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 시대에
    ‘각자도생’의 사회가 빚어낸 촌극
    [에정칼럼] 에어컨·누진제 넘어 평등한 책임구조를
        2018년 08월 06일 10: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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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폭염의 유일한 해법이 에어컨을 켜는 것이 돼 버렸다. 또 매해 여름 냉방장치를 사용하는 탓에 늘 전기료 걱정이라는 기사는 나왔지만 이번 여름처럼 누진제가 직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 적은 없다.

    그래서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검색어 트렌드 분석 사이트를 이용해서 폭염과 누진제의 누적 현황을 봤다. ‘폭염’이라는 단어는 7월 16일부터 증가추세가 확연했지만 ‘누진제’라는 단어는 7월 22일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한국언론재단에서 제공하는 뉴스검색분석을 통해서 살펴보면, 폭염과 누진제를 연결해서 작성한 기사는 7월 16일 <매일경제>의 “탈원전 엎친데 폭염 덮쳐 … 예비전력 2년래 최저”라는 기사가 최초다. 이후 7월 23일에 같은 신문이 “폭염 한방에 전력예비율 위태 … 원전 없인 감당이 안 된다”라는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어서, 7월 24일 <서울경제>가 “밤새 에어컨 틀면 전기요금 얼마 나올까 … 미리 계산해보자”라는 기사를, 다음 날 <헤럴드경제>가 “에어컨, 열대야로 밤새 틀었는데 … 전기요금 ‘폭탄’?”이라는 기사를 내보낸다. 그리고 산업통상자원부 백운규 장관이 25일 기자회견을 통해서 전력수급에는 크게 이상이 없다는 발표를 하고, 이후 ‘탈원전’ 정책과 전력예비율의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것이 밝혀지는 해프닝이 이어진다.

    이후 최초 탈원전과 폭염을 이어서 문제제기했던 <매일경제>는 7월 25일 “찜통에도 전기료 무서워 에어컨 못 켜 … 두 달은 누진제 폐지를”이라는 기사를 내보낸다. 이후 거의 모든 언론에서 이런 논조의 기사가 발견된다. 해당 기사는 청와대 청원을 사례로 들면서 국민들이 전기료 누진제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 청와대 청원에는 얼마나 많은 누진제 청원이 올라왔을까. 8월 4일 자정을 기준으로 이번 여름과 연관된 누진제 폐지 청원은 650여건 정도다. 내용에 따라 직접적으로 전기료 누진제만 다루고 있지 않는 청원이 있어 대략적으로 그렇다. 흥미로운 것은 <매일경제>의 기사와 다르게 거의 모든 청원들은 청원인원이 100명도 넘지 않는 그야말로 ‘밀어내기식 글쓰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또한 최초의 청원이라 할 수 있는 5월 5일자 “여름이 무섭습니다! 전기누진제 좀 손 좀 봐 주세요”라는 청원의 내용은 한전의 성과금을 문제 삼으며 누진제 폐지를 언급했고 이후 산업용 전기료와의 형평성을 언급하며 가정용전기의 누진제에 대한 폐지 의견이 나오다가 7~8월 한시적인 누진제 폐지 청원은 7월 24일에 최초로 등장한다. 적어도 공론의 장에서 현재 논란 중인 전기료 누진제에 대한 폐지 여론은 원전을 키워드로 전력예비율 문제를 제기하다가 전기료 ‘폭탄’이라는 논리로 전환한 언론의 논조와, 불합리한 전기의 용도별 요금제에서 누진제에 대한 폐지를 요구하다 에어컨을 마음대로 켤 수 있는 권리의 문제로 확산되는 대중의 인식이 호응한 상황이다.

    이런 흐름이 뜻하는 것은 ‘폭염을 막기 위해 에어컨을 켤 수 있도록 전기료 부담을 줄여 달라’라는 요구가 가상의 것이거나 논리가 희박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전기료 체제 자체가 오래된 모순을 드러냈으며 더 이상 임시방편적인 방법으로는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밝힌 탈원전 정책은 적어도 당분간은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다. 오히려 일정 시기 동안은 가동되는 원전이 늘어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탈원전이라는 정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요금이라는 형태로 미칠 것이라 우려한다. 또한 기후변화에 따른 다양한 자연재해가 생겨나고 심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이 별다른 것이 없으니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자력구제의 심리가 커진다.

    사회분위기는 탈원전인데 기후변화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는 스스로 구제해야 하는 상황이니 이런 상황을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 과정에서 주요한 경제지들은 이 문제를 ‘탈원전’의 문제로 끼어 넣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에어컨 판매량이 역대 최고라는 기사를 써대도 점차 고급화되어가는 에어컨 덕에 가격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은 뉴스조차 되지 못하고 애꿎은 전기료 탓을 하는 셈이다.

    방송화면

    에어컨 가동의 권리?

    사실 에어컨으로 폭염을 버틴다는 것은 임시방편이다. 여름철 자가용 옆을 지나면 열기가 나오듯이 에어컨은 오히려 열을 더 발생시킨다. 전기로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있는 공간’이 시원해질 뿐이다. 무엇보다 에어컨을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을 사회적 약자로 보는 관점이 아직은 낯설다. 이제나 저제나 선풍기가 최대의 냉방도구인 가구들이 우리 머리 속에 있는 빈곤층의 모습이다.

