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람시의 나라 이탈리아,
    반파시즘 저항에서 공산당의 몰락까지
    [책] 『이탈리아 현대사』(폴 긴스버그/ 후마니타스)
        2018년 02월 24일 02: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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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긴스버그 교수는 이탈리아 현대 정치사와 정당정치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적극적인 좌파 정치 운동가이기도 하다. 1945년 영국에서 태어나 현재 피렌체 대학교 유럽 현대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이탈리아 사법 체계와 대학 구조를 지켜 내기 위해 ‘리볼타 데이 프로페소리’(교수들의 반역)를 조직하는 등 시민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탈리아 현대사』는 그의 대표작이자 이탈리아 현대사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책 가운데 하나이다.

    평화의 문화에 기초해
    민주적인 방식으로 다수파를 형성할 힘을 획득하고
    설득과 대중 참여의 힘으로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적인 운동을 구축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 독일과 연합군에 의한 반도의 분할과 해방, 반파시즘 저항운동을 주도한 좌파와 연합군을 등에 업은 우파의 격렬한 대립,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농업국에서 시작해 1950~60년대를 거쳐 선진 공업국으로 빠르게 도약한 경험으로 수놓아진 이탈리아의 현대사를 다룬다. 또한 무솔리니부터 그람시, 톨리아티, 베를링구에르, 베를루스코니에 이르는 이탈리아 주요 정치인들의 꿈과 좌절은 물론, 해방 직후 공장 점거 운동과 1969년의 ‘뜨거운 가을’, 공장 평의회 운동과 자율주의 정치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이탈리아’를 건설하고자 분투한 이탈리아 민중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가 이 나라의 근대성으로의 극적인 이행을 개관하면서 유념하고자 했던 것은 적어도 리소르지멘토 이후로는 이탈리아 역사에서 항상적이었던 다음과 같은 특정 주제와 쟁점, 즉 엘리트들이 자기들 밑에 있는 계급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구축하지 못하는 무능력, 국가의 허약함과 비능률, 이탈리아 사회 안에서 가톨릭이 지닌 힘, 이탈리아 도시와 농촌의 노동자들이 지닌 계급의식, 중간계급인 체티메디의 특별한 정치적 역할, 지속적인 남부 문제 등이다. 아울러 개인주의와 연대, 가족과 집단성까지 살펴보면서, 나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몰락한 이후 45년의 이탈리아 역사에서 이런 관계들이 변화해 가는 양상을 드러내고자 노력했다.”

    _서문에서

    이탈리아 현대사: 파시즘에서 베를루스코니까지

    단테, 마르실리우스, 마키아벨리 등은 근대를 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이탈리아 사상가들이다. 이후로도 유럽 사회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 안토니오 그람시를 비롯한 이들이 그 계보를 이었다. 여러 시대에 걸쳐 돌출되었던 다양한 정치사상적 모색들은, 오랫동안 도시국가들로 나뉜 채 바티칸을 비롯한 외세의 영향력에 시달려야 했고, 리소르지멘토 이래 통일을 이룬 뒤에도 파시즘이 낳은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이탈리아의 현실을 정면으로 극복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끈질기게 펼쳐진 저항운동의 기록으로 시작해, 노동자들의 결정적인 패배로 문을 연 1980년대를 서술하며 마무리되는 이 책은, 여전히 국내에는 ‘로마’나 ‘르네상스’에 치우쳐 소개되어 있던 이탈리아사의 지평을 ‘현대’까지 확장한다.

    피렌체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유럽 현대사를 가르쳐 온 저자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경험을 적절하게 끌어들임으로써 비교사의 분석 틀을 가미해 이해를 돕는다. 전쟁과 빨치산 투쟁, 해방 정국에 분출된 사회적 열망과 좌절, 급격한 산업화와 이농, 노동계급 운동 등의 역사적 경험은 기시감이 들 만큼 한국 현대사와 유사한 면이 있는데, 이 또한 비교 관점의 독서로 이끈다.

    이탈리아 정당의 분투기이자 정치사

    흥미롭게도 이 책은 해방 이후 이탈리아에서 치러진 모든 총선과 일부 지방선거의 주된 이슈 및 그 맥락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현대의 군주’에 빗대며 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람시는 “정당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한 나라의 역사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이탈리아 현대 정치사와 정당정치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폴 긴스버그 또한 이 책에서 정당을 분석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

    195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현대 이탈리아 정치에서 한결같이 나타나고 있는 문제는 ‘안정적 다수파의 결여’이다. 보수를 대표하는 기민당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한 적이 없었고, 따라서 처음에는 중도에서, 나중에는 각각 우파와 좌파에서 정치적 동맹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불안정한 연정이 형성되었다가 해산되고, 정부들이 들어서고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각 정당들이 자신의 지지 기반을 다지고자 치열한 각축을 벌이며 이탈리아 사회의 지역 및 부문에 파고드는 모습(5장 “국가와 사회의 기독교 민주주의”, 6장 “1950년대 좌파 정치와 노동계급 운동”)은 그 자체로 이탈리아 정당의 분투기이자 정치사이기도 하다.

    최근 국내에서 복지국가 및 사민주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남에 따라 독일과 스웨덴, 일본 등의 좌파 정당을 소개하는 단행본들이 출간되었지만 이탈리아 좌파 정치사를 온전히 다룬 책을 발견하기 어려웠는데 이 책을 통해 그 공백을 얼마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국면사(콩종크튀르): 인간과 역사의 관계를 둘러싼 묵직한 질문을 던지다

    이 책에는 무솔리니부터 그람시, 톨리아티, 데가스페리, 베를링구에르, 베를루스코니와 같은 이탈리아의 주요 정치인들은 물론 CGIL과 CISL을 비롯한 노동 조직 및 여러 사회단체의 주요 인물들, 그 밖에 공장과 농장, 거리에서 만난 민중들이 빚어낸 숱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개별 사건들이 소개되지만 이에 머무르지 않고 특정 시기를 아우르며 그 국면의 전후 맥락과 의미를 탐색하는데, 이는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이 제시한 역사방법론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은 일종의 미시적 역사라 할 사건사와 거의 변화하지 않는 구조사 사이를 잇는 조건이자 상황의 역사로서 ‘콩종크튀르’(conjoncture), 즉 국면사를 통해 입체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본문의 각 장들은 현대 이탈리아의 결정적인 국면들로 구분되는데, 이처럼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경로의 변화 가능성이 존재했던 시공간 속에서 여러 행위자들이 뒤얽히며 만들어 낸 동학은 그 자체로 인간과 역사의 관계를 둘러싼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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