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이, 펑크, 반인종주의, 반나치... 급진적 록의 종합선물세트
        2006년 05월 01일 09: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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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m Robinson Band
    "Power In The Darkness"
    1978년 발표
    .
    1  Up Against the Wall
    2  Gray Cortina
    3  Too Good to Be True
    4  Ain’t Gonna Take It
    5  Long Hot Summer
    6  The Winter of ’79
    7  Man You Never Saw
    8  Better Decide Which Side You’re On
    9  You Gotta Survive
    10  Power in the Darkness
    11  2-4-6-8 Motorway 
     

    록은 노동계급의 음악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50년대 후반 미국의 백인 노동계급은 급속하게 중산층으로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록은 노동계급의 문화이면서 동시에 중산층의 문화가 됐다. 하긴 처음부터 미국에는 계급문화나 계급정치 같은 게 발달하지 못했다.

    반면 영국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노동계급과 중산층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래서 대중문화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그 안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미국에서 태동해 영국으로 수입된 ‘외래문화’인 록은 확실히 영국에서는 노동계급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비틀즈가 언론을 통해 스스로 ‘노동계급의 아이들’임을 확인한 이후 성공한 축구선수와 록스타를 보면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영국 노동계급 문화의 한 단면이 됐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서면서 록과 팝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오일쇼크에 이은 경제불황은 영국의 모든 분야를 침체시켰다. IMF의 수혈을 받아야 할 만큼 망가진 경제상황에서 영국 노동계급은 한가하게 음악이나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태어난 것이 ‘펑크’다.

    펑크가 노동계급의 유산인지는 지금도 논란거리다.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분노와 좌절이 펑크의 원동력이라고 쉽게 정의 내리고는 하지만 펑크는 그렇게 단순한 음악은 아니다. 뭐, 코드 3개로 모든 걸 때우려 했던 음악 자체는 꽤나 단순한 구조들이었지만.

    펑크하면 연상되는 찢어진 옷들이나, 닭 벼슬처럼 세운 머리, 염색, 피어싱 이런 ‘패션’들은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일 뿐이다. 사실 이런 것들로 설명할 수 없는 펑크 밴드가 더 많다. 예를 들어 ‘클래쉬(Clash)’의 외모나 음악은 이런 이미지들로는 설명이 안 된다.

    또한 펑크하면 연상되는 좌익적인 이미지들도 펑크의 일반적인 코드는 아니다. 펑크 밴드들이 대부분 스킨헤드 같은 인종주의자들이나 네오 나치와 거리에서 빈번하게 싸움을 벌이곤 했지만 그건 주도권 다툼의 성격이 더 컸다.

    이처럼 영국의 펑크와 미국의 펑크가 다르고 영국의 펑크 안에서도 다양한 차이들이 목격된다. 말하자면 펑크 자체를 ‘계급투쟁’으로 분석할 수도 있지만 펑크 내부에도 계급투쟁이 존재하는 것이다. 펑크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펑크’냐가 올바른 질문인 셈이다.

    * * *

    펑크의 다양성을 이야기할 때 쉽게 예를 드는 것이 앞서 나온 클래쉬같은 밴드지만 사실 펑크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데 보다 더 적절한 예는 톰 로빈슨 밴드다 .

    이름 그대로 밴드의 리더였던 톰 로빈슨은 커밍아웃한 게이였다. 펑크하면 떠오르는 밴드인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이름에서 보듯 펑크도 록의 뿌리 깊은 마초주의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음악이었다.

    톰 로빈슨 밴드가 게이 밴드라는 사실은 그들의 데뷔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었다. 클럽을 통한 그들의 실력은 입에서 입을 타고 널리 알려졌지만 음반사와 계약을 맺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류 시장이야 당연한 검열의 결과였고, 심지어는 펑크의 모체였던 스티프(Stiff) 레코드의 사장조차 그들을 두고 ‘엿 같은 호모 밴드’라며 계약을 거부했다.

    하지만 정작 톰 로빈슨 밴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들의 성性정치가 아니었다. 정치일반에 대한 그들의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불끈 쥔 주먹을 그린 밴드의 로고에서 보듯 이 밴드의 음악은 매우 전투적이었다. 톰 로빈슨은 1977년 영국의 음악주간지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파만큼이나 정치적 좌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좌나 우나 그저 그런 이념 둘이서 서로 잘났다고 싸우는 것 뿐 아닌가?” 그가 말하는 정치적 좌파란 노동당을 비롯해 노동 바깥의 일부까지 포함하는 ‘정당 좌파’다.

    “정치란 뉴스를 통해 나오는 정당 소식이나 선거가 아니다. 정치란 임신중절을 받지 못하는 당신의 여동생이며, 파키스탄인이라고 거리에서 몰매를 맞는 당신의 친구이며 혹은 마리화나 한 조각을 가졌다고 형무소에 보내지는 것이나 런던의회가 출연을 금지할 밴드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록 팬들의 일상이고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 못했거나, 싸구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인 것이다.”

    이런 주장에 동조했던 사람들은 이 밴드가 역설적이게도 펑크 레코드회사들이 계약을 거부해서 EMI레코드라는 음반계의 거대 자본과 계약을 하고 메이저 데뷔하기 전부터, 그들의 공연장 주변에서 이런 주장을 담은 전단지를 스스로 제작해 배포하곤 했다. 흔히 말하는 록 스타와 팬의 관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 * *

    톰 로빈슨 밴드의 데뷔앨범인 <암흑 속의 권력>은 앞서 말한 대로 거대 음반사인 EMI를 통해 발매됐다. 미국에서는 게이밴드로서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던 ‘Glad To Be Gay’를 포함해 17곡짜리 앨범으로 제작됐지만 본국인 영국에서는 옆의 수록곡 목록처럼 11곡 짜리 앨범으로 발표됐다.

       
    ▲ 데뷔 앨범 커버에 인쇄된 밴드 멤버 사진.
     

    11곡의 수록곡 중 밴드의 첫 번째 싱글이자 최고의 히트곡이었던 ‘2-4-6-8 Motorway’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치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Long Hot Summer’는 1969년 미국의 스톤월 항쟁이후의 게이 정치운동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고, ‘Ain’t Gonna Take It’은 정치적 자유에 대해 그리고 있다. 나머지 곡들도 급진적인 행동을 선동하거나 인종주의에 대한 혐오를 담고 있다.

    리더인 톰 로빈슨은 가사만으로는 자기들의 의도가 완전하게 전달되지 않을까봐 조바심이 났는지 앨범 커버에 수록곡에 대한 보충설명을 적어놓았다. 일부는 자기가 직접 쓰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이다.

    예를 들어 앨범의 타이틀 곡인 ‘Power in the Darkness’에는 영국 코미디언인 에릭 아이들의 말을 붙여놓았다. “보수주의와 자유. 보수당 놈들은 기본권이란 오래전에 침식돼 사라졌다고 믿는다. 또 수입세를 탈세하는 것이고, 사람들을 목매다는 것이고, 책과 공연과 방송을 검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믿는다.”

    이 노래는 영국 차트 4위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톰 로빈슨 밴드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외부의 탄압의 결과는 아니고 내부의 불화가 원인이었다. 투쟁에는 선도적이었지만 단결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은 모양이다. 결국 다음 해에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밴드는 해산했다. 그리고 거대자본인 EMI는 그들의 앨범 재발매를 오래 동안 거부했다.

    톰 로빈슨은 이후 솔로로 독립해 활동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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