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루스코니의 부활
    이탈리아 총선, 우파 강세
    [세계는 지금] 민주당, 중도좌파에서 중도우파로···좌파들 집단 탈당
        2018년 02월 08일 10:01 오전

    Print Friendly

    전진이탈리아(FI)의 대표를 맡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재기에 성공할 전망이다. 3월 실시될 예정인 이탈리아 총선을 앞두고 베를루스코니가 이끌고 있는 우파연합이 제1당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2013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오성운동 역시 집권 민주당을 3당으로 밀어낼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여론조사기관인 IXE를 비롯한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FI와 오성운동이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총 630석 중에 FI는 250석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지만 오성운동은 200석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조사됐다. 집권 민주당은 좌파민주당(DS) 시절을 포함해 역대 최저 의석을 차지하는 참패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하원의원은 기존의 선거제도를 개정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전체의석 중에 64%를 정당비례로 선출하고 36%는 소선구제 즉, 단수다수득표제로 선출하도록 개정한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하면 전면비례가 일반적인 유럽에서 이탈리아의 선택은 다소 역행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만한 이유도 존재했다. 중도좌파(?)정당인 민주당은 탄탄한 지역조직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FI와 오성운동은 인물과 바람에 의지하며 지지율이 바닥에서 천정까지 춤을 추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민주당의 렌치 전 총리는 이런 정치현실을 선거법 개정을 통해 바로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추진한 선거법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공중전에 가장 뛰어난 대표적인 인물은 2011년 세 번째 총리에서 물러난 베를루스코니였다. 베를루스코니는 수차례의 부패와 추문으로 실각할 때마다 재기가 불투명해보였지만 경제가 악화되거나 실업률이 높아지면 단시간에 과거의 지지율을 회복하곤 했지만 모두가 이번은 마지막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는 그런 전망들을 비웃으며 다시 1당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물론 이런 급변은 민주당의 렌치 전 총리의 정치적 무능력도 한몫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역대 최악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하자 해외에 취업하는 청년들에게 지원금을 제공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기름에 불을 부은 것을 들 수 있다. 렌치 전 총리의 계속된 실책을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이탈리아 최대의 미디어그룹인 미디어셋을 통해 맹공을 퍼부으면서 3년 만에 민주당의 지지율을 따라잡았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와 극우정당의 새로운 동맹

    베를루스코니의 FI와 극우정당인 북부동맹의 연합은 느슨한 형태였다. 전성기의 FI는 4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북부동맹은 과반수를 확보하기 위한 소수 하위파트너 정당에 불과했다. 베를루스코니의 1인 정당이라고 해도 무방한 FI는 북부동맹에 대한 태도는 연립정부라고 보기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로 비상식적인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대부분은 베를루스코니의 기행(?) 탓이었다. 첫 연정 당시 북부동맹의 지도자인 움베르토 보시는 베를루스코니의 부패사건을 계기로 연정을 탈퇴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결과는 북부동맹의 참패로 끝났다. 베를루스코니가 북부동맹을 공산주의자들의 집권을 방관하는 배신자라고 선동한 것이 먹힌 것이다.

    북부동맹은 베를루스코니와 각을 세우는 대신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주특기인 지역조직을 강화하면서 두 가지를 변화를 통해 당의 면모를 혁신했다. 당 지도자를 마테오 살비니로 교체하고 전국정당을 지향하기 위해 당명에서 ‘북부’를 삭제했다. 북부동맹의 기반은 글자 그대로 그동안 북부지역의 베네토 주(베네치아)와 에밀리아로마냐 주(볼로냐)였다. 이들의 목표는 남쪽의 피렌체를 거쳐 로마였지만 같은 북부도시이면서도 장악하지 못했던 밀라노를 공략하는 것은 일종의 숙원사업이었다. 밀라노 태생의 살비노는 극우정치인으로는 드물게 탁월한 정치력과 대중친화력으로 젊은 나이에 밀라노 지방의원으로 선출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짧은 시간에 이탈리아의 대도시 중에 하나인 밀라노를 대표하는 극우정치인으로 성장한 살비노는 유럽의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극우정당을 대표하는 인물 중의 하나로 부상했다.

