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참 좋아졌다고? 웃기지 마라"
    [독자투고] 장애인 이동권 투쟁…"튼튼한 다리 위한 에스컬리이터 많은데"
        2012년 04월 29일 05: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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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12월. 독일수상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를 방문, 유대인 학살 위령비를 찾아 나치의 만행에 대해 사죄했다.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구한 용서는 자신의 조상 히틀러가 저지를 만행에 대한 것이었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나치즘과 동일한 것으로 경계하는 독일인들. 나치 히틀러 정권아래 얼마나 많은 독일인들이 유태인을 살리기 위해 감춰주고 노력했는지, 그 역사적 사실의 선례를 드러낼 생각 없이 철저히 반성과 참회의 태도로 일관하는 그 자손들. 독일사회. 그래서 유태인과 독일인은 평화로운 관계를 얻을 수 있었다.

    독일, 일본 그리고 남녀관계

    1910(융희 4)년에 일제는 한일병합 조약에 따라 통치권을 빼앗고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다. 주권을 강탈한 일제는 문화를 사멸시키려했고 억압과 살인을 일삼았으며, 여인들을 성 노예로 감금했다. 전범을 모시는 일본 우익들은 자신이 벌린 전쟁에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원폭 피해자로 둔갑하고 과거를 정당화하려 한다.

    자손들에겐 왜곡된 역사를 교육하고, 심지어 일제에 충복했던 한국인들의 자손은 그 치욕스런 역사를 ‘근대화를 가능케 해준 축복의 시간’이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머지않아 전범의 세대가 이 땅에서 모두 사라졌을 때, 왜곡된 역사를 배운 일본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할 지도 모른다. “난 몰라. 내가 저지른 일도 아닌데 말야. 내게 그러지 마.”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평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히틀러의 자손들이 무릎을 꿇고 반성과 참회의 눈물로 사죄를 하고,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비로소 평화 있듯이, 일본과 한국의 감정은 그러한 과정이 동반되었을 때 가슴 깊은 평안이 찾아오리라.

    남녀의 관계 역시 그러하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투표권을 얻은 지 불과 100여 년을 조금 넘은 정도이며, ‘아내와 북어는 3일에 한번씩 두들겨 패야 맛있다’라는 말이 한갓 우스갯소리가 아닌 현실에서 통용되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다.

    나 어릴 적 만해도, 초점을 잃고 쓰러져 허우적대는 여인을 주먹과 발과 의자로 두들겨 패는 남편을 길에서 적잖게 볼 수 있었다. 만삭의 배를 부둥켜안은 채 매를 맞는 여인, 어느 새 몰려든 십 수 명의 동네 사람들, 아무 말 없이 주위를 둘러싸곤 구경만 하고 있었다. 차분한 표정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이란 군대를 제대한 건장한 남자였고, 여성은 남성에게 소유당한 한갓 열등한 포유류일 뿐이었다.

    튼튼한 다리 위한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이 자리에서 가부장사회의 역사를 즐비하게 나열하고, 그 잔재가 현재에도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는 따지지 않으려 한다. 다만 한 가지 질문만. 남성들이여, 당신의 어머니께, 누이께, 지나치는 모든 여인들에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반성과 참회의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독일이 어떻게 평화의 관계를 확립했는지 안다면, 일본이 왜 우리와 진정한 평화적 관계를 획득하지 못했음을 인지한다면, 나를 비롯한 그대 남성들이여, 나는 그런 적 없다 하지 말고, 남은 인생 여인들에게 사죄하는 마음가짐을 갖기를.

    2012년 4월 20일. 32번째 장애인의 날을 맞이했다. 혹시 ‘버스를 타자’라는 타큐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지하철역 어딜 가나 십수 개의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지만,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는 하나뿐.

    세금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국민으로부터 거두어들인 돈을 사회 구성인 모두가 혜택을 받도록 사용하는 장치일 게다. 그렇다면 비장애인들과 장애인들의 관계 역사는 어떻게 쓰여졌는가? 비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장애인의 사회적 몫을 온전히 가로챘다.

    튼튼한 다리를 위한 에스컬레이터는 곳곳에 설치되어있지만, 장애인을 엘리베이터는 하나일 뿐. 장애인을 위해 턱을 깎고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줬다고? 영화 ‘버스를 타자’를 혹시 보셨는가? 장애인들은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버스를 타기 위한 퍼포먼스를 실행했고, 목에 쇠사슬을 감은 채 지하철 철로에 누웠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 웃기지 마라”

    그렇게 해서 저상버스라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권리를 찾았고, 엘리베이터 설치로서 치하철을 탈 수 있는 이동권의 최소를 획득할 수 있었다. 비장애인들은 그들의 이동 모습을 보곤 웃으며 말한다. “세상 참 좋아졌지?” 웃기고 있다.

    장애인의 권리를 박탈한 가해자가 그윽한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는 모습을 보자면 속이 뒤틀린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장애인들에게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비장애인들. 그거 장애인들이 목숨을 걸고 연행당하며 얻어낸 결과인 것을 혹시 아시나?

    그나마 하나 있는 엘리베이터 고장 나면 한 정거장 더 이동하여 거꾸로 걸어가야만 하는 실정이다. 장애인들에게 도움과 봉사의 손길을 보내곤, 불쌍해 하는 마음과 시혜를 베푼 뿌듯함에 안도하는 모습들. 보고 있자면 파렴치한 강탈자가 휘두르는 권력의 장면으로 다가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도움의 손길과 봉사의 정신이 나쁘고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지녔다면,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봉사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설 때, 그들의 권리를 강탈한 파렴치한으로서 사죄를 빌어야 마땅할 것이다.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사회가 이렇게 될 때 까지 분노는커녕 침묵으로 동조했던 나. 비장애인으로서.

    / 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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