    에어컨을 켜는 것이 권리라는 주장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할만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하는 순간 이상해진다. 에어컨이 1대 있는 집과 3대 있는 집에 권리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 차이가 단지 경제력에 의한 것이라면 이것이 존중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 떠나서 누진제가 문제라고 할 때 그것이 불공정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비용이 많아 나와서가 아니라 산업용과 일반용에는 없는 누진제가 가정용에만 부과되는 불평등 때문이지, 누진제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실제로 가정용 전기료 체계의 누진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2016년 당시에도 논란의 핵심은 과도한 전기 용도별 요금제도의 차별 때문이었지 누진제 자체는 아니었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차별적인 구조를 개선하기 보다는 오히려 가정용 누진제도를 개편하는 식으로 대응하다 보니 누진제가 가지고 있는 수요관리 정책으로서의 기능을 스스로 무너뜨린 부분이다. 오히려 상업과 제조업의 전기요금 부과체계에 누진제를 적용해서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주체들이 동시에 전기사용에 대한 부담을 진다면 누진제 자체가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폭염이 자연재해라면 구태여 24시간 가게 문을 열고 장사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고 전기를 쓰면서 야근에 특근을 하는 산업구조가 문제다. 여기서 발생하는 경제 주체들의 손실은 사회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그것이 정부의 역할인 셈이다. 이를테면 지금도 건설현장에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휴식시간제는 ‘쉴수록 손해가 가는 사업자와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같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가정에서 에어컨을 켜다가도 한숨을 쉬며 끄고 동네 마트로 향하는 서민들이 전기요금에 분통이 터지는 것은 대형마트의 사업주와 자신이 부담하는 전기요금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대는 탈원전에, 노동시간 단축으로 변해가는데 정부가 생각하는 산업구조와 기업들이 고민하는 경영방식이 전근대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인 인지부조화가 ‘에어컨을 켜는 것이 권리다’라는 해괴한 논리로 등장하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이번 여름과 같은 폭염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될 장기적인 변화의 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단순히 일시적인 처방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시민들 개개인이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방치하여 비싼 에어컨을 구매하고 이를 틀 수 있는 자유를 외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대책을 내놓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가야 한다. 하지만 지난 7월 정부가 내놓고, 뒤이어 부산, 서울 등 지방정부들이 내놓는 폭염대책이라는 것은 이번 폭염을 일시적인 사건으로만 접근하는 임시방편적인 내용 뿐이다.

    폭염 속의 건설 현장 모습(방송화면)

    각자 도생 대신에 공평한 분담과 구조적 대안 필요

    이를테면 무더위 쉼터 운영과 같은 경우를 보자. 일선 관공서 민원실을 쉼터로 제공한다는 것은 관공서의 업무행태에 맞춘 편의적인 접근이 아닌가. 왜 거리의 수많은 빌딩의 1층은 그렇게 시원한 바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방되지 않나. 하청에 하청을 거듭해 하루 공사가 하도급 건설자의 생존을 좌우하고 그에 고용된 건설노동자의 일당이 되는 구조를 내버려 두고, ‘왜 쉬지 않는가’라고 다그치는 것이 정말 현실적인 대안인가. 아예 폭염을 고려하여 여름이 포함된 건설사업의 경우에는 공사중단 기간을 고려하여 계약을 하고 이를 고려한 급여 지원 대책을 마련하지 못할까. 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더 치명적인 폭염에 대해 이들이 임시로 거주할 수 있는 대피공간을 마련해주지 못하고 그 집에 방치 시키면서 병원으로만 옮기고 있을까.

    에어컨으로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도, 이겨 낼 수도 없다. 그냥 일시적으로 안의 더위를 밖으로 보내서 회피하는 수단이다. 일시적으로나마 누진제를 완화해서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방방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있는 집과 거실에 에어컨 한 대를 두고 온 가족이 지내는 가정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타당한가. 오히려 여름동안 전기료의 납입 유예를 신청하도록 하고 그 대상자 중에서 일부는 대납을, 일부는 6개월 정도 분할하여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취약계층의 경우에는 사후에 전기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고 다른 가정은 일시에 높은 전기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다행 아닌가. 이렇게 발생하는 부담은 산업용 전기와 일반용 전기에 누진제를 적용하여 벌어들이는 수익금을 통해서 지원한다면 한쪽으로는 사회적 분배를 강화하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쪽으로는 전기요금의 부과체계를 둘러싼 용도별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라는 것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성장과 부의 결과라는 것을 지금 현 세대가 동등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우리의 부담으로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알다시피 원전 문제는 지금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직면할 문제다. 우리는 우리 세대가 풀지도 못한 문제더미를 지속적으로 다음 세대들에게 전가시키면서 지금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다음 세대의 삶이 집에 에어컨을 몇 대 가지고 있는가로 달라지게 하지 않을 요량이라면 지금 폭염 문제에서 에어컨 문제는 빼두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지금 벌어지는 문제를 각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서 분담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진제를 폐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전기를 과거보다 더 사용한다면 더 사용하는 만큼의 비용은 우리 사회가 성장한 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 한 쪽에서는 사상 최대의 에어컨 판매 수익을 올리고, 해당 기업의 주식은 뛰어 올라 배당금액으로 나눠질 것이다. 그 사이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한 대에 늙은 몸을 기탁해 있는 이들은 몇 천원에서 몇 만원으로 오를 전기료에 전전긍긍하며 생존을 이어간다. 이것은 누진제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의 문제다.

    일본은 누진제가 약해서 1.6배 밖에 차이가 안 난다고 하지만 한국은 기본료 자체가 싸다. 그러니까, 요금제라는 것은 비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사회에 맞는 가장 평등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짜야 한다. 적어도 이번 폭염이 기후변화의 문제라고 인정한다면 해답 역시 기후변화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개발국가형 요금제도를 통해서 기업에게 혜택을 주는 전기요금제를 고집하는 정부부터 제대로 된 관점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시민들에게 ‘각자 도생’을 강요하니까 에어컨도 기본권이 된 것이다. 여름엔 가게 문도 일찍 닫을 수 있게 하고, 공장도 쉴 수 있게 하자. 그래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 아닌가. [끝]

    필자소개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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