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체의 군사행동 자제
    호소하는 평화운동 필요
    일희일비의 수동적 태도 넘어서자
        2018년 03월 08일 12:24 오후

    Print Friendly

    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대북특사 합의에 대한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을 동의를 얻어 레디앙에 게재한다. <편집자>
    —————————————

    한국과 북한, 미국과 일본은
    적대적 군사 행위를 중단한다는 명시적 약속을 하라

    2018년 3월 6일 대북 특사단의 발표문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 4월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통해 비핵화 문제를 협의하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할 용의가 있다고 확인한다,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한다는 데 남과 북이 합의했다는 것이 골자다.

    우리는 평창올림픽 이후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가능성, 즉 한미연합군사훈련 재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대북 경제제재와 해상차단 수위 상승, 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미국에서 선제타격 여론 고조와 같은 흐름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였다. 이는 남북, 동아시아 민중의 평화적 생존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었다. 현재 대북특사단의 발표문을 보면, 이러한 시나리오는 일단, 최소한 ‘유예’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격화되던 긴장과 위기를 진정시켜 군사대결을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형성되었다. 대립과 긴장, 갈등과 충돌에서 대화를 통한 변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국면을 도약대로 삼아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향한 경로를 찾는 게 이제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일단 한국 특사의 입을 빌어 발표된 합의를 넘어서, 앞으로, 남한과 북한, 미국, 일본을 비롯해 동아시아 각국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수위를 다시 과거로 돌릴 수 있는 모든 군사 행위를 중단한다는 명시적 약속을 해야 한다. 현재 국면에서 어떤 모호성이 남아 있다면 불신의 벽이 다시 쌓일 수 있다. 여기서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이 특사회담 이후에도 <노동신문>에 ‘핵무력은 정의의 보검’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던 바, 한국의 보수세력이 북한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를 높일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

    김정은 위원장과 정의용 대북특사(사진=청와대)

    향후 협상은 모든 당사국이 그 성패의 책임을 공유한다

    그렇지만, 이번 합의는 이제 시작을 의미할 따름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북이 진정성 있게 합의를 실천하기만 한다면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꿀 판이 짜일 수 있다는 기대도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에만 모든 결과가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의 모든 당사국이 그 성패에 있어 책임을 공유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우려가 남아 있다.

    첫째, 특사단 발표 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거짓 희망일 수도 있지만, 미국은 양방향으로 더 강하게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여기서 양방향이란 대화 또는 제재와 압박을 의미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모호한 입장을 남겼다면, <뉴욕타임스>는 3월 7일 기사에서 미국 내 전문가들의 비관적인 목소리를 전했다. 예를 들어, 부시 정부에서 6자회담 미국 대표를 맡았던 크리스토퍼 힐은 “북한이 시간을 벌기 위해 협상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또한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 다니엘 러셀 역시 “패턴을 봐야 한다. 공포를 점점 끌어올려서 최고점에 도달했을 때, ‘너의 고통을 사라지게 해줄 수 있다’며 무언가 모호하고 분명히 정의되지 않은 어떤 것을 들고 상대방을 유혹한다”며 부정적 견해를 제시했다. 즉, 미국이 대화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더라도 한국과 북한에 대해 상당히 완고한 태도로 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일본이 가장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도 통신은 남북정상회담이 확정된 후 일본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당혹감과 놀라워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아베 총리는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확약해야 한다. 당분간은 압력을 높이면서 각국과 연대하며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부정적 뉘앙스를 남겼다. 현재 아베 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인도를 발판으로 삼아 중국에 대한 포위전략을 구상 중이다. 만약 6자회담과 같은 다자회담이 재개되고 중국의 역할이 부상되면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정치적 지도력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다. 또한 북한 억지를 위한 한미일 동맹이라는 명분으로, 일본 자위대의 군사적 지도력을 구축하겠다는 구상도 얼마간 힘이 빠질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아베 총리 스스로 말한 것처럼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 수위를 높이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조금 더 미래를 예상해 본다면, 여러 우여곡절 끝에 대화가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정부 간 협상에는 수많은 암초가 기다리고 있다. 2008년 6자회담이 최종적으로 중단되었던 시점을 회고해 보자. 2008년 6월 북한은 영변 핵시설 ‘불능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외신까지 초청해 냉각탑 폭파 행사를 열었다. 이는 북한에 더 이상 ‘미래 핵’은 없다는 메시지인 셈이었다. 그러나 그 후 북한이 과거 핵 활동에 관한 핵 신고서를 제출한 후, 구체적인 검증조치의 실행 여부를 두고 북한과 나머지 참여국 간 심각한 이견이 발생했다. 그해 말 12월, 수석대표회담이 종결된 후 6자회담이 다시는 열리지 않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과거 핵’을 규명하는 단계에서 의견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북한은 그 직후, 2009년 “우라늄 농축 실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폐연료봉 재처리로 추출된 플루토늄이 무기화되고 있다”며 새로운 단계의 핵 프로그램으로 나아갔다.

    이제, 과거에 비해 북한의 핵능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한국 정부는 북한에 3단계 구상, 즉 △핵·미사일 실험 중단, △핵 개발 시설 폐기(미래 핵 폐기), △기존 핵 폐기(과거 핵 폐기)라는 구상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과거 6자회담의 원칙, 즉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원칙대로, 단계별로 세분화된 비핵화 협상 로드맵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각 단계를 검증하는 것도 그보다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현재 시점에서는 아직 가정하기 어려운 ‘일괄 대타결’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면, 세분화된 단계별 협상은 매우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또, 그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비전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거나, 과거 6자회담 프로세스를 반추해 볼 때, 정부 간 협상은 여러 어려움을 거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재 국면에서 사회운동은 협상의 전개 과정에 일희일비하는 수동적 태도를 넘어서야 한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의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대중과 그 비전을 공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1980년대 이후 평화협정이나 한반도 평화체제를 주창할 경우, 이는 한반도 비핵화(미국의 전술핵 철수, 미국의 핵 사용 정책 폐기), 주둔 외국군의 철수, 남북 간의 대규모 군축이 그 핵심적 내용으로 포함되었다. 한반도에서 어느 측도 상대방을 군사력으로 완전히 제압하고 영토를 점령하는 전면전을 개시할 수 없도록 군사력 구조 자체를 전변함으로써 평화의 물질적 조건을 창출하자는 것이 핵심적 발상이었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일관된 원칙 하에서, 동아시아의 비핵화와 군비축소를 선도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비전을 한국이 지지할 때만이 남북대화, 북미대화가 의미 있는 방향으로 진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반도 긴장상태가 완화되어 조정국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누구든 방아쇠를 당기면 더 큰 위기와 군사충돌 국면으로 돌입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남한이든 북한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전쟁을 격화시킬 수 있는 행동, 예컨대 공격적인 군사훈련, 핵실험을 단행한다면 한반도에서의 비극은 이를 도발한 국가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 말로 일체의 군사행동을 자제할 것을 호소하는 평화운동이 필요하다. <끝>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