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유병기 동지를 추모하며
        2018년 06월 03일 12: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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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당, 진보정당추진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에 늘 함께 참여했고, 직장인으로서 진보정당의 지원자, 후원자이자 함께하는 실천가이기도 했던 유병기(54) 전 사민포럼 집행위원장이 운명했다. 췌장암 진단을 받고 1년여간 투병 생활을 하다가 2일 새벽 4시경 운명했다. 친구이자 동지였던 윤영상 전 민주노동당 평화군축운동본부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추도의 글을 옮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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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와 달리 아침에 일찍 깼다. 새벽 4시 43분이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나 하는데 친구 병기가 운명했다는 연락이 왔다. 병기 아들 지용이었다. 4시 40분에 운명했단다. 병기가 가면서 나를 깨운 것이다. 나와의 28년 인연을 그렇게 마무리하고 간 것이다. 가슴이 먹먹하다.

    저간의 세월이 스쳐간다. 노정추, 한노당, 통합민중당, 진정추로 이어지던 시절! 우리는 진보정당의 성공과 집권을 꿈꿨다. 또 진보정당이 무너져 가던 시절, 민주노동당이 분당되고 진보신당도 깨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갈 때 우리는 함께 술을 마시며 미래를 얘기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많은 일을 함께 논의했다. 죽은 오재영이랑 술 마시면서 결의했던 기억도 새롭다. 일들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가 박사학위를 받으면 다시 도모해 보자던 병기의 목소리가 귓속을 맴돈다. 힘들어하던 후배들 쫓아다니며 술 마시고 얘기 들어주던 녀석, 병기는 그렇게 우리 마음속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1년 전 췌장암 선고를 받았을 때는 그래서 더 큰 충격을 받았었다. 오재영이를 보낸 지 2달이 좀 지난 뒤였다. 이겨내자고 그래서 반드시 죽기 전에 제대로 된 진보정치를 세워보자 했었다. 마음을 다잡고 결기를 드러내는 모습에서 점점 초췌해져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미어졌다. 머리도 빠지고 복수도 차오르면서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올수록 또렷해지던 병기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죽어가면서 살아있는 인간들을 걱정하던 그의 말은 외로움이었고, 대리욕구의 표현이었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자주 찾아보지 못한 미안함이 가슴 속을 파고 든다. 그래도 제수씨 연락 받고 이틀 전 그를 마지막으로나마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병기가 가기 전 보고 싶은 사람들과 마지막 눈맞춤이라도 하도록 연락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주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가는 사람 마음을 누가 제대로 헤아리겠는가. 남은 가족을 걱정하던 그의 마음이 생각난다. 걱정마라. 아들들 정말 잘 컸더라. 제수씨도 잘 이겨낼 거다.

    어찌 보면 지난 1년은 생각지도 못했던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인 것 같았다. 그 이별은 결국 언젠가 이루어질 우리의 만남을 예고한다. 먼저 가 있어라. 너랑 나눴던 꿈과 생각들을 다시 건드리는 건 나와 벗들의 일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 편하게 새로운 세상에서 한잔 하자. 편히 쉬어라~

    * 장례식장은 안양평촌 한림대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6월 4일 오전 9시. 

    필자소개
    전 민주노동당 평화군축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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