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라, '쇄국론' 비판하는 바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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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30일 01: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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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한미FTA만이 아니더라도 경제나 정치, 교육 등 어디서나 많이 듣는 말이 ‘경쟁력’이다. 치열한 국제경쟁, 거기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얼른 한미FTA를 체결하여 경제를 개방하고 선진국으로 가자. 한시가 급한 이때에 한미FTA를 반대하는 때아닌 쇄국론이 웬말인가!

    정부의 통상담당 관료들도, 보수언론도, 미국식 경제학 말고는 공부한 적이 없는 ‘우국적 지식인’들도 모두 이런 식이다.

    미국식 경제학만 공부한 ‘우국적 지식인’들의 한심한 발상

    일단 FTA 반대가 쇄국론이라는 수준 이하의 주장은 제껴두자. FTA를 체결하지 않은 지금도 한국 경제를 쇄국적이라고 말하는 건 아무 생각 없는 바보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FTA 아닌 것이 모두 쇄국체제라면, 미국과 FTA를 맺은 10개의 나라(요르단, 파나마, 싱가포르, 모로코, 멕시코, 캐나다, 칠레, 호주, 바레인, 이스라엘) 말고는 모두 쇄국체제라는 말인데, 이거 지지할 사람 찾는 거, 쉽지 않을 것이다.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거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살아남는 거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미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그것도 황급히 해야 한다는 논리는 중학교 교육이라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결코 쉽게 하기 힘든 터무니없는 비약이다. 경쟁력 없는 교육, 그게 그런 식의 허접한 말들을 지위와 나이, 직업을 막론하고 아무 부끄럼 없이 마구 쏟아내게 하는 원인이다. 정말 경쟁력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먼저, ‘경쟁력’이란 말부터 간단히 보자. 경쟁이란 말이 이처럼 생사를 건 문제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진화론’ 때문일 것이다. 개체들간의 경쟁, 자연도태와 적자생존, 진화, 이것이 다윈의 이름으로 19세기 이래 모든 영역에서 사용되던 진화라는 말의 이론적 배경이다. 머, 여기서 진화론에 시비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진화론에서 사용하는 경쟁이나 도태, 진화라는 말의 의미 정도는 좀 알고 말을 해야 경쟁력 있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쟁력’의 참뜻을 알고 얘기하라

    진화론에서 경쟁과 도태, 적자생존이 발생하는 전제조건은 환경과 관련되어 있다. 즉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는 것이고, 경쟁력이란 환경에 대한 적응능력이다. 따라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언제나 ‘좀더 완전한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는 흥미로운 예가 등장한다. 가령 대서양에 있는 마데이라 섬에는 다른 곳과 달리 한결같이 날개가 퇴화되어 제대로 날지 못하는 것들만 살고 있다. 다윈에 따르면 그 섬은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이었고, 따라서 제대로 날개가 달린 놈들은 날아다니다 바람에 날려가 모두 바다 속으로 ‘도태’되어 버리고 날지 못하는 놈들만 적응하여 살아남은 것이다. 즉 날개 없는 놈들이 마데이라 섬 같은 환경에서는 가장 경쟁력이 있었던 것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의 경쟁력은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는데 적합한 능력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환경이 달라지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조건이 달라진다. 산업의 자생력이 약한 곳에서 개방은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물론 지금처럼 개방이 불가피하다면 개방체제에 적응하여 살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 농산물 유예, 수퍼 301조는 눈에 안보여", 대책없는 한국 개방론자들

    이를 위해선 적응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미국도 호주와 FTA를 체결하면서 농산물에 대해선 장장 18년(!)의 유예기간을 설정했고(호주는 즉각 개방했지만), ‘완전개방’을 말로는 외치지만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반덤핑관세’라는 형식으로 강력한 보호관세를 유지하고 있다(악명 높은 슈퍼 301조가 그것이다).

