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놈은 무시 먹고
어떤 놈은 인삼 먹냐"
[노동자 내전·갈등⑩] 절규와 저주
    2018년 03월 15일 10: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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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 ‘노동자 내전·갈등’ 관련한 글을 정리한다. 이후 취재와 다른 글들을 통해 정규직-비정규직의 갈등과 해법 등에 대해 다룰 생각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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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회의 글 “세대·노동시장·노사관계 얽힌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갈등 돌아보기”

역시 레디앙답다. 레디앙은 노동분단을 다루는 기획에서 ‘노동자 내전’이란 제목을 달았다. 노동자라는 대명사 뒤엔 항상 하나의 계급이란 수식어를 붙여온 한국 노동운동 풍토에서 노동분단이라는 진단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감히 내전이란 표현을 썼다. 내전은 내부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따라서 노동자끼리 전쟁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도 내전이라고? 슬프지만, 사실이었다.

총칼을 들지 않았을 뿐이지, 중심부와 주변부로 분단된 한국 노동자계급은 내전을 치렀다. 정규교사와 기간제교사가 학교 안팎에서, 공공부문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인천공항과 서울지하철 등에서 전쟁을 벌였다. 정규교사와 공공부문 정규직 모두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기간제교사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했다. 정규직에 준하는 처우 개선에도 반대했다. 일방적 공습이었다. 비정규직이 자본과 정부가 아닌, 같은 노동자인 정규직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울타리 바깥으로 내동댕이쳤다.

슬펐던 것은 내전이 노동조합 내부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더 슬펐던 것은 전교조와 인천공항공사노조가 노조의 이름으로 기간제교사와 비정규직을 버리는 편에 섰다는 점이다. 더더욱 슬펐던 것은 전교조의 상급조직 민주노총과 인천공항공사노조의 상급조직 한국노총이 그 상황 앞에서 우물쭈물했고, 결국 묵인하는 꼴이 되었다는 점이다.

노동운동사에 또 하나의 오점을 남긴 대참사였다. 그럼에도 노동운동은 나, 너, 우리, 이 정파 저 정파 할 것 없이 죄다 무기력했다. 고작해야 중재를 시도하고, 성명서를 내는 것에 멈췄다. 평론하고, 개탄하는 것에 머물렀다. 과제는 오롯이 당사자에게 넘겨졌다. 과제 해결을 정부와 공공기관에 기대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빠져 본다. 기간제교사·강사의 정규직화를 다룬 심의위원회가 허망한 결론을 낸 뒤였다. 애당초 기간제교사·강사의 정규직화에 떨떠름했던 교육부에게 전교조 입장은 큰 도움이 되었다. 즉 전교조에게 책임이 있었다. 그렇기에 다수의 노동운동가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당시 민주노총 모 인사를 비롯한 일군의 노동운동가는 집회 때마다 정부 탓만 했다. 노동운동을 반성하는 최소한의 성찰적 발언도 없었다.

또 있다. 전교조의 그것과 인천공항공사노조의 그것은 중심부노동이 주변부노동을 배제한다는 측면에서 동일한 행위였다. 그런데 민주노총 안팎의 일군의 노동운동가는 인천공항공사노조 욕만 했다. 거기는 한국노총 소속이었다. 양심이 있으면, 둘 다 욕하던지 입 닫고 있어야 했다. 일부의 행태이긴 했어도 노동운동의 실체였다. 몹시 부끄러웠다.

노동운동은 솔직해야 한다. 노동조합 안팎 역량을 다 합쳐 지금의 노동운동은 밑바닥 처지의 주변부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더 이상 스스로를 기만하는 주장·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정파는 열심히 투쟁하는데, 남들이 투쟁을 하지 않아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식의 아전인수 정파논리도 그만해야 한다. 소득이든 직장이든 자신은 챙길 것 다 챙기면서, 입과 손가락으로만 투쟁, 투쟁, 하는 행위도 그만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운동은 노동분단의 책임이 노동운동에도 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기업별노조 체계에서의 기·승·전·투쟁이 만든 참사였다. 투쟁력 있는 중심부는 지속해서 임금이 상승했고, 투쟁력 없는 주변부는 중심부 임금 수준을 따라 잡을 수 없었다. 그것이 이삼십 년 누적되면서, 끔찍한 노동분단 체제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예전으로 돌아가 보자. 노동운동이 기세를 떨치던 전노협 시대였다. 민주노총 초창기까지였다. 그러니까 1990년대 중반까지였다. 임금인상투쟁 때면 생산현장에서 종종 외치던 종류의 구호가 있었다. ‘어떤 놈은 무시 먹고 어떤 놈은 인삼 먹냐! 열 받아서 못 살겠다 임금인상 쟁취하자!’ 같은 구호 말이다.

무시는 무의 사투리다. 임금 수준을 무와 인삼으로 비유한 거였다. 무는 생산직 임금, 인삼은 사무·전문직 임금을 일컫는 거였다. 그때 생산직과 사무·전문직의 임금 격차는 2배 정도였다. 간혹 3배까지 있었다. 당시 노동운동은 그 차이도 화가 났다. 참지 않았다. 무와 인삼으로 비유한 구호가 자주 외쳐진 배경이었다. 조합원들 귀에 쏙쏙 들어가는 구호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마다 임금인상투쟁을 했다.

지금은 무와 인삼의 격차가 더 심하게 벌어졌다. 무로 비유되는 주변부노동자와 인삼으로 비유되는 중심부노동자의 격차는 5배, 6배, 심지어 10배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당시 무의 위치에 있던 그들이, 그 구호를 외치던 상당수의 무가 지금은 인삼 위치에 섰다. 그들이 바로 민주노총의 주력 조합원들이다.

인삼이 된 지금의 민주노총 주력 조합원, 그러니까 그때의 무는 인삼을 향해, 너희는 먹고살 만하지 않겠냐고 했다. 너희 인삼의 임금인상은 그만해도 되지 않겠냐고 했다. 함께 임금을 올리더라도 너희 인삼은 조금 올리고 밑바닥 무의 임금은 더 많이 올리는 하후상박(하층의 임금은 높게 올리고 상층의 임금은 낮게 올리고)을 하자고 했다. 노동자끼리도 평등하자고 했다. 그 연대로 자본에 맞서자고 했다. 그 연대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했다.

2018년 지금, 민주노총 바깥의 밑바닥 무들이 절망하며 절규하고 있다. 연소득 상위10% 안에 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안의 너희 인삼은 그런대로 먹고살 만하지 않느냐고. 너희 인삼의 임금인상은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고. 함께 임금을 올리더라도 너희 인삼의 임금은 조금 올리고 우리 무의 임금을 좀 더 올리게 하면 안 되겠냐고. 그렇게 노동자끼리라도 평등하면 안 되겠냐고. 그 연대로 자본에 맞서면 안 되겠냐고. 그 연대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면 안 되겠냐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주력 조합원, 그러니까 연소득 상위10%에 드는 중심부노동자들, 이제는 임금인상을 조금씩만 하자. 남은 몫으로는 밑바닥 주변부노동자들의 임금이 더 많이 오를 수 있도록 하자.

중심부노동자의 아들·딸 다수가 이미 밑바닥 주변부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지금과 같은 노동분단 상태에서 그것은 저주다. 이 저주를 자식세대에게 그대로 넘길 것인가.

필자소개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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