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만으로 이길 수 있겠어요?
        2006년 04월 25일 02: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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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식씨의 오후 일정은 전국농민회 창립 16주년기념식 참석이다. 그는 단순히 축하객으로 참석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우리농업지킴이” 홍보대사로 위촉될 예정이다.

    오후 1시를 넘겨 서울 대방동 여성프라자에서 시작된 전농 창립기념식은 이어지는 축사와 관련행사로 길게 이어졌다.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대중적인 영화배우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문화공연을 보면서 최민식 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몇 차례 집회에 참석하면서, 혹시 진보진영의 문화나 감성에 대한 낯설음이나 거부감은 없는지 물어봤다.

    “그렇지는 않아요.” 오히려 최민식 씨가 정색을 하고 답했다.

    “제가 82학번인데 학창시절에는 학교에 운동권, 비운동권 구분이 없었잖아요. 개강하는 날보다 휴강하는 날이 많았던 시절이지요. 일단 전쟁났다! 그러면, 그때는 데모를 전쟁났다고 했는데, 너나 할거없이 돌을 들고 교문으로 나갔으니까요. 제 기억으로 그때는 백골단이 학내로 들어왔어요. 백골단이 캠퍼스에 들어와서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연행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 누구나 울화통이 치밀어서 달려들곤 했죠.”

       
     

    집회문화가 낯설지는 않아

    “제가 87년 2월에 제대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예비군 훈련을 학교에서 했습니다. 6월항쟁 때 예비역협의회에서 ‘지금 이 판에 우리가 예비군 훈련 받게 생겼냐, 나가자’ 해서 군복입고 워커신고 4열종대로 장충동 신라호텔 앞으로 해서 수방사 앞까지 행진했습니다. 군복입고 발맞춰서 나가니까 전경들도 못 막더라고요. 그런 분위기속에서 학교생활을 해서 그런지 이질감은 없습니다.”

    운동권의 문화적 감성에 대한 대중예술인의 따끔한 충고를 기대했던 기자의 질문은 완전한 헛발질로 끝났다.

    최민식씨의 후일담은 이어졌다 “대학로에서 연극하던 시절 이철규 열사를 다룬 <실비명>이라는 작품에 출연했어요. 그때 유가협 어머님들이 오셔서 음식도 해주시고 공연보시고 우시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지금에 와서 간극은 좀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전혀 다른 세상에 와있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다만 초반에 좀 어색했을 뿐입니다. 저의 젊은 시절 대학생활과 대학로시절에는 분명한 사회적 이슈가 있었어요.”

    결국 한미FTA가 불러일으킨 사회적 갈등이 그의 젊은 기억을 되살리는 ‘분명한 사회적 이슈’가 된 셈이다.

    두시간 가까이 진행된 기념식 후반에 사회자가 최민식 씨를 무대 위로 불렀다. 홍보대사 위촉식이 거행될 모양이다.

    문경식 전농의장으로부터 위촉패와 꽃다발을 전달받은 최민식 씨는 농민들에게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투쟁과 함께 농민들과 손잡는 것은 식량주권과 문화주권이 같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은 농민들과 함께 끝까지 투쟁해갈 것이다. 이 사회의 아픔과 현실에 필름으로만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적극적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필름만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내줄 수 있는지 부탁했다. 꽉 찬 일정표를 오전에 이미 본지라 큰 기대 없이 자투리 시간이라도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최민식 씨는 흔쾌히 시간을 내겠다고 했다.

    남산 근처의 사무실로 이동하면서 최민식씨는 양기환 영화인대책위 대변인과 일정을 조율했다. 26일만해도 동국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과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잡혀있다.

    문득 최민식 씨가 "문경식 전농의장과 막걸리 한 사발 꼭 같이 마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갑자기 난데없는 막걸리라니?

    그는 그간 FTA저지투쟁 현장에서 본 문경식 의장의 느낌과 인품에 대해 설명했다. 막걸리를 앞에 놓고 이야기 시작하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듣다보니 이건 전형적인 ‘등장인물 성격분석’이다. 정말 어쩔 수 없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민식 씨는 또 오전 국회의 토론회장에 있던 방송카메라들이 오후 전농의 행사장에는 보이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언론들이 정작 관심 가져야 할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불편해했다.

    빡빡한 노동조합, 대학 강연 일정

       

    최민식 씨의 사무실 근처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난 2월 8일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영화인들의 첫 번째 거리 집회에서 무대에 오른 최민식 씨는 격한 감정으로 인해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전농 행사장에서도 그는 마이크를 잡고 동강난 스크린쿼터 앞에서 무엇보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했다.

    이후 두 달여 동안 여러 경로로 대중들과 만나면서 분노가 어떻게 변했는지, 더 강해진 건지 물어봤다.

