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변화에 심드렁한 전문가들은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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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25일 01: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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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는 분명히 왼쪽으로 변하고 있다. 그 변하고 있는 현실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좌파 집권의 영향이 오래갈 것이란 진단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백종국 교수처럼 단지 정치적 수사에 그치고 스스로 단명할 것이란 진단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백종국 교수의 글에는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몇 가지 있어 지적하고자 한다.

구체적 좌파 정책 외면하고 정치적 수사로 폄하

우선 차베스의 진보적 실험을 평가하는 데서 국가문장의 변화를 희화화시켜 바라보면서도 핵심적 변화인 볼리바리안 헌법의 의미의 해석에는 인색하다. 그리고 현실적인 많은 난관(그 중에는 구체적으로 쿠데타 그리고 암살기도까지 포함하여)에도 불구하고 8,000개 이상의 회사들이 노동자들의 자주적 참여로 운영되고 있고 사회적 공공 서비스 강화 등의 구체적인 좌파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도 단지 정치적 수사로 폄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차베스가 추진하는 것이 전통적 사회주의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대안적 보완의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다

또한 대안적 중남미 건설 즉 중남미에서의 새로운 좌파정부의 부상을 평가하는 데서 열쇠가 되는 사건이 바로 원주민들의 힘에 의한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의 집권이다. 이 두 나라 즉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가 현재의 중남미 좌파정권 부상의 선두 주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 80년대에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중남미 변화의 핵 ‘여성, 원주민, 청년’

이것은 90년대 들면서 중남미 곳곳에서 좌파적 진보 지식인 그룹과 밑으로부터의 시민사회의 연대가 구축되면서 헤게모니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의 제임스 칵크로프트 교수도 최근의 중남미 변화의 핵으로 여성, 원주민, 청년 등이 주도하는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지적하고 있다.

중남미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으로서 신자유주의 실험의 쇼윈도였던 칠레와 멕시코는 빈부격차 즉 사회적 양극화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7월에 있을 멕시코 대통령 선거에서는 좌파 대통령이 등장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9세기 초 중남미 독립의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에게는 중남미가 스페인로부터 독립할 때 작은 나라들로 쪼개져서는 안되고 커다란 통합을 이뤄야만 한다는 신념과 꿈이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오랫동안 그야말로 정치적 수사로 이용되어 왔었다.

여러 형태의 지역 통합의 외교적 노력이 남미에서 있어 왔지만 단지 수사에 그칠 뿐 구체적인 정책으로 펼쳐 나가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왔다. 최근 차베스가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안디노 협약]만 해도 그랬다. 1969년에 체결한 이 지역 통합기구는 볼리비아,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등 5개국이 참여했다.

차베스, 룰라 정책 방향은 좌파적인 게 맞다

그러나 1991년에 모습을 드러낸 메르코수르는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매우 다르다. 이들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경제 통합의 정책을 밀고 나가고 있다. 전자들과 후자의 차이는 극명하다. 전자는 미국이 유도하는 것들이었고 후자에는 미국이 배제되어있다.

왜 중남미 대중들과 지식인들은 반미감정이 강할까? 중남미는 옛날에는 스페인 제국이 직접 지배했고 그 후 현대에는 영국과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 대상이었다. 따라서 오래 전부터 중남미에서 정치하는 세력은 그 누구든지 그리고 지식인들도 보르헤스를 예외로 하고는 민족주의와 항상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백종국 교수는 특히 좌파를 어떤 시각으로 해석하는지 불분명하다. 최근의 신자유주의의 밀물 앞에서 좌파들은 생태적, 문화적 일상생활의 대안을 추구하고 있고 무엇보다 사회적 공공 서비스의 강화와 반 신자유주의 세력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차베스와 룰라의 현재 정책방향은 분명히 좌파적이다.

민족주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중남미

백 교수는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들을 동원하는 코드는 여전히 ‘민족주의’라고 하였다. 너무나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중남미에서 민족주의는 단일 코드가 아니라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했다.

원래 민족주의는 어느 나라에서든 이데올로기이고 따라서 정치적 수사에 빠지기 쉽고 대중을 감정적으로 동원한다. 중남미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우리나라의 ‘신토불이’를 생각해보자). 그러나 중남미에서 민족주의를 얘기하려면 구체적인 역사적, 정치, 경제적 컨텍스트를 지적하여야 한다. 백 교수의 글이 중남미 전문가들을 향한 학술논문이 아니라 중남미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대중을 상대로 한 인터넷 매체의 칼럼이라면 더욱 그렇다.