    극우 정치인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극)우파연합은 베를루스코니의 FI와 살비니의 동맹당, 그리고 이탈리아형제당(FDI)로 구성되어 있다. FI는 중도우파정당이라고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극우적인 색채가 짙은데다 동맹당과 FDI는 자신들의 기반지역에서 물리력을 행사하는 일이 번번한 극우정당으로 악명이 높다. 요컨대, 이탈리아는 (중도)우파연합정당이 없는 기묘한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FI의 지지율은 15% 내외에 불과하지만 동맹당과 FDI의 연합에 힘입어 30%에 이르는 지지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FI의 치명적인 약점은 베를루스코니가 피선거권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0% 이상의 지지율을 보이며 급성장하고 있는 동맹당의 살비니에게 총리 자리를 넘겨주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선거연합을 결성하고도 한동안 제3의 인물을 거론하면서 살비니를 견제하는 발언을 계속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근 베를루스코니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되면서 또 하나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극)우파연합이 오성운동에 박빙으로 앞선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최대 300석에 가까운 의석을 획득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는 개정된 선거법 때문이다. 정당지지율에서 오성운동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지만 36%에 해당하는 소선구제에서 (극)우파연합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오성운동과 민주당의 지지기반이 일부 겹치는데다 민주당이 선전하는 곳에서는 새롭게 결성된 중도좌파정당인 ‘민주와 진보운동(MDF)’이 표를 잠식하면서 (극)우파연합이 어부지리를 얻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파연합이 1당을 되더라도 과반수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총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오성운동의 딜레마와 민주당의 몰락

    오성운동은 기존의 양대 정당인 민주당과 FI를 비판하면서 급성장한 정당이다. 양대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동안 질려버린 유권자들은 오성운동이 내건 노선 즉, 오성(공공 수도, 지속 가능한 교통, 지속 가능한 개발, 인터넷 무료, 생태주의)과 포퓰리즘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오성운동을 창당한 코미디언 출신인 베페 그릴로의 인지도도 단기간에 전국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한때 지지율 1위를 달리기도 했던 오성운동의 한계는 베페 그릴로의 1인 정당이라는 것과 느슨한 네트워크에 가까운 조직형태가 발목을 잡았다. 공직후보의 선출이 인터넷에 등록만 하는 방식인 탓에 인기투표 성격이 강했다. 이를테면 지역에서 생태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인물 대신에 갑자기 등장한 인지도 높은 인물이 후보로 선출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오성운동은 2013년 총선에서 3당으로 급부상했지만 당내 분란이 끊이지 않았고 제명과 탈당이 계속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2016년 지방선거에서 최대 격전지였던 로마시장 선거에서 오성운동이 승리함으로서 위기를 벗어났다. 오성운동이 내세운 비르지니아 라지는 로마의 고질적인 부패를 청산하겠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집권 민주당 후보와 접전을 벌였다. 라지 후보는 (당선 가능한) 최초의 젊은 여성후보라는 것도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라지는 당선 후 부패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들을 고위직에 발탁했고, 발탁된 인물들이 뇌물혐의로 구속되면서 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급기야 베페 그릴로가 로마시의 인사권을 당이 결정한다고 선언하자 라지 시장은 이를 거부하면서 사실상 당을 이탈했다.

    베페 그릴로와 루이지 디 마이오(오른쪽)

    느슨한 조직운영과 끊이지 않는 잡음에도 불구하고 오성운동의 지지율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총리 후보로 선출된 31살의 루이지 디 마이오(Luigi Di Maio)의 인기가 한 몫을 하고 있다. 2013년 총선에서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마이오는 대학 중퇴와 단기계약직 노동자를 전전한 이력으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이력만이 아니라 젠틀한 이미지에 화려한 언변으로 오성운동의 하원 원내부대표를 맡으며 차세대 주자 자리를 일찌감치 예약했다. 오성운동의 실질적 지도자인 베페 그릴로가 총리 후보로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마이어가 후보로 선출됐다.

    오성운동의 딜레마는 탄생 그 자체에 있다. 기성정당을 비판하며 창당을 주도한 베페 그릴로는 어떤 정당과도 선거연합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독자노선이 일종의 당의 노선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것은 곧 연립정부도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오성운동이 1당의 위치에 오르더라도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않는 이상 집권은 불가능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최근 총리 후보에 오른 마이오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이오는 총선공약을 발표하면서 오성운동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EU 탈퇴 국민투표’를 제외했다. 그 배경을 놓고 베페 그릴로 대신 총대를 멘 것이라는 분석과 마이오의 독자행보라는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총선 전초전으로 치러진 시칠리아 지방선거에서 (극)우파연합의 벽을 넘지 못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3당으로 추락할 것이 확실한 집권민주당은 별다른 돌파구조차 없다는 것이 난제다. 차기 IMF체제가 될 국가가 이탈리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될 정도로 경제 악화와 높은 실업률에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추락만 거듭하고 있다. 상원의석 축소 등 정치개혁을 추진하다 실패한 후 자리에서 물러난 렌치 전 총리의 지지율이 중도좌파정당인 ‘민주와 진보운동(MDP)’의 총리 후보인 피에트로 그라소(Pietro Grasso)에 뒤질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정국을 어느 정도 균형 있게 수습하고 있는 젠틸로니 총리의 개인 인기도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총리 후보 교체를 주장하고 있지만 렌치 전 총리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도좌파정당의 재건과 그람시의 후예들

