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론화 이후 탈핵의 진지전을
    [에정칼럼] 더욱 많고 다양한 탈핵 참호를 만들자
        2017년 10월 26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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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 결정과 함께 탈핵정책의 계속 추진을 함께 확인하게 한 공론화 과정과 결과에 대한 평가가 봇물처럼 나오고 있다. 대체로 탈핵운동 진영에게는 뼈아픈 패배로, 한발 더 들어가서 말하자면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전쟁에서는 나쁘지 않은 포석 효과를 거둔 정도로 해석되고 있는 것 같다.

    원전업계 입장에서는 당장의 고비를 넘기면서 기세를 회복하기는 했지만, 더 이상 정부가 일방적으로 편을 들어주지도 않으며 에너지 산업도 다변화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며 스스로 생존을 위한 궁리에 몰두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탈핵 공약과 신고리 5,6호기의 백지화 사이의 간극의 곤란함을 일정하게 회피하면서, 즉 책임 다툼의 여지를 줄이면서 에너지전환 정책을 구체화할 여유와 근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론 종사자와 연구자들은 숙의 민주주의와 에너지전환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보며 두고두고 이야기할 재료들을 얻었다. 이 대목에서 무슨 말을 덧붙이는 것은 자칫 남 말하듯 ‘내가 이럴 줄 알았다’라는 투로 얄미운 평론을 보태는 꼴이 되기 십상일 텐데, 이를 인정하면서 몇 가지 단상을 적어 본다.

    공론화위원회 종합토론 모습(사진=공론화위원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냉정히 따져보면 부적절한 면이 많았다. 물론 이는 “에너지 정책을 비전문가인 공론화위원과 시민참여단이 결정하게 해선 안 된다”라는 식의 비난이 아니다.

    부적절함은 우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후퇴와 한수원이 주관하는 공사의 중단 및 취소라는 정책 집행상의 문제를 단기적인 시민 토론과 여론조사를 통한 정책 결정으로 해결하려 한 의도에서 비롯하는 문제에 있다. 산업부는 공사 중단이 장기화됨에 따른 부담과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작성에 따른 시간적 압박 속에서 3개월 이상을 확보할 수 없었고, 실제로는 2박 3일의 합숙으로 대부분의 과정이 대체되었다.

    둘째로는 방식의 부적절함을 지적할 수 있다. 한국에서 아직 일천하기는 하지만 공론조사라는 방법은 유전자조작 식품의 안전성, 동물실험의 허용, 신기술의 적용 등 매우 복잡하고 불확실한 정보와 논리가 개입되어 있는 주제에 대하여 찬반이 아닌 개방적인 권고를 만드는 데 활용되어 왔다. 그런데 이번 공론화 과정은 많은 가치 판단이 필요한 문제의 성격에 비추어 찬성과 반대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도록 설계되었던바, 공론조사 본연의 취지나 장점을 살리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셋째로는 진행 과정에서의 문제점들이 있었다. 비록 상호소통과 숙의의 절차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건설 재개와 중단 측은 링 위에 올라간 플레이어가 되고 시민참여단은 오디션 프로의 청중심사단과 같은 역할을 맡았다. 이 인기투표의 대리인이 된 플레이어들 사이의 현격한 가용 자원의 차이나 외곽의 언론 지형, 그리고 형식적 중립성에 치중한 정부의 태도는 ‘기울어진 운동장’ 시비를 낳았다. 고압송전탑에 맞서 12년을 싸워 온 밀양의 주민들과 경주 지진 이후 탈핵이 바로 자신의 문제가 된 부울경 시민들의 의사가 내용적으로 반영될 통로도 없었다. 이러한 점들은 추후 다른 정책 결정에서 공론조사 방식을 활용할 경우에 꼭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다른 한편, 탈핵 진영의 전술적 오류와 한계도 지적된다. 거의 완공을 앞둔 신고리 4호기와 신울진 1,2호기의 문제를 제외하고 신고리 5,6호기만을 결정하는 프레임을 인정하고 시작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핵발전 관련 이슈를 협소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정부의 잠정적 입장과 행보를 시민사회의 대표 자격으로 방어해야 하는 궁색한 입장에 빠지게 한 면이 있다. 물론 이는 탈핵 이슈의 정치화와 전국화 및 숙의 과정을 통한 해결의 의미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공약을 지렛대로 삼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선택지가 좁았던 면이 있지만, 탈핵 진영의 역량이 더 컸더라면 보다 주도적으로 상황을 끌고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응 과정에서 역시 탈핵정책 일반과 신고리 5,6호기 문제의 구체성이 논리적으로 잘 분리되지 않으면서 막판에 원전업계의 핵발전소 수출 논리와 신재생에너지와 가스 발전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이는 공론화위원회 보고서에 포함된 시민참여단의 연령별, 시간별, 의제별 의견분포 변화 결과에서 어렵지 않게 해석가능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공론화 과정의 성과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핵발전 문제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식 정치와 언론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 그리고 핵발전을 둘러싼 다툼과 경합의 지점과 문법이 더욱 구체화되었고 업그레이드되었다. 이제는 “탈핵하면 촛불 켜고 살 것이냐?” 또는 “한국은 국토가 좁아서 신재생에너지는 안 된다”는 단순 논리를 어느 정도 넘어선 논의가 가능해졌다. 또 하나 중요한 결과는 핵발전 체제를 지탱하는 세력과 논리의 실체가 다각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인데, 이는 ‘핵마피아’라 불리는 집단의 실체이기도 하고 그보다 넓은 범위의 집단과 이데올로기이기도 함을 알게 되었다.

