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직업이
면접 결과 좌우하다니····
[기고]청년들 최소한의 ‘공정’ 요구
    2018년 05월 04일 11: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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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한 청년이 자살했다. 그는 강원랜드에 4번이나 응시했지만 모두 면접에서 탈락하고, 너무 힘든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이 청년은 돈과 빽이 없어 꿈도 포기하고 목숨도 잃어야만 했다. “내가 아들을 태백에 안 불러들였으면 이런 사망 사고까지는 안 났을 거다. 그래서 나도 죄인이다. 우리 아들한테…” 아들을 먼저 하늘로 보낸 아버지는 이렇게 스스로를 탓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규탄 회견(방송화면 캡처)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 뚫기 어려웠던 이유

강원랜드의 채용비리가 드러난 후 연루자들은 직권 면직되고 회사 측은 피해자들을 구제하기로 했지만 이곳에 지원했던 한 청년의 자살은 되돌릴 수 없는 결과였다. 늦게나마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강원랜드는 오랜 기간 채용비리를 저지르며 청년들을 피멍들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강원랜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4개 시중 은행이 모두 채용비리에 연루되어, 사실상 은행권 전체가 오랜 기간 신입 채용 과정에서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직업으로 청년들 사이에서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은행’은 경쟁률이 최대 100:1에 이를 정도로 치열한 곳이다. 하지만 누구는 아빠가 면접관, 누구는 회장 손녀라 합격했고, 내부에서는 면접점수 조작, VIP리스트 등을 작성하며 채용청탁이 이루어진 것은 물론, 남녀 성차별 채용, 출신대학 차별로 다른 합격자를 탈락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수많은 청년들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부단히 노력한다. 어디에서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채용비리 사태는 그런 청년들의 믿음을 산산조각 내버렸으며, 그들은 부모 직업이나 타고난 성별이 면접 결과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청년들은 처음부터 출발선이 달랐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으며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렀다. 취업을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했을 청년들을 이미 정해진 결과를 위한 들러리로 이용한 사실은 단순한 비리가 아니다. 국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성’이라서 탈락했다

은행에서 굳이 남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은행은 서류전형 단계부터 남녀 비율을 정해놓고 여성을 차별했다. 심지어 KEB하나은행은 서류전형에 응시한 남녀 비율이 1:1에 가까웠는데도 채용에서는 그 비율이 5.5:1로 극명하게 벌어졌으며 최종면접에서 순위를 조작하기도 했다. 타고난 성별로 채용을 결정하는 행태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약자가 여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일이기에 성차별 채용은 여성들에게 상당히 폭력적인 일이다.

은행들의 ‘성차별 채용’은 명백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다. 우리 사회의 만연한 성차별을 뿌리 뽑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고용노동부에서 함께 나서서 성차별 채용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고 법 위반자에 대한 승진 제한, 명단 공개 등 강력한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긋지긋한 ’학벌주의‘…‘건송합니다(건국대라 죄송합니다)’

지난 2월 4일 건국대학교 신문사 SNS에 올라 온 ‘건국대라 죄송합니다‘ 라는 제목에 학생들은 ’#건송합니다,‘ 라는 해시태그로 분노의 공감을 표출했다. 채용비리 사태가 터진 후,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온라인에서 뱉어내던 말이었다. 이 문구에는 청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업들이 원했던 이른바 ’명문대‘ 출신들은 채용 점수에 미달이었지만 ’학벌‘이라는 하이패스 티켓을 얻어 취업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우리는 서울대만 뽑는다‘는 공고를 냈었다면 청년들이 이렇게까지 자괴감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채 최종 합격까지 보통 3개월 정도 걸리는데 ’명문대‘(?)가 아니었던 다른 청년들은 그 오랜 기간 다른 기회도 빼앗기고 바보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의 케케묵은 학벌주의는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좋은 대학을 가지 않으면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어 수많은 청년들의 희망과 미래를 빼앗아가는 지나친 ‘학벌주의’의 민낯이 채용비리를 통해 드러났다. ‘학벌=능력‘의 공식이 성립하지 않은 지는 이미 오래되었으며 출신 학교를 차별하는 것은 생산적 경쟁이 아닌 소모적 경쟁으로 심각한 사회적 낭비를 초래한다. 이런 경쟁 속에서 각 가정은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지불하고 있으며 결국 능력이 아닌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겠다는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는 ‘경쟁’만 있을 뿐, ‘공정함’이 없는 사회

이번 채용비리 사태의 본질은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다. 그저 동등한 기회라도 주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처음부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회사가 원하는 기준에 맞추려 노력한 것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사회는 더 이상 청년들에게 ‘노력’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경쟁을 부추기고 줄을 세워 모든 것을 평가하던 시대는 공정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원래 1등부터 100등까지 정해져 있는 사회에서 청년들에게 왜 노력하고 경쟁하라고 하는가.

‘부모도 실력’. ‘인맥도 실력’이라며 부정한 방법들이 만연하게 행해졌던 이 사회는 분노한 청년들에게 사죄하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학벌, 인맥, 돈, 성차별과 같은 반칙을 써가며 채용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이제는 사회가 용납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고 공공성이 크게 요구되는 공공기관 및 공기업, 금융권은 이번 채용비리 사태에 대해 법적,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며 반드시 청탁자의 명단을 공개하여 일벌백계해야 한다. 또한 업무에 맞는 사람을 뽑을 수 있는 ‘공정한 채용 시스템’을 만들어 청년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최소한의 공정함’이 보장되는 사회다. 누구나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보상 받을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사회 말이다. 더 이상 청년들이 절망하는 사회가 아닌 ‘꿈꾸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필자소개
금융정의연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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