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모두 '프랑스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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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3월 25일 12: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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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파리는 1968년 5월을 연상시킨다. 경찰이 소르본 대학 교정에 진입하고, 경찰 기동대와 학생들 사이에는 돌멩이와 최루탄이 날아다닌다. 바리케이드가 쌓이고, 자동차가 불탄다. 노동자들이 학생들의 주장에 호응하고, 150만 군중이 거리를 메운다. 시위는 더욱 격렬해지고, 노총(CGT)은 총파업을 예고한다.

    이제 칠십을 바라보는 노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작년 국내에서도 상영된 영화 <몽상가들>(영어 제목은 The Dreamers)에서 68년 5월의 거리를 재연했을 때만 해도 영화 속 시위 장면은 아무래도 ‘몽상’이라는 말의 씁쓸한 어감과 얽혀 다가왔었다. 그런데 이제 그 영화의 잔상들은 68년에 대한 뒤늦은 찬가가 아니라 차라리 지금 파리에서 벌어지는 광경의 전주곡인 것만 같다.   

    1968로 2006을 단죄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보수 논객들이 1968년 5월과 2006년 3월을 비교하면서 1968의 이름으로 2006을 단죄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말한다. "그 해 5월의 젊은이들은 세상을 바꾸려 했다. 한데 너희는 뭐냐. 세상이 어제와 같았으면 좋겠다고? 21세기 세계 경제의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진 너희 부모 세대의 ‘특권’을 그대로 누리고 싶다고?" 정규직 노동자로 일한다는 게 언제부터 그렇게 대단한 ‘특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1968년에는 정부와 시위대 중에서 시위대 쪽이 ‘진보’의 첨병들이었다면 지금은 시위대가 오히려 ‘반동’배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때 ‘빨갱이 대니’라고 불렸고 68세대 정치인들 중에서도 특히 ‘맛이 간’ 것으로 유명한 다니엘 콩방디도 <파이낸셜 타임즈> 지면을 통해 이런 평가에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그는 자기 세대의 운동에는 미래에 대한 꿈이 있었던 반면 지금의 사태에는 어떠한 미래 전망도 없다고 일갈한다.

    과연, 자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혁명은 역시 ‘과거’의 혁명이다. 파리의 시위가 더 거세지기라도 하면 이들은 40여 년 전 호치민, 마오쩌둥, 체 게바라의 사진이 거리를 수놓던 기억을 그리며 불치의 향수병에라도 빠질 성 싶다.      

    하지만 이런 상투적인 광대극에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다. 광대들의 대사에 발끈해 68년의 참 주인을 가리겠다고 애쓸 일도 아니다. 더구나 저들의 주장은 하나도 그른 게 없다. 저들은 사태의 진실을 너무도 노골적으로 드러내버렸다.

    그렇다. 지금 파리의 젊은이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보수 언론이 떠드는 그 ‘진보’가 맞다. 저들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 또한 맞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다른 누가 아니라 이 시대의 가진 자들과 엘리트들이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바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더 나빠져야만 한다는 ‘진보’는 No!

    과거 ‘진보’의 약속이란 곧 ‘우리 부모보다 나은 삶’이었다. 이제 와서는 ‘특권’으로 치부되는 ‘우리 부모와 같은 삶’도 아니라 ‘더 나은 삶’이었다. 1960년대의 서구 젊은이들에게 이것은 애당초 거리에 나가 외칠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장하면서 학교에서, TV에서 지겹게 들어온 게 바로 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진보’는 불과 한 세대 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진보’의 종착점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이고, 모든 집단, 모든 인간, 지구 위의 모든 것은 이 목적지에 닿기 위한 수단이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도대체 뭐가 좋은 건지는 알 수 없다. 오직 이 목적지를 향한 경주에서 뒤쳐지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무시무시한 예언이 있을 뿐이다.

    파멸의 불길을 피하고 싶다면 부모 세대와 같은 삶은 더 이상 바라서는 안 된다. 한 세대 전 임금 노동자의 삶에서 그래도 견딜만하다고 생각되던 것들은 모두 바뀌고 사라져야만 한다. 최악을 면하기 위해 당신은 더욱 더 나빠져야만 한다. 실업자를 면하고 싶은가. 그럼 실업 상태와 다를 바 없는 일자리를 받아들여라.

    20세기 초반의 대위기 이후 두 세대를 못 버티고 자본주의의 ‘진보’는 다시 한 번 다수의 민중들의 행복과는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 체제가 제시할 수 있는 ‘미래’란 ‘과거’보다 더 나빠지는 것일 따름이다. 
     
    파리 거리의 학생과 노동자들이 묻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이 대변하는 것은 저 소위 ‘진보’도 아니고 ‘반동’도 아니다. 그렇다고 ‘대안’을 기대할 것도 아니다. 그들이 온 몸으로 보여주는 것은 한 마디로 커다란 ‘의문’이다. 걷잡을 수 없는 ‘환멸’이고, 근본적인 되물음 없이는 결코 이대로 더 나갈 수 없다는 단호한 ‘거부’다.

    "좋다. 누구도 앞길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모르면서 아는 채 가장 고약한 길로 인도하는 자들을 따르지는 않겠다." ― 이것은 또한 우리가 지금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거리 곳곳에서 소리 높여 따져 묻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모두 ‘프랑스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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