    이 슈퍼301조는 FTA를 해도 철폐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이미 확고하게 표명한 바 있다. 낙농으로 유명한(상당히 경쟁력이 있는) 스위스는 미국과 FTA 협상을 추진하다가 자국 농산물 보호를 위해 FTA를 포기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농업이나 제조업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완전개방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대책 없는 개방론자들 말고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경쟁·개방에 관해 말할 때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첨단으로 가는 게 경쟁력을 확보해서 살아남는 길이라는 상식적 주장의 맹점이다. 첨단부문에서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그렇다고 전체 경제가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날짐승이지만 훌륭한 날개를 가진 독수리가 날지도 못하는 날개를 가진 비둘기보다 훨씬 급속히 도태되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훌륭한 날개가진 독수리가 비둘기보다 훨씬 급속히 도태되는 이유

    그런데 한미FTA를 추진하는 관리들의 주장은 이런 턱없는 상식에 호소하고 있다. “중국의 추격을 피할 수 없으니 제조업을 포기하고 서비스업을 빨리 선진화해서 경쟁력을 갖추자”는 이른바 ‘중국위협론’의 전략이 그런 경우다. 일단 한국의 서비스업이 FTA를 통해 개방된 환경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는 논외로 하자. 즉 그럴 것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나 ‘중국위협론’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중국의 추격’ 앞에서 제조업을 포기하면서 서비스업으로 성공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일단 제조업을 포기한다면, 제조업에 관련된 기업이나 노동자들은 어떻게 될까? 모두 선진화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거나 이직하게 될까? 선진적 서비스업이라는 게 법률사무소, 컨설팅회사, 보험회사, 은행 등인데, 그게 이들을 고용할 수 있을까? 한국의 전 산업을 서비스업화할 수 있을까?

    경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깡통’이 아니라면 “그렇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경쟁력 있는 서비스업이라면 ‘노동집약적’일 리 없으니 고용효과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럼 몰락한 제조업에서 밀려나온 노동자들은 어떻게 살아야할까?

    경쟁력 없는 존재니 도태되는 게 자연스런 일이라고 말할 것인가? 그게 경쟁력 있는 국가를 만드는 길일까? 아님 ‘복지국가’들처럼 실업기금으로 먹여 살릴 것인가? 그거야 말로 경쟁력 없는 경제로 빠져들게 되는 결정적 일보가 된다고들 하지 않던가?

    제조업에 어이없는 이미지 뒤집어 씌우는 <중앙일보>는 최악의 패배주의

    추격해오는 중국의 제조업에 대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을 찾기는커녕 이 모든 사태를 감내하면서까지 한국의 제조업을, <중앙일보>처럼 ‘가발공장’이라는 60년대식의 어이없는 이미지를 뒤집어 씌워 포기하자는 말이야말로 경쟁력이라곤 없는 최악의 패배주의 아닐까?

    농업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 농업이 미국농업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은 누가보아도 분명하다. 쌀의 생산비용이 4배를 넘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은 토지가 좁기 때문에 경쟁력을 확보해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 이 경우 경쟁력 없으니 포기하라고 하는 게 정부관리가 할 일일까? 농사를 포기하는 대신 선진화된 서비스업으로 가라구?

    그럼 평균 연령이 60에 가까운 농민들이 재교육 받아 컨설팅회사나 보험회사에 취직해서 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 역시 경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깡통’ 아니면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 이들은 어떻게 살라는 것일까?

    지금 350만 농민 가운데 다행히 반은 살아남는다 해도, 나머지 170만 농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서비스업에서 번 초과이윤을 그리로 돌린다구? 머,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그럴 거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그 돈을 그냥 줄 리는 없지 않은가?

