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벌의 진화과정에 대하여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 정립⑦] 후진성과 반역사성
    2018년 05월 29일 11: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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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회의 글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 정립⑥-2] 투쟁주체, 어떻게 세울까

지금까지 대외의존적 한국경제구조, 제조업분야에서 비정규직이 광범위하게 출현하는 현상 등을 통해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자본주의 일반이나 신자유주의 문제가 아닌 주요하게는 ‘재벌체제’라는 한국적 특수상황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이 같은 재벌체제가 극복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적과 싸워 승리하기 위해선 먼저 ‘지피지기’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이하에선 한국 재벌체제가 그간 발전해온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재벌체제의 성립과 재벌과두체제로의 발전

무릇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이, 한국 재벌체제 역시 고정불변의 것은 아니며 그 나름의 진화과정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재벌체제의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 재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위해서 필요하며, 당면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필수 작업이기도 하다.

(1) 재벌체제의 초기적 성립과 확립: (1980년대 초~1997년 IMF 위기 직전)

재벌은 독점자본의 한 형식인데, 그 소유구조가 특정 개인이나 가족소유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기업집단을 말한다. 그리고 이 같은 재벌들이 한 나라의 국민경제를 주도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재벌체제’라고 부른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한국에서 재벌체제가 성립된 시기는 총수일가가 이끄는 ‘기업집단’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한국경제를 주도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대체로 1980년대 전반을 이 같은 시기로 간주한다.

물론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추진되기 이전인 1950년대에도 한국에 이미 기업집단이 출현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1950년대 중반 무렵 일반 대중들 사이에는 ‘재벌’이란 말이 이미 회자되었으며, 1950년대 후반에는 삼성, 삼호, 개풍 등이 산하에 적지 않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명실상부한 재벌로 부상하였다. 이 밖에도 럭키, 대한산업, 동양, 현대, 쌍용, 코오롱, 한일합섬, 벽산, 태광, 전방, 한국생사, 방림방적 등이 1950년대를 거치면서 업계에 두각을 나타내며 재벌로의 태동을 준비하였다. 훗날 한국경제를 대표하는 삼성은 이 무렵 모기업인 무역업을 중심으로 제조업, 금융업 부문으로 다각화하여 이미 국내 최대의 금융콘체른을 형성하였다. (이한구,<한국 재벌형성사>,p73)

그러나 이 시기의 기업집단은 전체적으로 볼 때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으며, 그 내부 규모도 작고 또한 완만한 발전을 하였다. 이 같은 비교적 완만한 자생적 기업집단의 형성을 훨씬 촉진시킨 것은 잘 알다시피 1960년대 초반부터 정부 주도의 ‘압축적 자본주의화’ 과정인 경제개발의 착수이다. 특히 중화학공업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197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경제에 있어 기업집단의 발전이 매우 두드러졌다. 이는 정부가 중화학공업화라는 국가적 목표를 신속히 달성키 위해 특정 기업을 선정해서 집중 지원하는 특혜정책을 사용하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1980년대 전반은 재벌의 한국경제에 대한 주도성 확립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우선 재벌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상위 20대 재벌의 부가가치 생산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3년 7.1%로 채 10%에 못 미치던 수준이었는데, 1983년에는 16%로 그 두 배 이상 상승하였다. (총 매출액이 아닌 ‘부가가치 생산’임에 주의!) 또 재벌과 중소기업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중소기업에 대한 재벌의 지배력은 1980년대 전반을 거치면서 공고화되었다. 중소기업 중 하청업체의 비중이 1978년의 18.2%에서 1987년엔 48.5%로 급증하였다. 나아가 결정적인 것은 1980년대에 들어 재벌의 시장지배 원천은 제도적 진입장벽으로부터 기술적 요인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은 “기술적 우위성을 바탕으로 한 근대적 독점이윤이 확보되었음을 의미한다.(<한국자본주의 발전모델의 역사와 위기>,p56)

