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기 힘든 문제, 풀 수 없는 문제
[왼쪽에서 본 F1] 조금 더 나은 상황 만들려는 노력
    2017년 12월 16일 12: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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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전 앙리 푸앵카레가 일반해, 즉 일반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많은 사람이 ‘3체 문제’의 일반해를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3체 문제’란 물리학에서 세 개의 물체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떻게 움직이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문제입니다. 물체가 두 개뿐이라면 상황을 제법 간단하게 설명하고 앞으로의 진행을 예측할 수 있지만, 물체 세 개를 놓고 생각하는 순간 ‘일반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푸앵카레가 증명한 내용입니다.

3체 문제와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둘이 아니라 셋 이상의 주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는 언제나 복잡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더 큰 문제는 단순히 풀기 힘든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가위-바위-보’ 싸움이랄까요? 가위-바위-보에서는 일반적으로 승리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위-바위-보에서 항상 이기는 전략을 찾는 것’은 풀기 힘든 문제가 아니라 엄연히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F1도 비슷한 느낌의 다체 문제가 존재합니다. 2017시즌을 기준으로 F1 그랑프리의 레이스에는 10개 팀 20명의 드라이버가 동시에 출전해 서로 앞서가기 위해 경쟁합니다. 단 두 명이 짧은 거리를 달리며 경쟁한다면 그렇게 복잡하게 고민할 일이 없겠지만, 경쟁자가 한 명만 더 늘어나더라도 ‘3인 경쟁’이 마치 ‘3체 문제’처럼 일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3명이 4명으로 늘어나면 계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고, 경쟁자가 20명이 된다면 상상하기조차 힘든 복잡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미시적으로 ‘정확한’ 답을 찾거나 정답에 근접하기 힘든 문제라도, 거시적으로는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20명이 레이스를 펼치는 경우라도 실제로는 단 한 명의 상대와 1대1로 비교할 때가 많고, 1대1의 비교라면 매우 간단하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경우 F1 그랑프리의 레이스에서 ‘일반인들이 보기에 심심한 기차놀이’처럼 레이스카들이 마냥 줄지어 달리기만 하는 것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실제 레이스에서도 F1 팀과 드라이버들은 단 한 명의 상대만을 고려할 때가 많습니다. 종종 각 드라이버에게 전하는 팀 라디오 메시지에서는 자주 ‘너는 누구누구와 레이스 중이다.’라며 딱 1명의 상대를 정해주기도 합니다. 이런 얘기만 듣는다면 F1 그랑프리의 레이스로 대표되는 자동차 경주의 전개가 너무 뻔하다는 느낌이 들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레이스는 단순한 기차놀이로만 보일 때가 많고, 적지 않은 레이스는 (정확히 알고 보더라도) 여러 이유로 정말 기차놀이처럼 전개되기도 합니다.

종종 단순한 기차놀이처럼 보이는 F1 그랑프리의 레이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두 시간 동안 줄줄이 이어 달리는 줄만 알았던 드라이버들은 육체의 한계를 넘나들면서 레이스카의 조종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엔진, 타이어, 브레이크 온도와 상태를 점검하고 때로는 연료를 절약하고 때로는 속도를 높이는 복잡한 조작을 계속합니다. 각 팀에서는 수백 개의 센서가 보내온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레이스카의 상태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것을 주문합니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각 팀의 기지에서는 슈퍼컴퓨터를 동원해 순위를 바꿀 좋은 기회인 핏스탑을 언제 할지 계산을 계속합니다.

상대가 단 한 명뿐인 1대1 대결 구도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20명이 함께 경쟁하는 이상 핏스탑 타이밍을 정하기 위해 계산에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매우 많습니다. 직접 경쟁이 되지 않는 다른 드라이버의 전략과 위치를 정확히 예상하지 못한다면, 타이어 교체 후 엉뚱한 차량 뒤에 발이 묶이거나 수십 초의 시간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슈퍼컴퓨터를 동원해 다른 팀의 레이스카가 최근 기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적절한 전략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단 한 명의 상대라도 드러나지 않은 전략을 예측하는 것부터 상당히 어려운데, 다른 아홉 팀, 18명의 전략을 모두 예측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F1 그랑프리의 레이스에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풀기 힘든 복잡한 또 하나의 문제는 레이스 스타트입니다. 모든 레이스의 스타트가 중요하지만, 0.001초 차이로 승부가 갈릴 수도 있는 정교한 F1 그랑프리에서 스무 대의 F1 레이스카가 빠르면서도 민첩하게 방향을 바꾸며 움직이는 장면은 그 자체로 장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드라이버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가 주어집니다. 20명의 드라이버 각각은 모두 다른 차의 위치와 속도, 진행 방향을 파악해야 하고, 최소한 자기 주변의 네다섯 대 정도의 차량에 대해서는 모든 움직임과 드라이버의 생각을 읽고 있어야 합니다.

