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조밥,
    이웃을 환대하는 마음
    [밥하는 노동의 기록] 비둘기·난민
        2018년 07월 16일 09: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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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겨울, 우리 집 베란다를 자주 방문하는 비둘기들과 쌀을 나누어 먹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고 말라가는 게 눈에 보이니 도리가 없었다. 비둘기들은 춘삼월이 되어도 날이 궂으면 어김없이 베란다에 앉아 밥을 내놓으라고 울었다. 엄밀히 따지면 집 밖이지만 통념상 우리 집으로 치는 곳이니 그들도 나름 집에 온 손님이라 빈속으로 보낼 수 없었다. 드문드문 밥을 챙기는 사이 날이 더워졌고 나는 날개 달린 손님을 차차 잊었다.

    비둘기가 에어컨 실외기 뒤에 둥지를 틀었다는 것을 안 것은 이미 알을 낳았을 때였다. 나뭇잎을 주워 나를 때쯤 알았다면 망설임 없이 치웠을 것이다. 혹시나 싶어 포털에 ‘비둘기 둥지’를 검색하자 십오만 원이면 비둘기를 영구 퇴치해준다는 업체가 줄줄이 떴다. 그러나 이미 알을 품고 있으니 나도 자식 키우는 처지에 쫓아낼 수 없었다.

    예전에 남부터미널 근처에서 살았다. 지금은 남부터미널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 그 곳은 화물터미널이었다. 어머니는 그 곳에서 쌀을 샀다. 그 때는 쌀을 사면 기본이 한 가마라 기사 아저씨가 트럭에 쌀과 쌀을 산 사람을 싣고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터미널의 지붕에는 비둘기가 빼곡히 앉아있다가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쌀알을 콕콕 찍어먹으며 살았다. 기사 아저씨는 원래 여기가 그런 데가 아닌데 팔팔 올림픽 이후에 이렇게 되었다 했다. ‘그 때 싹 다 잡아 죽였으면 이럴 일이 없어요. 아주 골치가 아프다니깐. 똥이 말도 못해.’ 우리 집 베란다에서 태어난 걔는 화물터미널에서 쌀 주워 먹던 걔의 몇 대 손쯤 될까나. 군사정권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한 이벤트에 영문도 모르고 동원되었던 비둘기는 30년 후 도시의 ‘유해조수’가 되었다.

    평화의 상징이라 치켜세울 때나 유해조수라 깎아 내릴 때나 비둘기는 비둘기일 뿐이다. 상계동 주민들을 내치고 비둘기를 내치고 노동자를 내치고 성소수자를 내치고 길고양이를 내치고 여성을 내치고 유기견을 내치고 내칠 것이 아직도 남았나 싶은데 이제 우리는 멀리 예멘에서 제주로 몸을 피해 온 사람들을 내치자 한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민도 가는 마당에 죽지 않으려 살던 땅을 떠나온 것이 무슨 잘못인지 나는 모르겠다. 외국에 살며 때맞춰 차례, 제사 지내는 사람들 보면서 뿌리를 잊지 않았다며 감격스러워 하면서 여기 사람이 될 생각도 없는 무뢰한 자들이라 그들을 비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1994년 첫 난민신청 이후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2017년 기준으로 고작 839명이다. 이들이 어디서 무슨 범죄를 얼마나 저지르고 다녔기에 고작 오백 명의 예멘 난민 신청자가 인구 오천만 명의 국가를 당장이라도 무너뜨릴 것처럼 구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무슬림인 것이 문제인가? 이미 우리는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등지에서 온 무슬림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의 교육수준이 높은 것이 문제인가? 낮았으면 이 먼 나라까지 오지도 못했다. 그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인가? 집 앞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가도 전화기를 챙겨나간다. 그들이 한국 여성을 강간 할까 걱정되는가? 한국 여성을 제일 많이, 제일 자주 강간하는 범죄자는 한국 남성이다.

    별별 이유를 가져다 붙이지만 그저 우리는 그들을 내쫓아도 탈이 없겠다 싶어 나가라 하는 것이다. 우리 중 대다수는 만수르가 한국에 살러 온다 하면 강남 한복판에 있는 대형 교회를 밀고라도 할랄 푸드 단지를 짓자고 할 것이다. 상대의 인권을 무시하기 전에 그의 지갑 두께를 먼저 가늠하는 일의 파렴치함이나 모두의 인권은 평등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으니 조금만 알아봐도 가짜임을 금방 알 수 있는 뉴스를 믿고 난민보다 자국민 우선이니, 난민보다 안전이 우선이니 하는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 집 에어컨 실외기 뒤에는 어린 비둘기가 목하 맹렬히 자라고 있다. 어쩌겠는가, 그저 내 집 한켠을 안전하다 여겨 몸을 푼 비둘기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평소에 특히 좋아하던 불린 메조 한 줌을 내어주는 일밖에 없다. 누구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당장 쓸어버리고 락스를 들이부으라 했지만 그 크기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우주의 창백한 파란 점에 사는 내가 누구를 쫓아낼 자격이 있나 싶어 그냥 두었다. 인간으로서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것이 고작 비둘기를 쫓아내는 일이라면 인간이란 참으로 같잖은 존재다.

    우리도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을 겪었다. 그 전엔 식민지에 살았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을 떠났다. 지금 나라 밖에 살고 있는 ‘동포’들 대부분이 지금 제주에 유폐된 예멘 사람들과 같은 난민이었다는 사실이 이토록 쉽게 잊힐 역사인가. 지금 내전이 없는 국가에 산다는 이유로 내전을 피해 온 사람들을 내친다면 우리의 존엄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애호박 볶음, 가지 나물, 도토리묵 무침, 겉절이, 순두부찌개와 메조를 넉넉히 넣은 밥.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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