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은 시를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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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13일 02: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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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비가 내렸더니 오늘 꽃기운이 왕성하다. 어디에 눈길을 두어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백화난만(百花爛漫)! 온갖 꽃이 피어서 아름답게 흐무러지는 풍경이다. “봄기운이 사람의 마음을 태탕(駘蕩)케 하더라.”라는 「구운몽」의 문장이 절로 떠오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즈음이 되면 괜히 슬퍼진다. 저 꽃들의 아름다움이 나의 슬픔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아니, 꽃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슬픔을 느끼다니. 스스로 물음표를 달아 보지만, 슬픔은 매년 반복된다. 만발한 저 꽃들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나 자신을 직감적으로 깨달으면서부터이다, 그런 류의 슬픔을 느꼈던 것은.

    나는 저 약동하는 자연의 질서 바깥으로 추방되었다,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 더불어 추방된 이를 찾아 시집을 뽑아 든다. 오늘은 천상병(千祥炳)이다.

    산등성 외따론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1970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발표된 「들국화」라는 시다. 시인은 산등성이 외딴 곳에 피어있는 조그만 들국화를 보았나 보다. ‘외따론데’(외딴), ‘애기’(조그만)란 표현이 외로움과 애처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애기 들국화’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치락거리는 게 아닌가. 관심을 끌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외로움과 애처로움은 들국화를 보는 천상병의 감정일 따름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소하지만 따뜻한 감정을 통해 그는 들국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러한 공감이 과연 어느 정도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여기서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충돌한다. 자연의 시간(계절)은 둥글게 원을 그리며 그 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니 다시 오는 가을에 들국화는 다시 또 필 것이다. 그렇지만 무정한 인간의 시간은 직선적이라서 앞으로만 나아간다. 그래서 시인은 “다시 올까?”라고 묻고 있다.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바로 이 대목에서 자연 바깥으로 추방당한 인간의 자리가 드러난다.

    인간은 근대로 들어서면서 자연의 질서 바깥으로 추방되었다. 근대인의 선조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노동할 때를 알았다. 어른이란 철(계절)이 든 존재로서 노동할 때(철)를 알고 거기에 맞춰 노동을 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자연과 하나였다.

    그렇지만, 근대인들은 그렇게 둥근 시간을 과학의 힘으로 탕탕 두드려 펴서 직선적인 시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 날카로운 직선의 힘으로 둥근 자연을 제압하려고 나서기도 한다. 자연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한 인간의 형상이다.

    지금 당장의 현실만 보더라도 분명하지 않은가. 우리 인간은 천성산에 터널을 뚫고, 새만금 갯벌을 막아버리려고 하고 있다. 거기에 어떤 생명들이 어떻게 살고 있든지 무시한 채, 그 생명의 질서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바람은 철저히 배척한 채 공사는 강행되고 있다.

    이 정도가 되면 우리는 이제 계절의 순환 속에서 슬픔조차 느끼지 못할 상태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하겠다. 우리의 혈관에 따뜻한 피가 아닌 서늘한 기름이 흐를 날도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작년 9월 코스타리카로 날아가서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파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나도 퇴임 후 숲을 가꾸며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글쎄, 숲을 가꾸는 일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시는 과연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일까.

    들국화 한 송이의 뒤척임을 통해 우주의 울림을 느낄만한 감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그런 마음가짐도 없이는 제대로 된 시를 쓸 수 없을 터이기에 하는 소리다. 현 정부의 환경정책을 보고 있으면 이런 판단을 지울 수 없다.

    어찌 되었든 만화방창(萬化方暢)의 계절. 따뜻한 봄날에 온갖 물건이 나서 자라듯이, 이 봄날의 따스함을 느끼고 지킬 수 있는 이들 또한 더불어 자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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