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꽃이라는 이름의 유래
[푸른솔의 식물생태 이야기] 추목단
    2017년 12월 12일 11: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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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동안 쉬었던 ‘푸른솔의 식물생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간격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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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꽃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 보면
꽃 속에 누나 얼굴 떠오릅니다
시집 간 지 온 삼년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고향의 어머님은 봄마다 씨앗을 뿌리고 가을이면 씨앗을 따서 한지에 싸 처마 밑에 고이 매달아 놓곤 하셨습니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다는 동요만큼이나 무던히도 어머님은 과꽃을 심으셨고 또 과꽃은 피었습니다. 학교 화단에도 피었고, 친구네 집 앞에도 과꽃은 피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과꽃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화려한 꽃들이 개발되고 도입되니 앞다투어 더 아름답고 더 예쁜 꽃을 찾아 가나 봅니다.

과꽃은 옛적에는 한자로 秋牡丹(추목단=추모란) 또는 唐菊(당국)이라 하였습니다. ​秋牡丹(추목단)은 가을에 꽃이 피는데 모란의 잎과 비슷하다는 것에서, 唐菊(당국)은 중국(唐)에서 전래된 국화라는 뜻을 가졌으니 국화와 유사하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남쪽에서는 재배하는 식물이지만, 한반도 북부와 중국의 동북부를 거쳐 내몽골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라고 하니, 唐菊(당국)​이라 불리워질만 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1820년대 경에 저술된 유희의 물명고에서는 ‘당구화'(당국화라는 의미)라는 한글명이, 1870년에 저술된 황필수의 명물기략에는 ‘당국’이라는 한글명이 보입니다.

​19세기 중반경에 완당(추사) 김정희가 지은 한시 하나를 살펴봅니다. 왜 秋牡丹(추목단)인지가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秋牡丹(추모란)

紅紫年年迭變更(홍색 자색 바꿔가며 해마다 꽃이 피니)
牡丹之葉菊之英(모란의 잎에 국화의 꽃봉오리일세)
秋來富貴無如汝(가을 오면 너처럼 부귀로운 것이 또 있으리)
橫冒東籬處士名(동쪽 울타리 처사라는 그 이름은 아무래도 맞지 않네)

그런데 과꽃은 무슨 뜻에서 유래된 말일까요?

​과꽃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村田懋麿(ムラタ シゲマロ)​​이 지은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1932)에 ‘과ㅅ곳’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고, 이것이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과꽃’으로 기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 중의 한명인 이덕봉 선생이 과꽃은 황해도 해주의 방언에서 채록된 이름이라는 것을 기록해 놓은 것외에는 달리 설명자료가 없습니다[이덕봉, 조선산 식물의 조선명고, 한글5(한글학회, 1937.1.) 11면 참조].

그래서 학자들은 과꽃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미상이라고 적어 놓기도 하였습니다(이우철, 한국식물명의 유래, 일조각, 81면 참조).그런데 우리말에 국화 모양을 새긴 쇠 혹은 나무의 판이나, 여자 머리에 꽂은 국화 모양의 꽃 장식을 ‘과판’이라 합니다. 이 과판은 국화(菊花)+판(板)의 합성어로 국화의 옛말이 구화이므로 구화판으로 발음되었고 축약되어 과판이 된 것으로 이해된다고 합니다[김민수, 우리말 어원사전, 태학사, 107면; 백문식, 우리말 어원사전, 박이정, 62면 참조. 일제강점기에 저술된 조선어사전(1920)은 과판에 대하여 ‘菊花瓣(국화판), 轉稱 구화판’이라고 기록하였음].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과꽃은 국화 + 꽃의 합성어로 국화를 닮은 식물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인 것으로 보입니다. 국화를 닮았다는 뜻의 옛이름 당국(또는 당구화)과도 뜻이 통하는 이름이 아닌가 싶습니다. 과꽃 예쁜 꽃을 보면서 완당 김정희가 국화 꽃봉오리를 떠 올렸듯이 과꽃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옛사람들은 국화 꽃을 연상하였나 봅니다.

​​시골 어머님의 화단에는 더는 과꽃이 없습니다. 이름도 찾기 어려운 알록달록하고 꽃이 큰 다년생 외래 도입종들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과꽃이 그리운 나는 꽃 심을 화단 하나 없는 닭장 같은 아파트 생활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올해 고3이 되는 아들 녀석은 과꽃의 사진을 보여 주니 국화 꽃이네라고 합니다.

지나가는 덧 없는 세월에 옛삶들이 잊혀지고 새 삶들이 나타나듯이 꽃들도 그렇게 잊혀지고 새 꽃들로 채워지나 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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