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쪽파는 겨울을 버텼지만 우린 도시를 못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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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3월 25일 12: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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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장으로 출근하는 길, 봉우리 맺힌 목련 가지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부러진 가지는 가던 길 멈칫하게 합니다.

    가지 부러진 목련과 다리 부러진 경주마

    경주마가 경주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경쟁의 나날을 사는 경주마. 그는 더 이상 경주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그의 생명은 그렇게 끊겨진 것입니다. 인간의 생도 경주마와 별반 다를 것이 없지요.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교육되어지고 경주선에 있지 못할 때는 결국 생의 레일에서 밀려납니다.

    꽃샘추위가 잦아들고 봄 햇살이 앉아 있는 밭을 바라봅니다. 예전에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말을 들으면 발끈했었지만 이제는 그 말이 좋습니다. 어떤 이가 저를 가리켜 ‘대지의 여인’이 되었다나요.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이 되자 추위의 보호막이었던 땅은 연초록의 풀들을 내어놓습니다. 역시 동면하고 있던 풀들이 이불을 걷어차고 얼굴을 쑤욱 내밀었습니다. 일년생, 이년생 냉이가, 어린 쑥들이 세상으로 나와 봄볕을 쏘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땅이 척박하여 더 이상 자라지 못해 수확하지 않고 버려두었던 쪽파들이 얼어붙어 죽었던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파들이 쑤욱 자라고 있습니다. 삽과 곡괭이질에 잘려 죽었다고 생각했던 어성초가 밭갈이 된 밭에서 3엽 싹들이 듬성듬성 탐스럽게 나와 있었습니다.

    땅이 생성된 이래 땅은 인간에 의해 그리도 험하게 다루어져 척박하기 그지없는데 생명을 보호하고 성장하게 하며, 죽음의 상처조차 치유하는 무위(無爲)의  생명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꽃샘추위도 끝났고 우리도 그 여유롭던 몸들이 바삐 움직이는 농번기일세"
    농장 퇴비장에는 두 사람이 발효되고 있는 계분을 한 번 더 뒤엎어 주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20kg 퇴비를 어미가 아이를 안는 것처럼 안아들고, 밭에 뿌리고 있습니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발효되지 않은 똥거름을 내고, 발효되어 가는 똥을 손으로 만지며 밥 익는 냄새로 여겨지는 후각을 가지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낮에는 시장에 가 찬거리를 사고, 가족을 위해 밥을 짓고 학교 간 아이들을 기다리거나 문화센터에 가서 수영도 하는 여염집 여인네들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들이 희망했던 삶들은 애초부터 환상이었는지도, 아니면 순간의 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에요."
    우리와 함께 농사를 짓기 전까지 품팔이, 행상도 해보았고, 공사판에서 허드렛일도 했었던 친구는 이렇게 말을 하곤 합니다. 39살 된 중학생 애 엄마인 한 친구 또한 우리 농장에서 일하고 나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배우고 있다고 행복해합니다. 따지고 보면 도시에서 쫓겨난 사람들이죠.

    대물림으로 내려오는 가난 때문에 온 친구들, 신용불량자가 되어 쫓기듯이 온 여인들, 여성 가장이 되어 먹고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없이 이곳을 택한 사람들. 우리 <자활영농사업단>사람들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나보다 더 징한 얘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가난’한 현재를 벗어나고 싶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에 들어와 농사를 지은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사업단장인 저는 단원들과 함께 ‘색부(嗇夫)되기 위한 색부(色夫)들의 농사짓기’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색부(嗇夫)들이란 하늘과 땅을 섬기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주경야독하면서 농사를 처음 지어보았던 우리, 그것도 무농약, 무화학비료, 무제초제 3무를 지켜가며 친환경농사를 했던 우리를 보기 위해 베테랑급 친환경농군들조차도 배우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농사는 지식인들의 자족적인 농도 아니며, 전원생활의 귀족적인 농도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을 벗어나려는 농입니다. 우리는 농사를 지으며 그동안 ‘농’에 덧씌워졌던 온갖 상징들-‘가난’, ‘불편함’, ‘벗어나고픈 일’ 등-은 강요된 편견이었음을 체득해나가고 있습니다.

    길이 없는 길을 나선 우리.
    자연을 닮아가려는 농사가 전제되지 않으면 공장 대신 농장에 나가는 우리는 농업노동자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 색부들은 자연의 질서를 배우는 농을 통해,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한 종류의 삶>을 과대평가하고 그 종류의 삶의 노예로 나머지 생애를 보내지 않는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人法地,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노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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