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광장에서
    고 박정기 선생 노제 치러
    아들의 동지가 된 아버지의 긴 여정
        2018년 07월 31일 05: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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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께선 이리도 착한 종철이를 앗아간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맞서 경찰의 방패막에 온몸을 부딪치셨습니다. 민주화를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다면 구둣발로 경찰 서장실 문을 박살내기도 했고, 부조리한 판사와 멱살잡이 하다가 감방살이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미치도록 종철이가 보고 싶을 땐 뒤돌아서서 혼자서 피눈물을 삼키셨습니다.”

    박종철 열사의 형이자 박정기 선생의 장남인 종부 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막내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지난 30여 년의 세월을 되새기며 이렇게 말했다.

    이소선 합창단의 추모노래(이하 사진은 유하라)

    왼쪽은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 오른쪽은 김세균 선생

    1987년 1월,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 선생의 민주시민장 노제가 31일 서울광장에서 치러졌다. 박정기 선생은 지난 28일 별세해 31일 부산 영락공원에서 화장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날 노제의 사회는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이 맡았다. 박 소장은 박정기 선생에 대해 “아들 잃은 부모일 뿐 아니라, 아들에 이어 가열찬 민주화 운동을 해온 분”이라며 “열사와 아버지가 꿈꾼 참세상, 참 민주주의 저희도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다짐으로 노제를 시작했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이날 노제엔 수많은 일반 시민들과 정치·노동·시민사회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소선 합창단과 장순향 한양대 교수는 공연으로 박정기 선생을 추모했다.

    장순향 교수의 추모 공연

    조사를 위해 무대에 오른 김세균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회장은 “유월의 아버지가 되시고 아들의 동지가 된 선생님, 박종철의 아버지에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신 선생님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의이었고 참스승이자 큰 어르신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선생님은 당신의 아들인 박종철과 함께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염원과 함성 속에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며 우리는 선생님을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은 “재작년 겨울, 이 나라의 민주화를 바라며 인간다운 삶을 열망하며 생명의 촛불을 불태운 우리 아이들의 의지가 이어져 촛불혁명의 결과를 낳았다. 우리 아이들의 죽음도, 그 아이들의 영정을 붙들고 걸어온 우리들의 지난 30여 년도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는 농성장에서, 누구는 철창 너머로, 또 누구는 길 위의 집에서 당신을 기억한다”며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자식들이 걸어갔던 그 험난한 길을 나섰던 당신의 삶은 우리를 인도하는 빛나는 등대와도 같았다”고 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박정기 아버님은 아들을 대신해서 수없이 많은 날을 탄압이 있는 곳, 희생당하는 자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함께 투쟁해오신 우리의 큰 동지였다”며 “박종철 열사의 항거와 항쟁정신이 1700만 촛불항쟁으로 더욱 밝게 타올랐듯이 민주노총이 70년 동안 겹쌓인 이 땅의 온갖 적폐를 걷어내고 아버님이 함께 만들고자 했던 세상을 앞당기겠다”고 말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이소선 어머님과 박정기 아버님께서 선두에 선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부모님들께서 앞장서서 투쟁하신 결과, 또 지난 30년간 고난 속에서 끝없이 헌신하시고 분투하신 성과로 아버님께서 그토록 염원하시던 민주주의와 자주통일, 민중생존권과 평등, 그리고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는 새 세상이 열리는 길목에 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상임공동대표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국가보안법과 보안수사대 폐지 문제 등을 언급하며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의 과제가 산적해있다”며 “이 모든 과제들은 살아남은 저희들이 힘을 합쳐 완수해내겠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아버님은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린 이 땅의 모든 아들은 아버님의 자식이었다. 당신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산증인이었고 역사였다”며 “서른 한 해 동안 지어오신 그 무거운 짐 이제 저희가 대신 지겠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유가족들과 각계 인사들은 박정기 선생의 노제를 마친 후 아들 박종철 열사가 있는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이날 오후 5시엔 모란공원에서 안치식을 진행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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