중남미 민족주의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엘리트 민족주의, 스페인과 이태리 파시즘을 지지한 민족주의, 사회정의를 강조하지만 구체적인 정책 수단이 약한 대중 선동(또는 감동?)적 좌파 포퓰리즘 민족주의 그 대표적인 것이 페론이즘이다.

노조 집단주의를 강조하고 노동자들의 권익의 최소보장을 통한 정치적 안정을 노린 우파 포퓰리즘 민족주의 멕시코의 모델, 사회정의를 내세우고 자신과 소수그룹의 권력유지에만 몰두하는 후지모리식 부패 포퓰리즘 민족주의, 경제성장을 최우선시하는 군사독재 극우 민족주의 칠레의 피노체트의 경우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성장률과 좌파 집권 관계 바라보는 백교수의 순진한 시각

1980년대부터 시작 되었던 중남미에서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시행은 아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좌파만이 아니라 우파적 지식인들도 신자유주의 실험은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 그 클라이맥스가 2001년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졌다. 이제 예전의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별로 유의미하지 못하다.

더구나 백 교수는 도표를 통해 2004년의 중남미 각국의 경제성장이 대체로 높은 편인데 좌파 집권이 계속되는 것은 특이하다고 하였다. 상당히 나이브한 해석이다. 경제가 어렵고 살기 어려우면 혁명적 기운이 부상하고 따라서 좌파의 집권에 유리할 것이란 해석은 60년대와 70년대 초에나 가능한 담론이다.

아직도 명맥은 유지하지만 콜롬비아 좌파 게릴라의 활동이 활발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80년대까지 마지막으로 무장투쟁의 전략을 가지고 있었던 페루의 ‘빛나는 길’도 90년대 초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중남미에서 대부분의 좌파적 정권들이 단명했다는 역사적 사실인데 그 이유는 대부분 미국의 직,간접 개입 때문이다. 굳이 필자가 많은 사례들을 차례로 끄집어 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을 단지 좌파집권세력의 내용 없는 선동적 수사 탓으로만 모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먼 해석이다.

과거 좌파 정권 단명은 미국의 개입 때문

1973년의 칠레 피노체트 군부 쿠테타가 있을 때만 하더라도 중남미에서의 국제적 연대는 희박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다. 2001년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 시에서 있었던 1차 세계사회포럼은 많은 나라들로 하여금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사회 정의문제와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였다.

우리의 꿈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비전 제시의 장으로서 중남미의 노동운동 단체, 환경, 여성, 청년 등 진보적 사회단체, 시민사회의 힘을 과시했던 것이다. 이 같은 연대에 브라질의 지방정부가 적극 함께 하였다.

2005년에는 에콰도르, 2006년에는 베네수엘라에서 본 회의가 열렸다. 2007년에는 미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2006년 5월 3일에서 5일까지는 멕시코 북부의 미국과의 국경도시이면서 약 10여년 전부터 계속되어온 의문의 400여 명의 연쇄 여성 강간 살인의 도시로 유명한 화레스 시에서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노동, 환경, 여성 등 관련 시민사회단체 운동 활발

전문가들이 아니라 언론을 좋아하는 우리 민중들도 다 아는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거시지표상의 경제성장은 그림의 떡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NAFTA로 인한 멕시코의 경우가 극명하지만 미국의 경기 추이가 지표상으로 직접 반영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20대 80도 아니라 이제 10대 90의 사회가 지속되면서, 어느 나라든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적 양극화 즉, 빈부격차가 심화되는데, 홍세화 선생이 지적하듯이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중남미에서 좌파가 집권에 성공하는 것은 특이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에서 좌파가 집권하였는데도 급진적이지 않고 우파적 정책을 펼치는 것이 마치 좌파 정권의 취약성처럼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이미 이들 나라들은 현재의 유럽과 똑같지는 않지만 상당한 정도로 서구적 시민사회의 전개와 이로 인한 자유민주주의의 토대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게 발달해있다. 따라서 스페인같이 좌파정권이 들어서 있지만 우파적 경제정책을 시행하는 것도 당연하다.

중남미 좌파 집권은 특이 현상 아니라 당연한 일

브라질, 칠레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는 좌파라기보다 중도 좌파 정부로 불러야 할 것이고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도 전통적 의미의 좌파라기보다 중남미 지성들이 70년대부터 추구했던 진정한 중남미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급진적 실험을 하는 정부로 해석해야 한다. 이들 나라들은 이 같은 실험의 성공을 위해서 중남미의 통합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의미의 중남미 통합을 스페인어로 ALBA로 줄여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새벽’을 의미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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