    백여 명이 넘는 원자력 관련학과 교수들에서 서울대학교 공대 학생회, 경제신문의 논객들과 일부 노동조합들에 이르기까지 직접 입장을 발표하고 행동에 나선 모습은 탈핵진영에게 지피지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만들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원전업계도 자신들이 펼친 논리와 동원한 데이터가 앞으로 자신들의 모든 행보를 규정하게 만들 것이다.

    비록 불완전하고 부적절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숙의 민주주의 자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정책 결정과 갈등 해결 방식으로 실험된 것 자체의 성과도 부인해선 안 된다. 그리고 이번에 얻어진 모든 정보와 경험들은 향후 탈핵운동의 중요한 지반이 될 것이다. 하지만 탈핵운동과 탈핵 의제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공론화에 집착하거나 머물러서도 안 되며, 동시에 공론화 방식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로 치우칠 필요도 없다.

    여기서 다시 탈핵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생각해본다. 일본의 사회학자 하세가와 고이치는 <탈원자력 사회로>(일조각, 2016)에서 간 나오토의 일본 정부와 독일의 사민당-녹색당 연정 및 메르켈 정부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평가한다. 간 나오토 수상은 후쿠시마 사고를 맞은 직후 탈핵 정책을 강력하게 천명했지만 그 시간표와 방법은 추상적이었고 정부 내 합의 형성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서 ‘임기응변적이고 즉흥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간 나오토 수상 개인의 진정성과 의지와는 별개로 이후 민주당이 총선에서 아베에게 패하면서 탈핵 정책도 급격히 무력화되고 말았다.

    반면에 독일은 2000년의 1차 탈핵 합의 이후에도 2011년에 4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윤리위원회의 과정을 거쳐서 탈핵의 궤도를 공고히 했다. 하세가와 고이치는 이것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우선 녹색당을 시작으로 하는 사회운동의 힘, 시민사회의 대항력을 꼽는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인 3월 26일 독일 전역에서 벌어진 26만 명의 핵발전 반대행동은 오랫동안 다져온 탈핵운동의 저변을 증명한다. 둘째로 BUND 등 전국적 환경운동 조직의 존재, 셋째로 지방분권적 정치 환경에서 프라이부르크 등 지방도시와 지방대학들의 다양한 전환 실험의 전개, 넷째로 다양한 수준에서 설립된 환경문제 연구기관의 존재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어떠한가?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에만 기대어 5,6호기가 백지화되었다면 한국 탈핵의 기세 좋은 시작이 되었겠지만, 그것이 불과 몇 년 후까지라도 탈핵 정책이 지속된다는 보장일 수 있을까? 탈핵 의제가 이만큼 온 것, 그리고 공론화 결과가 나온 이후 정부가 발표한 탈핵 로드맵에서 삼척과 영덕이 신규 핵발전소 예정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배제된 것도 따지고 보면 밀양 투쟁과 삼척과 영덕의 주민투표 운동 같은 현장의 투쟁이 축적되어 온 결과가 아닌가? 이러한 지형의 변화에 먼저 산업이 화답하고 정부는 가장 늦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닌가?

    따라서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는 무척이나 아픈 일이지만, 지금 중요하게 확인해야 할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탈핵 로드맵조차 탄탄대로가 아니라는 점, 아울러 2079년 또는 그 이후의 탈핵이라는 시간표도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핵발전 체제는 한수원이라는 기업과 핵공학자들에 국한되지 않는 광범한 참호와 보루를 구축하고 있음을 우리는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변화하는 에너지 시장과 기술 환경, 그리고 탈핵 정치와 탈핵 시민의 더디지만 꾸준한 성장을 감안하면 한국의 탈핵은 대략 2030년을 전후로 중요한 분기점을 맞을 것이며, 이를 둘러싼 새로운 구체적인 의제가 제출되고 경합이 펼쳐질 것이다. 때문에 과제는 어떻게 2079년 이전의 가장 빠른 시점에, 가장 단단한, 그리고 가장 에너지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정의에 부합하는 에너지전환을 이룰 것이냐 하는 것이다.

    탈핵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 길이다. 그 누구도 이 길뿐이라고 말할 순 없을 뿐더러 오히려 더욱 많고 다양한 길이 나야 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러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방법으로 길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도 공론화만이 방법이 아니다. 데모도 필요하고, 에너지생산 협동조합도 많아져야 하고, 수많은 에너지전환 시나리오가 경쟁하고 논박하며, 기발한 지역에너지 실험들이 펼쳐지고, 강연과 토론, 시와 노래의 밤도 수십년 동안 열려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제 탈핵운동도 각자 참호를 파고 간판을 달고 탈핵의 진지전을 구상해야 할 때다. 탈핵의 시민사회가 견고하게 모습을 갖출 때 탈핵의 시점과 방법은 이미 결과로 드러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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