이후 재벌들은 이러한 독점이윤을 물적 기반으로 하여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대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일정한 양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처럼 1980년대 전반 무렵에는 재벌의 한국경제에 대한 주도성이 대체로 확립되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비록 1980년대 전반에 재벌체제가 수립되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아직 취약한 것이었다. 당시의 은행신용체계는 국가의 강력한 통제 하에 놓여있었는데, 이 시기 재벌의 은행에 대한 의존은 국가독점(혹은 국가자본)의 우위와 민간독점의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통제를 통해 재벌의 자금줄을 움켜쥠으로써 그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아직 고전적 의미에서 말하는 민간독점 중심의 진정한 ‘금융자본’이 성립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잠시 덧붙이자면, 필자가 여기서 사용한 ‘금융자본’의 개념은 레닌이 그의 <제국주의론>에서 사용했던 것인데, 힐퍼딩 등 과거 정통 맑스주의자들도 이용했던 개념임을 독자들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그것은 ‘산업독점과 은행자본의 결합으로서의’ 금융자본을 의미하며, 등식을 빌자면 ‘산업독점자본+은행자본=금융자본’으로 표현될 수 있다. 다만 현대에는 ‘금융업’의 발전으로 인해 은행자본 대신에 ‘금융자본’이란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여기에는 은행자본뿐만 아니라 보험회사, 연기금 및 각종 투자펀드 등 ‘금융업에 종사하는 자본’을 모두 포함한다.

이렇게 볼 때 1980년대 전반의 ‘재벌체제'(‘재벌이 주도하는 경제’라고 하는 의미에서)는 매우 허약하고 초보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재벌체제가 확고히 정착되기 위해서는 민간독점의 국가독점으로부터의 자립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으며, 이를 위해 한국의 재벌들은 독자적인 자금조달 능력의 강화를 통해 진정한 금융자본(산업독점자본+금융업자본)으로의 전환을 달성하여야만 하였다.

그 후 1980년대 중 후반~1990년대 초에 닥친 ‘3저 호황’과 정부의 금융자율화 정책은 재벌이 이 같은 ‘금융자본’으로 변신하는데 있어 좋은 계기를 제공하였다. 당시 한국경제는 이 같은 정식적인 금융자본의 성립을 위한 조건이 성숙하였는데, 1980년대 후반 들어 제조업분야의 대기업들은 ‘3저 호황’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남김으로써 자체 내부자금력이 강화되었다. 이는 이들 산업자본의 실력을 강화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유보자금을 바탕으로 하여 재벌이 새롭게 금융부문에의 진출을 모색할 수 있게 만들어 줌으로써 한국 자본주의에 있어 민간독점 중심의 금융자본 성립을 촉진하였다.

구체적으로 볼 때 재벌들의 금융자본으로의 전화 계기는 이하 두 가지 방향에서 주어졌다. 하나는 국내 금융시장구조의 개편이며, 다른 하나는 해외로부터의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개방 압력이었다. 양자는 상호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데, 1980년대 중반까지는 전자 즉 국내적 요인이 주요한 측면이었다고 한다면, 그 이후에는 국제적 요인이 점차 재벌의 금융자본으로의 전화에 있어 주요한 측면으로 작용하였다.

국내적 요인에 있어서는 특히 이 시기 제2금융권의 제도권화로 제2금융권이 재벌들의 자금조달의 중요한 통로로 등장한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재벌들은 제2금융권에 직접 진출함으로써 단기운전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였음은 물론, 생명보험사나 리스회사 등을 통해 장기설비자금까지 조달할 수 있게 되어 국가로부터의 신용할당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다음으로 국제적 계기를 보면, 1980년대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금융시장의 대외개방은 한국 금융시장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편시킴과 동시에 재벌의 금융자본으로의 전화를 완성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1988년 이래 미국의 압력 속에 본격적으로 진행된 개방화와 자유화는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의 추진과 OECD 가입에 이르러 정점에 달하였다. 이 무렵 김영삼 정부는 재벌의 요구에 따라 종합금융사를 무더기로 허용하였는데, 이들은 정부의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고 국제금융시장으로부터 단기자본을 들여올 수 있었다. 이는 한국의 자본수지가 1994년부터 1996년까지 큰 흑자를 기록한 가운데서도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게 되는 화근이 되었다.