    민주당의 우회전이 계속되자 당의 좌파들은 집권 대신에 중도좌파정당의 재건을 위해 집단적으로 탈당했다. 로베르토 스페란차 전 원내대표와 엔리코 로시 토스카나 주지사를 중심으로 MDP를 결성했다. 4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하원의원들이 MDP에 참여함에 따라 위기의 민주당은 완연한 우파정당으로 탈색됐다. 사민주의 경향의 ‘좌파의 미래(Future to the Left)’를 이끄는 스테파노 파시나는 탈당 후 민주당의 자매정당으로 기능했던 니키 벤돌라의 좌파생태자유(SEL)와 통합해 ‘이탈리아 좌파(Italian Left-SEL)’을 독자적으로 창당했다.

    총선을 앞두고 MDP와 이탈리아좌파는 선거연합을 결정했지만 마땅한 총리 후보감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스페렌차와 로시 주지사는 이탈리아공산당(PCI) 시절부터 활동해온 맹장이지만 나이와 낡은 이미지가 약점이었다. 경제학 교수 출신인 파시나 역시 유권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한때 이탈리아 좌파의 떠오르는 별이었던 벤돌라의 지지율도 과거의 일이었다. 1인 정당이나 마찬가지였던-당의 로고에 벤돌라의 이름을 넣을 정도였던-SEL은 벤돌라가 여전히 당의 간판을 맡고 있지만 당의 서기인 니콜라 프라토아니(Nicola Fratoianni)가 당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등 권력구도가 변하고 있는 상태였다.

    MDP의 고민은 의외로 간단히 해결됐다. 이탈리아 좌파가 창당될 때부터 참여설이 나돌았지만 움직이지 않았던 피에트로 그라소(Pietro Grasso) 상원의장이 탈당해 일부 자유주의 세력들과 함께 자유와 평등당(LeU)을 창당한 것이다. 민주당 탈당파들의 면모로 볼 때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그룹이지만 독자적으로 총선에 대응할 가능성은 없었고, MDP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오랫동안 반마피아 치안판사로 활동해 온 그라소는 국민들 사이에서 두터운 신망을 가지고 있었다. 스페란차 MDP 대표는 그라소를 총리 후보로 추천하고 일시적으로 2선으로 물러나는 단안을 내렸다.

    그라소의 합류에도 불구하고 MDP의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그라소의 지지율이 당의 지지율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이탈리아공산당 시절의 지역기반은 세 차례 당의 탈색과정에서 유실된 탓에 단기간에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할 상황이다. 집권이라는 구호만으로 당을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이동시킨 대가였다. 새롭게 도입된 소선구제에서 당선자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인데다 두 자리 수의 지지율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42석인 하원의원 숫자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 현재까지 여론조사의 결과이다.

    그라소(왼쪽)와 베르티노티

    이탈리아공산당이 와해된 이후 재건공산당(PRC)을 창당해 그람시의 정통을 계승하려는 후예들의 현주소는 더욱 암물하다. 백전노장 파우스트 베르티노티(Fausto Bertinotti)가 PRC를 15년 동안 이끌었지만 당의 지지율이 오르지도, 지역조직을 강화하는데도 한계를 드러냈다. 한동안 파울로 페레로(Paolo Ferrero)가 당을 이끌면서 분투했지만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당을 새롭게 이끌게 된 인물은 아부르조(Abruzzo) 출신의 마우리지오 아세르부(Maurizio Acerbo)라는 인물이다. 아부르조는 뒤로는 산맥을 앞으로는 아드리아해를 두고 있는 전형적인 낙후된 지역이다. 아세르부는 엘리트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30년 동안 아부르조에서 지역조직을 강화하고 당을 확대하는데 전념했고,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지역의회에 PRC를 입성시키는데 성공했다. 당원들 사이에는 아세르부의 활약이 회자되기 시작했고 당 지도부는 그에게 대권을 맡기는 결단을 내렸다. 아세르부는 당 조직 재건을 위한 혁신안을 바탕으로 진지전에 돌입했다. PRC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유권자들에게 전국적인 인지도가 없다는 것이 아세르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이탈리아 하원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