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드 문제와 한·중 관계의 변화
    [중국 매체로 중국 읽기] 상호간 오고가는 긍정 신호들
        2017년 10월 31일 06: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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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0월 30일 국회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면서 사드문제와 관련하여 ‘三不’입장을 표명하였다. 다음은 이 같은 강 장관의 입장에 대한 중국 측 반응을 보여주는 사설이며, 앞으로 한중관계의 새로운 변화가 있을 것을 예고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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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구시보 사설: 한국의 태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2017-10-30

    한국 외교부장관 강경화는 오늘 국회에서, 한국은 ‘사드’ 미사일요격시스템의 추가 배치를 고려하지 않으며, 또 한국 정부는 미국의 미사일요격시스템(MD)의 구축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또 한미일 방위협력은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며, 단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에서만 방위협력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전 날인 28일 한미 국방장관은 공동성명에서, ‘사드’는 ‘임시배치’이고 어떤 제3국도 겨냥하지 않는다고 재천명하였다.

    한국 측이 중국을 향해 빈번한 신호를 보내면서 ‘사드’와 기타 국방문제를 둘러싼 중국의 관심에 응답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보다 ‘사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한국 측의 이러한 새로운 모습은 환영할 만하다.

    미국은 유럽에 미사일방어시스템을 구축한 후, 다시 아태지역에서 이와 똑같은 일을 하려고 하고 있다. 유럽에서의 핑계는 이란 문제였지만, 아시아에서는 북핵문제이다. 한국 측이 ‘사드’ 추가배치를 하지 않겠다고 강조하면서, 이와 동시에 미국의 미사일방어시스템에도 참가하지 않고 한미일 삼국 군사동맹도 추구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은, 최소한 아태지역 미사일방어시스템 구축을 반대하는 베이징의 전략적 태도의 엄중함을 인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대국 간의 게임에 휩쓸려 어느 한쪽 편을 드는 일은 피하겠다는 뜻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일 년여의 기간 동안 중한은 ‘사드’ 문제를 둘러싸고 대치상태에 들어갔는데, 한국 매체가 보통 인용하는 통계를 보면 한국 측은 이로 인해 총 120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고 GDP는 0.4%가 낮아졌다. 중국 측도 물론 손실은 있었다. 그러나 베이징은 엄정한 입장 표명을 통해 외부 세계를 향해 중국은 자신의 전략적 안전을 손상시키는 일은 강력히 반대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중한 간의 ‘사드’ 마찰은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외부 세계로 하여금 중국이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는데 있어서의 결심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강경화 외무부장관의 최근 표명이 물론 ‘사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희망은 ‘사드’의 위험을 통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이 시스템을 한국 밖으로 철수시키는 것이다. ‘사드’를 한국에 들여오도록 처음 고안한 것은 미국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려면 더 많은 교섭과 게임이 필요하다.

    중한 간의 관계에 대해 말하면, 우리는 한국이 한미 군사동맹을 한반도문제 틀 내로 엄격히 통제하는 데 가장 큰 관심이 있으며, 동시에 한국이 강대국 간의 게임에서 중립을 지켜주길 바란다. 미국은 아마도 한미 군사동맹을 강대국 간의 게임에서 전초기지로 이용하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민감하며, 한국은 마땅히 그에 대해 ‘모르는 척’ 가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소개
    과거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며 사노맹 사건으로 3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 사회를 연구할 목적으로 16년간 중국 유학생활을 보냈다. 중국인민대학과 상해재경대학에서 각각 금융(학사)과 재정(석사)을 전공했고 최종적으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에서 레닌의 정치신문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8월 귀국하여 울산에 정착해 현재 울산 평등사회노동교육원에서 교육강사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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