이렇듯 국내외의 계기를 적극 활용하여 한국의 재벌들은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자신의 산업 활동에 필요한 투자자금을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을 상당정도 갖추면서 ‘진정한 금융자본’으로의 전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재벌들이 이 같은 전화에 성공함으로써 국가권력의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양자 관계에 있어서 점차 우위를 확보하였다. 이후 IMF 위기를 거치면서 삼성을 비롯한 살아남은 소수 상위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이 더 한층 진행되었는데, 이로써 마침내는 한국에 ‘재벌과두체제’가 성립되기에 이른다.

(2) 재벌과두체제의 성립: (IMF 외환위기 이후~ 현재)

외환위기 이후의 재벌체제는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외환위기 이전보다 재벌의 한국경제에 있어서의 비중과 영향력이 전체적으로 더욱 확대되었다. 이로써 재벌체제는 외환위기를 겪은 후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표 1 참조)

둘째, 외환위기 이후 재벌체제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재벌 내부 분화의 가속화와 함께 소수 상위재벌로의 경제력 집중과 그들의 지배력이 더 한층 강화된 점이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무엇보다도 삼성그룹의 약진은 매우 두드러졌다. 1997년만 하더라도 삼성그룹의 자산 총액이 5대 상위 재벌과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6%와 10%로, 그 순위에서 보면 아직 현대그룹에 이어 2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2012년에 이 비중은 각각 35%와 20%로 확대되어 재벌순위 1위를 차지하였다.

매출액에 있어서도 이 같은 변화는 확연한데, 1997년 5대 상위 재벌 및 GDP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매출액 비중은 각각 29%와 15%였으나 2012년에는 48%와 20%로 확대되었다. 즉 삼성은 혼자서 상위 5대 재벌 매출액 전체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한국 전체 GDP의 1/5에 해당하는 매출액 규모를 갖게 되었다.

이처럼 외환위기는 재벌의 한국경제에 있어서의 비중과 영향력을 더욱 확대시키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상위 재벌과 중하위 재벌 간의 격차 역시 더욱 벌여놓는 등으로 경제의 극소수 재벌에의 집중 현상을 심화시켰다. 결론적으로 외환위기를 통해 재벌에의 경제력 집중은 한층 높아졌으며, 이들의 한국경제 전반에 대한 영향력은 일층 강화되었다. 특히 삼성·현대·LG·SK 등 살아남은 소수 상위재벌들의 지배력이 이전보다 훨씬 강화되었다.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이 일정수준에 이르게 되면 새로운 질적 전환이 발생하게 된다. 외환위기의 시련을 극복한 재벌은 이렇듯 더욱 집중화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통치 권력화’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 점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국가권력은 일반적으로 보면 지배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며, 오늘날 독점자본주의단계에 들어서서는 특히 독점자본가계급의 보편적 이해를 반영한다. 그런데 위에서 말하는 재벌의 ‘통치 권력화’는 이 같은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소수 몇 개의 재벌이 정치권력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놓게 되는 ‘재벌과두체제’의 성립을 특별하게 일컫는다. 즉 이는 독점자본 ‘일반’의 지배와는 다른, 극소수 ‘개별’ 독점자본에 의한 경제와 정치권력의 지배라는 특징을 지닌다.

일찍이 부하린은 자기 시대의 국가가 대면하고 있는 것은 분산되어 오합지졸이 아닌, 이미 조직된 기업가 조직인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 등의 대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과거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성행하였던 ‘금융과두통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같은 금융과두통치 하의 국가는 사실상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 등 금융자본가집단이 선출한 ‘위원회’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와 비슷한 일이 외환위기를 겪은 후 한국사회에서도 발생한 것이다. 한국의 국가권력은 더 이상 자본가계급 일반 또는 심지어 독점자본가 계급 일반의 권력이 아니라, 상위 극소수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위원회로 탈바꿈하였다.

