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전환 개헌을 요구한다
    [에정칼럼] 에너지 공공성, 기본권, 분산· 전환 포함
        2018년 03월 20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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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87년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개헌 논의가 한창이다. 시간을 낭비한 국회 개헌특위의 역할을 국민헌법자문특위가 대신했다. 4개 권역별로 치러진 숙의형 시민토론회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13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국민헌법자문특위 자문안은 아직 공개조차 되지 않고 있다.

    주로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한과 책임을 나누는 정부형태 논란으로 개헌 열차의 앞날이 불투명하지만, 사실상 권력구조의 일부에 불과한 정부형태로만 개헌의 의미를 좁혀서는 곤란하다. 나라와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담는 개헌이 되려면 촛불로 분출된 민주화의 열망이 고스란히 반영돼야 한다.

    국민헌법자문특위 역시 국민주권 실질화, 기본권 확대, 자치분권 강화, 견제와 균형 내실화, 민생 안정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된 촛불 개헌의 방향과 의제를 수렴하려고 노력했다고 하지만, 공론화가 충분했는지는 의문이다. 자문안에 대한 각계의 논평을 보면, 앞으로 심도 있게 따져볼 게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자치분권도 그렇고 노동권 등 기본권 조항도 그렇다.

    환경권도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위한 핵심 분야로 꼽힌다. 최종 발의안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국민헌법자문특위의 제출의견서(안)는 분명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의 환경권 조항이다. 그러나 과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헌법이 유보한 법률과 사법기관의 법 해석 때문에 환경권은 초라하기만 하다. 녹색국가를 위한 개헌안은 꾸준히 준비되어 왔으며, 국민헌법자문특위는 헌법 전문, 총강, 그리고 기본권, 지방자치, 경제질서, 자연자원, 국토관리 조항에서 변화를 줬다. 포괄적인 환경국가원리와 지속가능성 원리를 도입하고자 했다. 이 정도 수준에서라도 개헌이 이뤄지고 관련 법률이 정비되면 나름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에너지는 환경은 물론 경제,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지만 독자성을 갖는다. 따라서 새 헌법에는 에너지 의제가 신설되거나 강조될 필요가 있다. 현재 헌법은 에너지에 대한 언급은 없고 광물과 자원으로만 표현된다. 국민헌법자문특위의 개정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국토와 자연자원은 모든 국민의 공동자산으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지속가능한 보전과 개발 및 이용을 위하여 환경계획 및 국토계획을 연계하는 등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

    비록 공동자산 규정은 혁신적이지만, 에너지(계획)는 환경(계획)과 국토(계획)의 하위 개념이라는 인상을 준다. 반면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 안에는 “국가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의 정의를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있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 안이 더 낫다. 적어도 에너지가 부속적 지위에서 벗어나니까 말이다.

    이 대목에서 과거 에너지기본법 제정 당시에 형성된 쟁점을 복기하는 게 도움이 된다. 에너지를 둘러싼 공공성, 기본권, 분산 및 전환 등의 내용은 현재 시점에서도 유용하다.

    2004년 12월, 정부가 발의한 에너지기본법안은 에너지정책의 기본원칙으로 에너지산업의 시장경쟁 요소 도입 확대와 에너지의 공공성을 고려한 에너지 사용의 형평성 제고를 밝혔다.

    2005년 1월, 김성조 의원 대표발의 에너지기본법안은 에너지산업간 및 에너지원간 공정경쟁과 관련 시설의 분산 도모, 그리고 에너지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등 에너지와 관련한 사회적 형평성 및 공공성 제고를 담았다.

    2005년 4월, 조승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에너지기본법안은 화석연료의 단계적 감축, 국민에너지기본권 보장(에너지생활기본권실현계획), 에너지 정책의 공공서비스 정책 및 민주적 실현체제 확립, 그리고 에너지 공기업의 공공성 확대를 기본원칙과 국가 책무로 설정했다.

    2006년 3월 제정된 에너지기본법의 에너지정책의 기본원칙은 ①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 실현, ② 신·재생에너지 등 환경친화적인 에너지의 생산 및 사용 확대, ③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사회구조로의 전환을 위한 에너지수요관리의 지속적 강화, ④ 산업·환경·안보·교통 및 건축 등 에너지 관련 모든 분야에 대한 통합적 고려, ⑤ 에너지산업에 대한 시장경쟁 요소의 도입 확대 및 규제완화 등의 시책 추진, ⑥ 에너지 이용의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의 지속적 추진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빈곤층 등 모든 국민에 대한 에너지의 보편적 공급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공급자의 책무 중 하나로 정리됐다.

    결과적으로, 에너지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제기됐던 에너지 공공성과 기본권, 그리고 분산 및 전환은 형평성과 보편적 공급,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그 의미가 희석되거나 축소됐다.

    2010년,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에너지기본법이 에너지법으로 격하됐는데, 이 과정에서 저탄소녹색성장법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축소가 표기되기는 했다. 그리고 2015년 에너지법에 에너지복지 조항이 신설되는 변화도 있었다. 그러나 입법과 정책은 따로 놀았다.

    기존 법체계를 흔들면서 제정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폐지하거나 전면 개정하고, 지속가능발전법을 개정하고 기후변화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나, 아직까지 국회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에너지법은 환경정책기본법과는 별도의 기본법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관련 개별법을 아우르는 기본법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특히 에너지 전환이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이해되고 있는 만큼 헌법적 가치로 적극 수용해야 한다. 공공성과 기본권을 내포하는 에너지 전환의 정수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환이라는 표현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그 의미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개헌안을 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법률상 에너지정책의 기본원칙이 구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에는 에너지 자치분권이 화두로 떠올랐다. 중앙 집권·집중 에너지시스템은 에너지 전환을 통해 일정한 수준에서 지방 분권·분산 에너지시스템으로 탈바꿈해야 하며, 그 과정은 정의롭게 전환돼야 한다. 이렇게 지역에너지시스템은 규범적으로 에너지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그리고 자치분권과 지역화·공유화, 공동체 프로젝트와 참여 거버넌스로 구성된다. 자치분권을 획득하지 않으면, 에너지원은 바뀔지언정 기존 에너지시스템은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 따라서 자치분권 강화는 에너지 전환 개헌에 필수적이다.

    지난 3월 15일, 시민이 주도하는 에너지 분권과 자치 시대를 열기 위해 ‘지역에너지 전환을 위한 전국네트워크’가 창립총회를 열었다. 에너지 자치분권의 구체적인 형태는 논쟁적이겠지만, 국가, 시장, 기술만으로는 에너지 전환을 실현할 수 없고, 시민사회와 지방정부의 능동적인 참여가 없이는 그 전환은 왜곡될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개헌 열차가 언제 어떻게 종착지에 도착할지 모르겠지만, 녹색국가의 출발을 알렸으면 한다. 우리는 공공성, 기본권, 자치분권을 포괄하는 에너지 전환 개헌을 요구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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