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학습지 교사
    ‘노조법상 노동자’ 첫 판결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되나
        2018년 06월 16일 12:03 오전

    Print Friendly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 교사도 단결권·단체행동권·단체교섭권 등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는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라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15일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노조활동을 이유로 회사가 일부 교사들에 대해 위탁사업계약을 해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한 항소심을 깨고 원고 일부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1심에서는 학습지 교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대법원은 “학습지 교사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라며 “원고인 일부 학습지 교사들에 대한 재능교육의 위탁사업계약 해지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노동3권 보호의 필요성이 있으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할 수 있다”며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판단 기준은 경제적·조직적·종속성을 보여주는 징표들을 주요 판단요소로 삼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진=노동자연대

    대법원 근로자성 판단의 구체적 기준으로 ▲노무제공자의 소득이 특정 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고 있는지 ▲노무를 제공받는 특정 사업자가 보수 등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지 ▲노무제공자가 특정 사업자의 사업을 통해서 시장에 접근하는지 ▲노무제공자와 특정 사업자의 법률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지속적·전속적인지 ▲사용자와 노무제공자 사이에 어느 정도 지휘·감독관계가 존재하는지 ▲노무제공자가 특정 사업자로부터 받는 수입이 노무 제공의 대가인지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이 같은 기준으로 봤을 때 재능교육 교사들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이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 교사에 대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범위보다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인정 범위가 넓다는 점을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판단함에 따라, 학습지 교사를 비롯한 200만 명에 달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의 길도 열리게 됐다.

    재능교육과 위탁사업계약을 맺고 일해 온 학습지 교사 노조는 2007년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수수료율 문제에 대해 사측인 재능교육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농성을 했으나, 재능교육은 단협 요구에 응하지 않고 노조에 가입한 교사들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해고된 교사들은 노조활동 방해 및 부당해고를 이유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에 차례로 구제를 신청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이에 1심은 “경제적 약자인 특수형태 근로자들도 집단적으로 사측과 대등한 위치에서 노무제공의 조건 등을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헌법에 부합한다”며 “재능교육 측의 계약해지는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목적에서 이뤄진 부당노동행위”라며 학습지 교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은 “학습지 교사는 근로기준법은 물론 노조법상으로도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재능교육 교사들은 위탁계약에 따른 최소한의 지시만 받았을 뿐 업무 내용이나 수행방법, 업무수행시간 등에 대한 지휘·감독을 받지 않아 일반적인 근로자로 보기 어려워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할 자격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교사들이 사측으로부터 받는 수수료는 노동의 대가로 보기 어렵고, 겸직 제한 등이 없어 일반적인 노사관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는 아니지만, 노동조합법 상으론 근로자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계약의 형식보다 근로제공자가 실질적으로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며 학습지 교사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학습지 교사들의 경우 위탁계약에 따라 회사의 상당한 지휘나 감독을 받지 않는 등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상으론 인정되지 않으면서도, 노동조합법상에서 근로자로 인정된 이유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는 ‘종속적인 관계’와 관련 없이 임금이나 기타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도 “노동조합법은 개별적 근로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제정된 근로기준법과 달리,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노동3권 보장을 통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 등을 목적으로 제정됐다”면서 “이 같은 노동조합법의 입법 목적과 근로자에 대한 정의 규정 등을 고려하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노무제공관계의 실질에 비추어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지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라는 것을 인정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법조계 일부에선 학습지 교사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는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학습지 교사들의 경우 형식적으로만 사업자이지 실질적으론 학습지 회사에 (종속되어) 근로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며 “그럼에도 대법원이 여전히 형식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근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 정당한 사유가 없더라도 언제든지 해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해고했다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될 수 있겠지만, 근기법상 해고규정은 종속노동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있어서) 해고, 임금 부분 등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는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