‘삼성공화국’ 현상은 이 같은 ‘재벌과두체제’의 성격을 잘 설명해준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외환위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삼성은 재계에 있어 아직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거나 심지어는 최선두 주자도 아닌 한국의 유력한 재벌집단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삼성은 외환위기를 거친 후 무섭게 변화하였다. 그룹 매출이 한국 전체 GDP의 20%를 차지하고, 삼성전자 한 회사의 순이익은 2017년 2/4분기를 기준으로 할 경우 다른 코스피 상장사들의 순이익 전부를 합친 것의 38.18%를 차지할 정도로 재벌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이 때문에 우리는 외환위기 전과 그 이후의 삼성을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2007년 삼성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적는다.

“내가 삼성으로 옮길 무렵(주: 1997년)만 해도 삼성의 위상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법원과 정부, 언론을 통째로 장악할 만할 힘은 없던 시점이다.……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경쟁기업들이 망하거나 찢어지는 바람에 저절로 1위 재벌이 됐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통제 받지 않는 거대 권력이 됐다.” ( <삼성을 생각한다>,pp337-338)

 

그의 말대로 삼성이 그저 그런 국내 재벌 중 하나였던 시절만 기억하는 이들로서는, “대통령과 법원도 함부로 못하는 삼성의 힘”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2000년대 들어 삼성은 자신의 거대한 경제력을 발판으로 한국의 정계·관계·언론·법조계·종교계·시민사회 등에 적극적으로 촉수를 뻗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지지 세력을 각계에 백방으로 심음으로써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고 마침내는 정치권력을 쥐고 흔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삼성이 소위 ‘삼성장학생’ 이라고 불리는 이 같은 지지 세력을 각지에 심고 관리하기 위해 조성하고 있는 비자금만 하더라도 이미 밝혀진 것이 4조억원에 이른다. 이를 통해 삼성은 국회의원들을 매수하여 자신에게 불리한 법 개정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또 후계승계 과정 등에서 아무리 불법이 드러나도 별반 탈이 없을 정도로 사법부 위에 군림하는 무소불력의 권력임을 입증하고 있다. 최근 이재용 재판은 이 점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1심 재판부는 박근혜에 대해 유죄를 인정할 때 삼성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 ‘뇌물적’ 성격을 가능한 피해갔다. 최대한 그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세인들의 눈에도 역역하였다.

2. 독점자본의 4가지 역사적 유형

한국 재벌이 갖는 위상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그간 독점자본이 밟아 온 역사적 진화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자본주의적 점유’가 대립하는 기본모순을 내재적으로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생산력이 발전하여 생산의 사회화가 날로 진척될수록, 이 양자 간의 충돌은 더욱 격심해지고 기본모순은 심화된다. 자본주의의 기타 모순들, 예컨대 생산의 무정부성, 빈부격차와 노자 간 계급대립의 격화 등은 모두 이러한 기본모순으로부터 파생된 것들이다.

자본주의가 독점단계에 들어서면서 거대한 생산수단이 소수 자본가집단에 더욱 집중하게 됨에 따라, 이 기본모순은 한층 심화되게 된다. 이 같은 모순의 심화를 완화시키기 위해, 자본주의는 자신의 소유구조의 근본적 속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한 개혁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생산 사회화의 고도화에 발맞춘 자본 사회화의 진척이 그것이다. 자본 사회화는 기본모순 즉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자본주의적 점유’ 양자 간의 대립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보다 많은 사회의 자본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그것을 일정 완화시켜 줄 수는 있다.

예컨대, 우선 현대적 생산이 요구하는 단위 생산규모의 확대에 따른 대규모 투자자금의 조달문제에 대한 해결에 있어 그러하다. 그리고 주식 분산화가 잘 이루어진 주식회사의 경우, 비록 그것이 사회 절대다수 대중의 이해를 대변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러나 보다 많은 자본 소유자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체제는 이 같은 자본 사회화 경향에 역행함으로써, 한국 자본주의에 있어 생산의 사회화와 자본주의적 점유 간의 모순을 한층 고조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한국사회의 모순은 모든 면에서 자본주의 일반의 것보다 더욱 심각한 양태를 보이게 된다.

