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경, 정의를 위한 투쟁
    일본 학계와 사회, 그 일그러진 현실
        2017년 12월 13일 10: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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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일본과 저의 인연은 제 반평생 이상 되는 셈입니다. 대학에서 조선/한국사 전공이었지만, 동시에 일본사나 일본종교사, 그리고 일본문학사도 배웠습니다. <万葉集>과 <日本霊異記>, <太平記>, <方丈記> 등 러시아어로 번역돼 있는 일본 고전 문학의 작품들을 모조리 읽었으며, 박사과정에 들어가서는 <일본서기>와 <新撰姓氏錄> 등을 주된 원자료 삼아 가야사 연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일본 식민지 시대 관학자들의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하기도 했지만, 일본 연구자들의 꼼꼼한 고증이나 자료 정리에 나름 긍정적으로 감동하기도 했죠. 러시아어판 <한국통사>를 쓰는 데 일본 자료를 활용해야 하기도 하고, 또 일본어 회화를 좀 배워보고 싶기도 해서, 2006년에 제 안식년의 일부를 한 일본 국립대학에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살면서 느낀 것은? 일본 서민들의 성실하고 절제된 생활리듬에 대해 정을 느끼기도 했지만, 일본의 “대학”이라는 소세계는 제게 솔직히 대단히 불편했습니다. 실은 범죄소굴인 한국의 “대학”과 거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죠.

    자본이나 악명 높은 정객들의 기부를 받아 이것저것 짓는 대학에서 느낀 산-정-학의 유착 구조나, 비정규직들이 “실세 교수님”들로부터 혹사를 당하고 대필을 강요당하는 상황이나, 제가 경험적으로 익히 아는 한국 “학교”의 풍경과 그렇게까지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상당수 연구자들의 꼼꼼하고 열성적인 공부 태도에 저는 다시 한 번 감동을 받았지만, 조직이나 행정은 제 예상 이상으로 비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학교”에 대한 제 생각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김미경 선생님 “사태”를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김미경 선생님 문제와 부딪친 것은 금년 여름이었는데, 처음으로 제게 “제보”한 것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한 서구계 교원이었습니다.

    일본 학계에서 다들 놀라지만, 크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건이 있다고, 히로시마 시립대에서 어떤 한국계 여성 교원을 이지메해서 각종 혐의를 억지로 덮어씌워 쫓아냈다고, 만약 일본인이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 리도 없지만 일본에서는 외국인이라면 일단 2등인간이라고, 자신이 반평생 이상 일본에서 살아오면서 늘 이를 느껴왔다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문제인가, 크게 말해서 안 될 문제들이 자칭 자유민주주의국가 일본에서 과연 있는가 싶었는데, 그 뒤에 한국에 와서 신문에서 김미경 선생님의 부당해고와 복직투쟁에 대해 읽었습니다. 제가 읽은 부분들이”과연 학문의 세계에 그런 일이 있는가”라고 제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아예 믿어지지 않았는데, 일단 김미경 선생님 본인에게 확인해봐야 하겠다고 결심하여 신문 기자 분을 통해 그 전자우편 주소를 알아내 결국 만나게 됐습니다.

    만나고 말씀 듣고 이해한 현실은 제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한 때 동아시아 근대적 학문의 메카였던, 한국이나 중국에서 지금도 쓰고 있는 상당수 학술 번역어들을 명치시대부터 신조해온 일본 학계에서 이런 일이 발생돼도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불가사의했습니다. 다수 학자들의 양심과 연대의식이 어디로 간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김미경 선생님께서 제게 이야기해주시고, 나중에 글로 정리해주신(관련 글 링크) 히로시마 시립대 평화연구소라는 소세계는 “평화”보다 차라리 “전쟁”과 더 흡사했습니다.

