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모든 이야기의 원조?
[인도 100문-27] '토끼와 거북이' 등
    2017년 12월 18일 03: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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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작은 왕국 부탄에는 파로Paro라는 곳이 있는데, 계곡이 넓게 펼쳐져 부탄에서 유일하게 국제공항이 있는 곳이다. 파로 계곡에서 멀지 않은 곳에 탁샹Takshang 사원이 있는데, 마추픽추 다음으로 높은 곳에 자리 잡은 구조물이란다.

해발 3,000미터가 넘은 곳 깎아지른 절벽에 이 사람들이 붓다 다음으로 숭배하는 스승 린포체Linpoche가 암호랑이 등을 타고 이곳엘 왔는데, 굴에서 수도를 하고 난 후 이곳에 사원을 지으면 자손만대로 그 사원과 모든 자손이 번성한다고 예언을 했고 그래서 이곳에 사원을 지었다 한다. 과학적, 사실적, 합리적 기준으로 평가하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생각만 받아들이면 사람들의 마음은 훨씬 풍부해질 수 있다.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의 상당수는 원래 인도에서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문화적으로 약간의 변이를 한 후 우리에게 들어왔다.

토끼가 거북이에게 속아 용궁 갔다 온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원래 인도의 《자따까》라는 붓다의 전생 이야기를 모아 놓은 이야기집에는 토끼가 원숭이고, 거북이가 악어로 나온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원숭이나 악어보다는 토끼와 거북이가 더 편하고 익숙해 주인공의 형태만 바뀐 것이다. 이야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대로이고, 그 전달을 하는 매체가 최대한 편하게 바뀔 수 있으면 얼마든지 바뀌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메시지 중심이다. 즉 어려운 내용을 인민들에게 쉽게 전달해주려는 수단인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누가 일부러 만들었든 그렇지 않고 직접 목격을 했든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처에 신화가 없는 곳은 없다.@이광수

한때 전국 각 불교 사원의 연기 설화를 조사해보고 싶었다. 혼자 하기가 엄두가 나지 않아 진척을 시키진 못했지만, 그 뼈대는 대개 파악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많은 사원이나 암자 혹은 탑이나 기타 유적과 관련된 것으로는 원효와 관련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원효’라는 의미는 인민의 신앙과 관련이 깊은 맥락 속에서 인민이 원하는 여러 물질 혹은 기복신앙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이 세계관에서 인민의 바람은 합리적이든 아니든 자신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자연 만물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애니미즘이자 범신론적 세계관인데, 그 안에서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소망이 어떤 방식으로 그 안에 담겨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부모가 태몽을 꾸면 그 이야기의 사실성 여부를 따지고 드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고, 오로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인도 사람들의 세계관이 바로 이렇다. 자연 만물에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은 윤회를 한다. 죽은 영혼은 때로는 바람으로 때로는 물로 때로는 불로 나타나고 땅에서 숲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 죽어서 이별하는 이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받아들이는 이의 몫이다.

인도 사람들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윤회론을 발전시켰고, 동물과의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이 애니미즘과 범신론의 세계관에서다. 그 시간의 폭은 영원이어서 무한대라는 개념을 고안한 사람들도 인도 사람들이고, 있고 없고의 의미가 아니고 있되 없는 즉 비어 있는 공(空)의 개념을 생각해낸 사람들도 인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매우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솝우화도 그 뿌리가 인도고, 라 퐁텐느La Fontaine를 비롯한 중세 유럽의 많은 이야기들의 원조가 인도다. 그래서 한때 1930년대까지는 세계의 모든 이야기의 원조는 인도라는 이론까지 있었다. 그 이론은 폐기되었지만 인도는 여전히 세계에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말은 누군가가 어떤 이야기를 듣고, 거기다가 살을 붙여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사람들이 그리 꺼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목격과 증거가 중요한 게 아니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짐작해서 말하는 것이 그리 크게 잘못된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인도에서 여행하는 한국의 배낭여행객은 길을 물어볼 때 적어도 세 사람이 일치하는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제 길을 갈 수 있다. 이 사람은 저리, 저 사람은 이리, 또 저 사람은 또 저리, 또 이리 … 가르쳐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밉게 보려면 한도 끝도 없이 밉게 볼 수 있는 그들이다. 그렇지만, 근거나 사실만 들이대는 무미건조한 관계보다 인간 관계를 쌓기는 더 나을 수도 있다. 과학과 논리가 아닌 감성과 정으로 가까이 가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필자소개
이광수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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