한국의 재벌체제가 갖는 이 같은 반역사성과 후진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세계적으로 독점자본이 그간 걸어 온 역사적 과정에 대해 얼마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독점자본은 그 존재 형식에 있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며, 역사적으로 조금씩 변화하였는데 그간 다음 4가지 형식이 존재하였다.

제1종 형식은 특정 가족 혹은 특정 독점조직이 주식을 독점(혹은 기본적으로 독점)하며, 은행과 산업자본을 하나로 융합시킨 피라미드식의 금융자본체계이다. 예컨대, 두 차례 세계대전 기간의 일본 재벌집단이 그러하다. 1941년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도모 가족은 계열사에 대한 주식점유율이 평균 50% 이상이었으며, 그 중 일부 대기업에 대해서는 100%에 달하였다.

제2종 형식은 특정 가족 혹은 특정 독점조직이 ‘현저한 지주(支柱)적 우세’를 갖는 피라미드식 금융자본체계이다. 이 형식에서는 재벌그룹체계 내로 다른 독점집단이 침투하여 교차적 주식소유가 어느 정도 진행된다. (현재 문재현 정부가 재벌개혁 방안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주회사’는 이 유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본래의 기존세력의 독보적 우세를 흔들기에는 역부족이다. 예컨대 전후 초기 1950년대 미국의 금융자본체계와 오늘날 독일(과거 서독)의 재단(財團, Group)이 그러하다. 독일의 도이치뱅크는 1978년 지멘스 콘체른의 19.41% 주식, 멘체스터 콘체른의 26.65%를 보유하여 재단(財團) 내에서 다른 독점그룹의 참여자보다 현저한 우세를 점하였다.

제3종 형식은 현재 일본의 그물망식 재단(財團)구조인데, 서로 다른 재단들이 상대방의 재단 내부에 침투할 뿐만 아니라, 이들 간의 우열도 엇비슷한 양상을 띤다.

마지막으로 제4종 형식은 기업에 있어 명확한 독점적 지주적 우세가 거의 사라진 경우이다. 아래 표4에서 보는 것처럼 대략 세력이 비슷한 대주주들이 연합하여 통제하는 그물망식의 금융자본체계를 형성하며, 현재 미국의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이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상 관련 내용은,马健行 등 著, <독점자본개론>,pp238-240 참조)

위 표를 보면 무엇보다도 대주주 명단에 한국 재벌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총수일가와 같은 ‘자연인’이 없다는 점이 우선 눈길을 끈다. 또 대부분 ‘법인’으로 되어있는 개별 대주주가 전체에서 점하는 비중이 매우 작고, 그들 상호 간의 상대적 우세 역시 그리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들 각자는 혼자서는 기업에 대한 핵심적 작용을 할 수가 없으며, 서로 다른 수 개의 대주주(이들은 모두 독점자본들이다!) 간의 연합을 통해서만 비로소 그것이 가능하다.

또 여기서 위 두 은행이 산하에 자회사를 거느리면서 기업집단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들은 이 같은 기업집단 내에서도 상층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모회사인 이들의 위 주주 구성은 그들이 속한 기업집단 전체의 성격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즉 이 같은 기업집단 내에서는 더 이상 피라미드식의 상층수직통제가 존재하지 않게 되며, 비록 자회사와의 관계에서는 하층수직통제가 존재할지라도 전체 금융자본구조는 이미 피라미드식이 아닌 그물망식이 된다는 점이다.