지난 2012 벨기에 그랑프리 스타트에서 당시 신인에 가까웠던 로망 그로장이 챔피언 경력을 가진 페르난도 알론소와 루이스 해밀턴 등과 충돌하는 크고 위험한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로장은 인터뷰에서 왼쪽을 보느라 오른쪽을 보지 못했다고 얘기했는데, 이에 대해 다른 F1 드라이버들은 동시에 양쪽을 다 볼 수 없다면 F1 드라이버가 될 생각을 말아야 한다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로장은 다음 이태리 그랑프리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드라이버가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찰나의 순간 빠르게 반응한다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드라이버는 가능한 한 빠르게 위기를 회피하고 사고만큼은 발생시키지 않도록 노력할 뿐입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고는 어떤 계산으로도 미리 예측하기 힘들고, 사전에 이를 대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1대1의 간단한 상호작용이 아니라 ‘3체 문제’ 이상의 복잡한 상황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드라이버가 서로 복잡한 영향을 주고받는 레이스 스타트 직후

한 달 전 치러졌던 2017 브라질 그랑프리의 레이스 스타트에서 F1 역사상 데뷔 후 최다 경기 완주 기록을 이어가던 에스테반 오콘이 사고로 리타이어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고는 표면적으로는 나란히 달리던 로망 그로장의 스핀이 만들어낸 사고였고, 그로장은 이 사고의 책임을 물어 시간 페널티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드라이버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살펴보면, 사고가 일어나게 된 상황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이스 스타트 직후 에스테반 오콘, 스토펠 밴도른, 로망 그로장까지 세 명이 나란히 달리게 된 상황이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스타트가 빨랐던 밴도른이 첫 코너에서 오콘과 그로장 사이로 파고들어 앞서나가려고 했지만, 안쪽으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던 오콘을 피하려다 그만 그로장과 접촉하고 말았습니다. 당연했던 오콘의 버티기가 결국 밴도른과 그로장 사이 접촉의 원인이 됐고, 결국 그로장의 왼쪽 뒤 타이어에 손상이 생겼습니다.

이후 1.5 km 이상을 더 달리던 그로장이 여섯 번째 코너에서 마침 오콘의 안쪽으로 파고드는 순간, 바람이 조금 빠진 타이어 때문에 스핀이 일어났고, 레이스카를 통제할 수 없게 된 그로장은 그만 오콘과 부딪힌 것입니다. 오콘이 밴도른과 경쟁하며 버텼던 첫 코너에서의 배틀이 결국 오콘 자신의 리타이어로 이어진 셈입니다. 물론 그로장이 스핀해 오콘이 리타이어했다는 직접적인 원인 제공에 대한 책임 소재 때문에 페널티가 주어지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누구도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복잡한 상호 작용이 가져온 결과가 오콘의 리타이어일 뿐입니다.

결국, 이런 복잡한 상호 작용이 만들어낸 사고는 완벽하게 예상하고 예방할 수는 없습니다. 단순한 제삼자, 혹은 방관자라면 고민해봤자 머리만 아픈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0명의 주행 데이터와 전략을 예측하고 슈퍼컴퓨터까지 동원해 핏스탑 타이밍을 계산하는 각 팀의 전략 담당자처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라면 모든 문제의 원인과 복잡하게 얽힌 상호 작용을 분석하고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차근차근 원인을 분석한다면 다음에 또 벌어질지 모를 또 다른 사고나 원하지 않는 상황을 피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런 접근은 레이스 운영의 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요소들이 정교하게 맞아 돌아가야 하는 F1 레이스카에서 세 가지 이상의 부품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고장이 나거나 큰 문제가 발생했다면, 서로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면밀히 분석해야 합니다. 당연히 근본적인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며, 때로는 ‘3체 문제’처럼 해결 불가능한 ‘풀 수 없는 문제’일 경우도 있습니다.

F1 그랑프리 레이스에서 승리 (혹은 목표를 달성) 하기 위해서는, 당면한 문제가 풀기 힘든 문제거나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것에서 출발해 끊임없는 노력을 이어가야 합니다. 단순하게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는 식으로만 생각하려고 해서는 이런 문제의 답에 접근하기 어렵고, 때로는 쉽게 도달한 것 같았던 답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더 큰 문제의 싹이 되기도 합니다. F1 관계자 대부분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능한 문제의 바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이 얘기가 비단 F1만의 얘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든, 경제적인 문제든, 정치적인 문제든 단편적인 해답과 직접적인 원인에만 집중해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쉽게 답이 보이는 것 같은 문제에 많은 전문가가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퍼부어 고민하고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일반적인 해’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조금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흑과 백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일도양단에만 목을 매는 이들이 주변에 너무 많이 보여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풀 수 없는 문제에 맞선 노력이 꼭 모두 의미 있다고 단언하지는 못하더라도, 힘겨운 문제 풀이에 나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의 노력에 섣부른 비난을 퍼붓는 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필자소개
윤재수
2010년부터 지금까지 MBC SPORTS, SBS SPORTS, JTBC3 FOXSPORTS에서 F1 해설위원으로 활동. 조금은 왼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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