지만 잊지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기억해야만 한다. 식물명의 국명은 학명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식물명명규약(The Internation Code of Nomenclature for Algae, Fungi and Plants)의 적용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식물 국명은 그 언어권을 가진 지역의 사람과 그 지역에 함께 살아가는 식물이 맺는 관계를 설명하는 역사이고, 식물 국명이 그러한 역사를 담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다.

​이것이 비루한 일인가? ​​이것이 패배의식이고 일제가 심어 놓은 망령인가?​ 하루하루를 힘들여 살아가는 민초들과 달리 고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마다 주관은 다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1944년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나라를 망치는 풀인데도 사람들은 망초를 식용식물로 이해하고 이를 먹기 시작했다는 기록도 보인다[林泰治, 구황식물과 그 식용법(救荒植物と其の食用法), 동도서적(1944)]. 민초들의 삶이야 늘 비루하고 하물며 일제강점기를 죽지 못해 살아야 했던 사람들로서는 현재 시각으로 상상하지 못할 어려움들이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하찮은 잡초 하나를 바라보면서 나라가 망했음을 잊지 않았고, 일제가 세운 조선총독부가 우리의 나라가 아니었음을 깨우치고 자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주는 것, 비록 나라를 망친 풀이라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있는 한 그것은 비록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저항이고 새로운 일어섬이 아니었을까? 바로 그들이 이 나라를 세우고 끌어왔던 실질적 힘이였기에.

또 다시 광복절을 맞이하여 나라를 빼앗기고 외세에 붙어 버린 위정자들과 수탈에 대한 원망과 설움이 뒤섞여 생겨난 이름 망초. 그 풀을 보며 왜 식민의 시대를 거치게 되었는지,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역사, 바람에 먼저 드러눕지만 언제나 먼저 일어서는 풀의 굳건함과 그와 닮은 민중들의 삶에 대해서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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