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케어’에도
    어린이 병원비 부담 여전
    비급여의 ‘예비급여’ 전환이 문제
        2017년 09월 26일 04: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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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백혈병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13세 A군의 지난 6개월간 병원비 총액은 1억2천만 원이다. 이 중 A군의 가족들이 6개월 간 내야 할 본인부담금 총액은 1천8백만 원. 연 가처분 소득의 40%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하는, ‘재난적 의료비’ 가구에 해당한다. 이 가족에게 ‘문재인 케어’가 적용됐을 경우 본인부담금 추정액은 1천80만원이다. ‘문재인 케어’는 소득하위 50%에 대해 재난적 의료비 지출이 발생할 경우 별도의 지원방안도 포함하고 있으나, 이 가구는 연간 세전소득이 5,353만원으로 소득분위 8분위로 대상에서 제외돼 지원도 받을 수 없다.

    2015년 중증복합면역결핍증을 앓고 있는 3세 B군의 가족 앞에 떨어진 병원비 총액은 2016년 한 해 동안 3억8천여만 원, 본인부담금 총액은 5천6백만 원으로, 재난적 의료비 지출 가구에 해당한다. 이 사례에 ‘문재인 케어’를 적용하면 자기본인부담금은 약 4천만 원 정도로 감소한다. 하지만 여전히 1년에 4천여만 원이라는 고액의 진료비를 감당해야 한다. 특히 이 소아의 부모는 소득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 재난적 의료비 지원 대상이어야 하지만, ‘문재인 케어’ 후에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 산정 기준이 실제 소득이 아닌 부과된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케어’가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지불해야 하는 고액 병원비를 해결하는 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린이 병원비에 한해서라도 ‘완전 백만원 상한제’를 즉시 시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는 2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예비급여를 본인부담상한에 포함하고, 상한액도 백만원으로 한정하는 ‘어린이병원비 완전 백만원 상한제’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어린이 병원비 국가책임 기자회견(사진=윤소하 의원실)

    문재인 케어는 기존 비급여를 건강보험으로 편입해 병원비 부담을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정책으로 건강보험 보장률이 오르긴 하지만, 앞선 두 사례처럼 환자가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자기부담금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시민사회단체는 획기적이라고 평가받는 ‘문제인 케어’가 도입되고도 고액의 병원비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원인을 ‘예비급여’ 항목이 본인부담금 상한제 포함되지 않는 것에 있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 케어는 기존 비급여 항목을 ‘급여’가 아닌 ‘예비급여’ 항목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예비급여’ 항목의 자기부담금이 높다는 데에 있다. 급여 항목의 본인부담금은 2~30% 정도인 반면, 예비급여는 본인부담금이 최소 50%에서 90%까지 부가된다. 더욱이 이 예비급여 항목은 본인부담금 상한제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김종명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정책팀장은 “이번에 문재인 케어는 보건의료 개혁에 있어서 획기적인 정책임은 틀림없다”면서도 “이 정책이 갖고 있는 큰 문제는 대부분 비급여가 건강보험으로 편입될 때 ‘급여’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예비급여제도’ 형태로 편입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정책팀장은 “더 큰 문제는 예비급여 항목이 연간본인부담 상한제에 포함이 되지 않는 것에 있다”면서 “굉장히 획기적인 정책임에도 현재 건강보험 보장률 63%에서 70% 정도까지밖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예비급여에 대한 연간본인부담 상한제가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재인 케어’를 발표할 당시 “비급여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실질적인’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예비급여가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포함되지 않는 것에 따른 한계를 정부도 파악하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등은 18세 미만 어린이에 한해 병원비를 국가가 완전 보장하는 제도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비급여를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포함하고 그 상한액을 100만원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오건호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공동대표는 “예비급여의 본인부담률이 높고 이 항목이 본인부담근 상한제에 포함되지 않는 한 아픈 아이의 가구의 고액 진료비 부담은 계속된다”며 “입원비, 외래비, 약제비를 포함한 모든 병원비를 완전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포함하고 그 상한 금액을 100만원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에 따르면, 해당 제도를 도입할 경우 소요 재원은 연간 3천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건강보험 누적 흑자액 21조의 1.5%다.

    오 공동대표는 “최소한 어린이 병원비만큼이라도 상한금액을 100만원으로 제한해서 문재인 케어가 진정으로 대한민국 병원비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시작이라는 것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앞서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등 65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1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에 관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날까지 18만2460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이선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옹호사업팀장은 서명운동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캠페인에 나선 사례를 소개했다. “어린이병원비 보장 관련 기사를 신문에서 우연히 본 할아버지는 매일 직접 작성한 호소문을 들고 서명운동을 벌였다. 손자의 병원비에 걱정이 많던 할아버지는 아이가 아프면 가족이 함께 짊어져할 경제적 짐이 너무 무겁다는 것을 직접 겪은 터라, 어린이병원비 보장 문제가 아픈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 팀장은 “1년 동안 매일 494명의 국민들이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의 생명은 국가가 함께 돌보고 책임져야 함을 서명으로 증명해주셨다”며 “더 이상 아픈 아이들의 생명을 온정과 후원에 기대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져주길 18만 명의 시민과 함께 호소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법안’(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하고 서명운동을 벌여온 윤소하 의원은 “아이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다. 문재인 케어가 제대로 작동되는 과정에 완전 100만원 상한제는 꼭 이뤄져야 할 문제”라며 “특히 어린이 병원비를 국가 책임지는 것이 향후 사회적 비용이 더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을 정부가 명심하고 즉각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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