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부영입이 자랑인가? 부끄러운 줄 알라"
        2006년 03월 27일 03: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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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그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지사에 출마할 예정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미 이재용 전 환경장관을 대구시장에,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부산시장에 내보내기 위해 영입했다. 

    또 강동석 전 건교부장관을 인천시장 후보로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강 전 장관이 끝내 고사할 경우 김대환 전 노동부장관이나 박호군 인천대 총장을 대안으로 내세울 방침이다.

    외부인사 영입의 절정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 예정인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다. 강 전 장관은 금주 중 열린우리당에 공식 입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열린우리당은 서울, 인천, 경기, 대구, 부산 등 주요 광역단체장 후보를 외부 인사로 채울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의 이중잣대, 자아분열

    정당이 선거철에 외부 인사를 들여오는 것은 그 정당에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 정당이요 외부 수혈로만 존명이 가능한 ‘자생 불능’ 정당이라는 뜻이다. 이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지 자랑할 일은 결코 못된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당에 인물이 없어 외부에서 ‘모셔와야’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정당이 그걸 자랑스러워한다.

    정동영 의장의 말을 들어보자. "한나라당의 후보들은 정치투사들, 정치 싸움에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할 지 모르지만 시민과 도민 살리는데에는 우리당의 후보들이 훨씬 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할 것이다."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과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추켜세우며 나온 말이다. 이 말에는 정치란 정쟁이요, 정치인이란 무능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아마 사실일 것이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열린우리당에 있는 140명이 넘는 의원들은 어떻게 되는가. ‘정치투사’요 ‘싸움’에는 발군의 실력을 가진 여당 ‘정치인’들은 뭔가.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정치투사’요 발군의 ‘싸움꾼’ 아닌가. 전형적인 이중잣대요, 자아분열적 현실 진단이다.

    "차라리 입당을 안하고 기다렸더다면…"

    더욱 재미있는 건 ‘외부인사’가 ‘외부인사’를 축출하는 풍경이다.

    열린우리당 권선택 의원은 행자부 관료출신이다. 소위 ‘전문가’ 출신이라는 얘기다. 그런 그가 오늘 탈당을 선언했다. 염홍철 현 대전시장의 전략공천 움직임에 반발해서다.

    강현욱 전북지사도 원래 신학국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이후 민주당을 거쳐 현재 열린우리당 소속이다. 그를 열린우리당에 끌어들인 건 정동영 의장이다. 그는 이번에 여당 후보가 힘들게 되자 이달말 거취를 결정할 예정이다. 지역 정가에서는 탈당을 한 다음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외부인사’가 ‘외부인사’를 밀어내는 역설의 백미는 이계안 의원이다. 이계안 의원은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에 영입됐다. 현대캐피탈 CEO 출신인 그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지금의 진대제 장관 비슷한 대접을 받았었다. 그러던 그가 요즘 찬밥 신세가 됐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겠다고 밝히고 연일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서울 시장 선거 구도는 강금실 장관의 출마를 전제로 짜여지고 있다. 이미 ‘경선’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닌 게 되어 버렸다. 경선을 치를 지 말 지 여부가 강금실 전 장관의 의중에 달려 있는 듯한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나도 2004년 입당 안 하고 가만히 기업에 가만히 있었다면 지금쯤 영입하겠다고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한국의 보수정치는 늘 탐욕스럽게 새 인물을 먹어삼킨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뱉어낸다. 이렇게 삼키고 뱉고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CEO영입론은 보수정치의 ‘정치포기’ 선언

    여당의 CEO 단체장론도 그렇다. 그런 논리라면 기업 실적 좋은 상장사 CEO를 퇴임후 당연직 광역 단체장으로 임명하면 될 것이다. 굳이 비싼 비용 들여가며 선거라는 것을 치를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정치에는 정치의 본분이 있다. 사람들의 뜻과 희망과 의지를 담아내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건 효율과 수익을 지상 명제로 하는 기업 경영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철학적 바탕과 정치적 신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흔히들 정치란 무용한 것이요, 정당이란 무익한 것이며, 정치인이란 무능한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특정한 정치, 정당, 정치인이 그렇다. 하긴 스스로의 무용성과 무익함과 무능을 극복하기 어려운 보수정치로서는 CEO형 인물을 들여와 기업 수준의 효율과 생산성만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그나마 대안이 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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