    김 선생님께서 2005년에 도일하고 나서 학교 관리자들로부터 “동료 연구자”라기보다는 “관리 대상”으로서 취급받아 온 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서구계 교원의 말대로는 “비일본인”인 이상 일본 사회에서 이미 타자화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또 구미계 남성과 한국계 여성이 받는 대접은 그 속에서도 확연히 다르죠. 외국인 차별, 한국/조선인에 대한 민족 차별, 그리고 여성 차별 등이 하나로 어우러져 여성으로서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기에 매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드는 겁니다.

    도일 직후부터 김 선생님이 한국 언론에 쓰신, 일본 우파의 비위에 맞지 않은 글들이 일본 넷우익에 의해 번역, 유통돼 저자에 대한 협박 메일 등으로 돌아오는데도 학교 당국은 아예 극우들의 편이 되어주고 있었죠. 영토 문제에 대한 의식 등 일본 우파로서 “민감한” 주제들에 대해 연구하셨던 김 선생님은 학교에서 “잠재적 범죄자” 대접을 받았으며 열쇠 등 물건이 없어진 것 같기만 하면 아무 근거도 없이 “도둑”으로 몰리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을 파괴시킬 만한 이지메는, 2013년에 연구소 소장으로 극우파 “키카와 겐” (吉川元)씨가 부임하고 나서 최악의 수준으로 도달하게 됐습니다. 원칙상 영어로 연구, 집필 활동할 교원으로 채용된, 즉 계약 조건상 일어를 배울 의무도 없었던 김 선생님에게 오로지 일어로만 돼 있는 내규 등이 하달되고, 행정집행 과정 전체가 괴롭힘 그 자체가 된 것입니다.

    결국 연구년을 본래 계획대로 무조건 런던에서 보냈어야 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런던 대신 한국에서 집필과 학회 활동에 열중해온 김 선생님은, “키카와”의 조언(명령?) 대로 영국 왕복 항공료를 청구함으로서, “키카와”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시게 된 겁니다.

    학교의 책임이 압도적으로 큰 행정 실수/오류가 “범죄”로 둔갑되고 김 선생님은 일본 학계에서 전례도 없는 구속수사를 당하셨지만 불기소 처분되셨습니다. 경찰의 눈으로 봐도 “범죄”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던 거죠.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퇴직금을 체불한 채 김 선생님을 부당해고시켰으며 그 체류 권리까지 박탈해 사실상 일본으로부터 추방시키고 말았습니다.

    일본 학계에서는 극우파의 입맛에 맞지 않은 말과 행동을 취하는 교원들은 적어도 수백 명 정도 있습니다.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 좌파 지성의 전통은, 아직 다 멸망하지는 않았죠. 쇠퇴 일로를 달린다 해도요. 그리고 외국계 교원/연구자의 수도 이제 수천 명에 이르죠.

    그런데 그 어떤 일본인 좌파도 그리고 그 어떤 “가이진” (구미계 외국인) 교원/연구자도 이와 같은 혹독한 이지메와 부당노동행위, 부당대우, 그리고 행정적 “함정”에 의한 구속수사와 부당해고+국외추방을 당한 적은 없었습니다. 결국 일본 극우파가 보기에는 “민감하기” 짝이 없는 영토 문제, 과거 집단기억 연구를 성실히 해온 한국인 여성 연구자는, 타고난 민족/성별 “성분”에 의해서 공포 분위기 조성을 위한 “시범케이스”로 만들어져 집중포화를 받으신 것이죠.

    이와 같은 여성차별+민족차별을 용인하면, 일본 학계뿐만 아니고 일본 학계와 긴밀히 연결돼 있는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 학계에서도 극우들에 대한 공포 분위기가 공고화되며 차별-부당대우의 전례가 만들어져 앞으로도 다른 연구자들을 괴롭히게 될 겁니다.

    저는 그래서 김미경 선생님께서 지금 진행하시는 복직투쟁에 한-일 양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학계 전체가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는 김미경 선생님만의 개인 문제만이 아니고 학계에서의 정의 구현을 위한 투쟁이죠. 정의가 없는 학계에서는 학술다운 학술이 가능할까요?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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