    서비스 산업 선진화 누가 반대? 그걸 위해 농업·제조업 포기를 비판 하는 것

    그거야 말로 경쟁력 없는 실업자를 사회가 부양하는 거라며, 일 안해도 먹고 사는 풍토가 만들어질 거라며 부르주아들이 쌍지팡이 들고 결사반대할 것 아닌가? 그럼 그걸 받기 위해 나이든 농민들이 취로사업에라도 나가야 할까? 그러려면 취로사업을 위해 새만금 같은 거대 공사를 몇 개 더 벌려야 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면 사회복지사들이 지급하는 생활보조금으로? 이 역시 가능하다고 가정해도 멀쩡히 일하던 170만 농민들을 국가가 먹여 살리는 ‘거지’로 만들어버리는 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운영되는 경제가 과연 경쟁력 있는 경제가 될까?

    서비스업이라는 선진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추자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 제조업이나 농업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이 정말 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상승시킬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가 될 것인지를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서비스업에 경쟁력이 있는 것이 전체 경제가 경쟁력이 있는 것을 뜻하진 않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나 법률회사 10개가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선진화되어 살아남는 것보다는 수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수천 개의 부품회사와 연결되어 있는 자동차 회사 하나가 선진화되어 살아남는 것이 전체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는 걸 설명해야 할까? 그래서 개방경제론의 모델인 미국조차 자동차에 자국 내 부품을 사용한 정도(‘국산화율’)를 표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도태돼야 할 곳들 1순위는 통상관료들

    하지만 ‘국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말 강력한 도태과정이 필요한 곳이 있다. 관료들의 세계, 특히 통상교섭을 담당하는 관료들의 세계가 바로 거기다.

    ‘4대 현안’을 내주면서 아무 것도 받아온 것 없는 걸 ‘협상’이라고 하고 있는 관료들, 국책연구소의 어용연구조차 수치를 지우고 바꾸고 속여서 보고하는 관료들, 단 3개의 연구보고서만 갖고서도 ‘오랫동안 충분히 준비해왔다’고 생각하는, 아니 오랫동안 겨우 그것 밖에 준비하지 못한 관료들, 그리곤 협상을 위해서라며 모든 걸 비밀에 붙이기로 하고 심지어 협상도 하기 전에 협상결과를 3년간 비밀에 붙이기로 한 관료들.

    이들이야말로 무능하고 경쟁력 없는 관료들 아닐까? 이들이 정말 경쟁력 있는 국가를 만들 거라고 믿어야 할까? 이들이 이끄는 정부, 이들에 끌려가는 정부, 이거야말로 국가의 경쟁력을 최악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암적 요인 아닐까?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바로 이들을 제거하고 도태시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경쟁과 도태의 냉정한 법칙이 작동하게 해야 할 곳, 그것은 바로 이들 관료들의 세계가 아닐까?

    관료 무능 감추는 ‘비밀주의’ 전술 빨리 그만 두라

    그래서 꼭 말해두고 싶다. 한미FTA로 경쟁력 있는 개방체제로 가고 싶다면, 가장 먼저 관료들 자신의 세계부터 개방하여 무한경쟁체제로 가도록 해야 한다고. 남들을 경쟁체제에 밀어 넣기 전에, 자기 자신이 앞서 경쟁체제에 뛰어 들어가야 한다고. 무능을 감추는 비밀주의라는 비겁한 전술을 하루빨리 포기하라고. 그거야말로 당신 자신의 경쟁력을 낮추는 길이라고.

    그러나 그런 점에서, 관료들이 유능하다면 ‘철밥통’을 준들 무슨 상관이겠느냐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그의 안목을 근본에서 의심하게 한다. 이 경쟁력 없는 관료들이 그의 눈에는 철밥통을 차고앉아도 좋을 사람들로 보였다는 것일까? 철밥통을 주면 그나마 있던 경쟁력도 사라지고 만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

    대통령의 경쟁력, 그것은 일단 무능한 관료들도 유능한 관료로 만드는 것일 터이다. 무능한 관료들에게 철밥통을 주려는 대통령처럼 경쟁력 없는 것도 없을 것이다. 정말 경쟁력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안목도 없고 경쟁력도 없는 대통령 자신의 위치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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