위에서 ‘재단(財團,Group)’이란 용어가 나오는데, 한국의 재벌과의 관련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재단은 ‘금융자본집단’의 약칭인데, 재단을 규정짓는 표준은 최소한 다음 두 가지 기본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1) 재단을 구성하는 기업집단에 있어 핵심기업(은행 혹은 비금융기업 모두 될 수 있다) 자신은 독립적이어야 하며, 다른 독점조직에 예속되지 않아야 한다. 또 이 핵심기업 내에서는 ‘특정한’ 개별 자본이 분명한 우세를 점하여 이 핵심기업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2) 이 핵심기업은 소유구조상 관련하고 있는 일련의 다른 기업들에 대해 명확한 지주적 우세를 가지며, 이들은 하나의 배타적 이익집단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렇듯 금융자본이 이러한 ‘재단’의 형식으로 존재하게 되면, 그 구조는 대체로 피라미드식의 지주적 관계이거나 혹은 최소한 일본의 그물망식의 재단이 된다. 위 기준에 비추어 볼 경우 위에 언급한 독점자본 형식 중에서 제1종, 제2종, 제3종 형식은 재단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제4종은 이미 재단이라 할 수 없다. 물론 ‘재단’이 독점자본의 유일한 존재형식은 아니기 때문에, 비록 오늘날 서구 국가들에서 장기적으로 볼 때 재단이 쇠퇴하는 추세라 할지라도 독점자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종국적으로는 제4종 형식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관심사인 재벌과의 관계를 보자면, 재단과 재벌은 비슷하기는 해도 똑같은 개념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일정한 소유관계를 매개로한 ‘기업집단’을 구성한다는 측면에서 재단과 재벌은 공통성을 갖지만, 그러나 특별히 자연인 또는 가족만이 아니라 법인도 그 피라미드의 정점에 설 수 있다는 점에서 재단은 재벌과 다르다. 때문에 재단은 재벌을 포함하는 좀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또 이 양자는 모두 독점자본의 특정 형식으로서 존재한다.

위의 독점자본의 4가지 형식에 비추어 본다면 재벌은 제1종 내지 제2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기업집단의 피라미드 정점에 ‘자연인’ 혹은 ‘가족’이 서 있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하며 우리의 관심을 요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총수경영’과 관계될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한국의 ‘재벌과두체제’에서와 같이 소수 특정 독점자본이 정치권력을 통제하게 되는 문제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피라미드 정점이 자연인이 아니고 법인일 경우라면, 그리고 이 같은 법인 내부의 주주 구성에 있어 상호 경쟁하는 기업들이 참여하고 또 개별 대주주의 지분도 미약하여 몇몇 대주주들의 상호 연합에 의해서만 경영권 장악이 가능한 경우에는, 한국의 재벌처럼 총수일가를 정점으로 한 배타적인 피라미드식 기업집단의 형성과 그것의 무한 증식을 통한 마침내는 ‘재벌과두체제’의 형성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재단, 재벌 그리고 독점자본 이들 상호관계는 단순히 개념·범주적 차원에서의 구분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자본 사회화’와 관련된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들 개념과 범주가 등장한 이면에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있어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자본주의적 점유’ 간의 기본모순을 완화시키기 위한 ‘자본 사회화’라는 나름의 고심이 들어있다. 위 독점자본의 4가지 형식을 자세히 보면 뒤로 갈수록 자본 사회화의 고도화와 조응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결국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재단(Group)’이라고 하는 틀조차도 스스로 협소하다고 간주할 정도로 생산 사회화와 자본 사회화가 진척되었으며, 점차 그것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추세가 나타나는 것은 결국 경제활동에 대한 사회적 자본의 더 많은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사적 소유관념의 좁은 울타리를 뛰어 넘어, 오직 ‘이윤추구를 위한 합리적 행위’라는 자본 일반의 보편적 의지의 관철을 위해서 자본주의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소유관계의 ‘사회화’를 실현시키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이 같은 노력이 있었기에 자본주의는 비록 그 역사적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그럭저럭 버텨올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추세에 비추어 본다면 한국 재벌체제의 후진성과 반역사성은 더욱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여전히 가족이나 총수의 개인적 독선의 틀에 갇혀 있으며, 이 때문에 독점자본의 일종으로서의 재벌은 금융자본의 진화의 역사에서 볼 때도 기껏해야 그 원시적인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소개
과거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며 사노맹 사건으로 3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 사회를 연구할 목적으로 16년간 중국 유학생활을 보냈다. 중국인민대학과 상해재경대학에서 각각 금융(학사)과 재정(석사)을 전공했고 최종적으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에서 레닌의 정치신문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8월 귀국하여 울산에 정착해 현재 울산 평등사회노동교육원에서 교육강사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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