    그는 “초반에 비하면 좀 차분해지고 정돈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초반엔 감정적인 측면이 없잖아 있었어요. 어떤 인간적인 배신감, 모욕감 이런데서 오는 분노가 앞섰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이 싸움은 그렇게 감정적이거나 선동적인 모습만으로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해서 결코 투쟁에서 이길 수도 없습니다. 좀더 학습을 하고, 좀더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조직적이고 논리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시간이 갈수록 절실하게 느낍니다.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민식 씨는 특히 학습을 강조한다. 자기는 너무 몰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분노만으로는 한미FTA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당국이나 미국에 결코 맞설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런 생각의 변화가 단지 투쟁이나 무역 같은 문제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를 가져왔는지 궁금했다.

    긴 싸움을 준비하려면 더 많은 학습을

    “그렇죠. 그게 사실이거든요. 제가 많이 절망하고 상처 받았지만 제 삶에 있어서 언젠가는 이 시간들이 다른 의미가 될 거라고 봐요.”

    “지금은 현실적으로 비극적이고 또 한국에서 배우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후회가 될 정도로 모욕을 느끼면서 투쟁을 하고 있지만 결국 이 싸움의 의미, 이 순간의 나의 모습이 크고 넓게 보면 제 인생에 있어서 손해 보는 시간은 결코 아닐 겁니다.”

    “저는 영화를 데뷔할 때 <구로아리랑>으로 데뷔했는데, 앞으로 작품 활동에 있어서도 사회참여적인 색채가 가미될 것이고 싸움이 끝나고 다시 본업으로 복귀했을 때 소외계층이나 노동자, 농민에 대한 시각이 반드시 작품에 투영될 거라 생각해요. 어떤 작품을 선택 하건, 기획을 하건 그런 부분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입니다.”

    “물론 지금 와서 40대 중반의 나이에 이런 투쟁에 동참하면서, 또 배우라는 직업상 왜 고민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내 스스로의 입장과 선택이 골백번 생각해도 옳다고 믿고 그래서 떳떳합니다.”

    지금 작품활동 못해도 덧없는 시간 결코 아니다

    우리에게 최민식이라는 배우는 대중과의 벽이 가장 얇은 배우다. 대중들과 직접적으로 만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연기했던 배역들이 대부분 우리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배우가 세상에 대해 다시 보는 눈을 가지게 됐다고 하는 것은 혹시 그동안 자신의 연기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충실하게 담지 못했다는 반성이 아닐까?

    기자의 질문에 최민식 씨는 “영화 자체가 사회운동은 아니다”는 말로 잘라 답했다. 지금의 경험을 통해 이후 자신의 연기세계가 깊어지겠지만 방향이 달리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내 직업이 배우고, 영화를 만들지만 영화 매체 종사자가 모두 사회운동가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영화의 소재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비현실적인 것도 있지요.

    저는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방식으로의 영화보다는 ‘구로아리랑’이나 ‘파이란’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나 있는 그런 영화들을 좋아해요. 직접적인 구호와 선명한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는 영화보다는 자연스럽게 녹아있으면서 사회현실에 대해서도 인식을 갖게끔 하는 영화들 말이죠.”

    “‘파이란’은 원래 그게 아사다 지로라는 일본 작가의 단편소설인데 그걸 우리 식으로 각색을 했죠. 그 각색본을 보고 한번에 출연을 결정한 결정적 계기는 그게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로 각색되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는 거죠.”

    “주인공의 삶의 궤적을 통해서 사람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무엇인가 저는 그 작품에서 구원의 메시지를 봤습니다. 어떤 한사람의 방향이 바뀌고 뭔가를 깨닫고 느끼는 과정이 종교를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에게서 구원을 받는 거다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지요. 삶 자체가 논리적이지는 못하잖아요.”

    “작품 하는 사람으로 그전에도 사회참여적인 내용이나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앞으로도 <파업전야>나 <오! 꿈의 나라>같은 영화를 하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영화라는 매체는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좋은 메시지가 있다 하더라도 어떤 말투로 전달하느냐가 중요하거든요. 그것은 영화의 표현방식입니다. 관객이 자연스럽게 영화 속으로 동화하고 들어오게끔 만드는 방식이 제 영화의 방향입니다.”

    <파업전야>와 같은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은 아니었는데 다소 전달이 안 된 모양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답변은 들었다. 최민식의 연기 혹은 그가 출연한 영화들이 시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

    정치활동은 절대 안 하겠다

       

    보다 직접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지난 17일 민주노동당 지방선거 대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양윤모 영화평론가협회장은 지방선거 기간 중 영화계가 진보정당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영화계에 민주노동당이 보여준 연대에 대한 보답이라는 의미다.

    혹시 지방선거 기간에 지원사격에 나설 수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노동당 고맙죠. 정치권에서 유일하게 스크린쿼터 싸움할 때 달려와 줬습니다. 그러나 섭섭하시겠지만, 제가 그런 활동에 나서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겁니다. 지금도 최민식 혹시 다른 뜻(?)이 있어서 저런 것 아니냐는 말이 들려오거든요.”

    최민식 씨는 만약 우리 사회가 외국처럼 배우가 특정 정당을 지지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그런 사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당분간은 박찬욱 감독과 최민식 배우가 같은 정당의 당원으로 어깨 걸고 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 그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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