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수많은 우리 안의 ‘아Q’들
[책소개]『다시, 루쉰에게 길을 묻다』(김태만/호밀밭)
    2017년 09월 10일 03: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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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을 바라보며 다시 루쉰을 생각하다

2016년 겨울은 무척 추웠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뜨겁기도 했다. 장장 20주에 걸쳐, 국정농단 세력과 추악한 권력의 민낯에 무섭게 분노한 1,500만 국민이 저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으며 마침내 대통령을 탄핵했다. 세계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드문 일이었다. 국민들의 땀과 눈물을 외면한 정치권력의 끝은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장면들도 있었다. 탄핵된 대통령의 자택 앞에서 ‘마마’나 ‘폐하’ 같은 단어를 울부짖던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봉건제와 왕조시대를 역사의 뒤안길로 묻고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세기를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 안의 ‘아Q’는 그토록 완악하게 사라지지 않고 버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비된 영혼의 맹목성,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비겁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잔인해지는 인간 존재의 더할 바 없이 비참한 측면은 다름 아닌 동아시아 근대의 커다란 지성 루쉰(魯迅)이 ‘아Q’ 라는 인물을 통해 통렬하게 비판했던 바로 그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

제도를 넘어 우리들 사상 속 식민성과 열악함을 비판한 대문호이자 사상가, 루쉰

루쉰(魯迅)은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중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근대의 지성이다. <아Q정전>과 <광인일기> 같은 소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와 같은 잡문을 통해 시대를 예리하게 포착한 대문호이면서 동시에 사상가이기도 하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민중의 육체적 질병을 고치는 것보다는 정신의 타락을 바로잡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는 자각을 통해 문학으로 길을 바꿨으며 이후 중국의 봉건적 사상과 인민들의 무기력함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휴머니즘이나 리얼리즘 같은 어느 하나로 포착하기 힘들 만큼 광대무변하고 야성적이었던 그의 사상과 글은, 그대로 칼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정신을 서늘하게 하고 마음 속 깊은 곳을 날카롭게 베어낸다.

시진핑은 논어, 사기와 함께 13억 중국인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로 루쉰을 추천한 바 있다. 그만큼 중국인의 영혼에 깃든 봉건성과 식민성에 대해 루쉰만큼 통렬하게 비판한 사상가도 없을 것이다. 그는 제도로서의 식민주의보다는 중국인들의 사상과 무의식 속에 뿌리박힌 식민성을 어떻게 탈각시켜 주체적 민중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가 형상화한 인물 ‘아Q’는 중국인 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모습이 응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Q’는 통치자 전체, 권세 있는 이들에게 빌붙어 사는 지식인 전체, 냉혹한 소시민 전체를 대표함과 아울러 농민, 부랑자, 프롤레타리아 계급 및 낙오한 중산층 대부분을 대표한다.

한편 루쉰은, 중국 문학의 또 다른 형식으로 잡문(雜文)이라는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시킨 인물이다. 그는 잡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진중하고 날카로운 비판정신과 함께 유쾌함과 풍자정신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이후 현대 중국의 문학과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21세기에 다시 새겨보는 루쉰의 풍자정신과 탈식민주의

저자는 1993년, 한중 수교가 시작된 직후 베이징에 유학해 1996년 루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20여 년 동안 중국의 유가지식인, 해국도지, 동아시아연대, 문화연구, 지역학, 중국의 미학, 차이니스 디아스포라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활동을 해오다 유학 시절 은사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문득 지금까지 일궈온 모든 연구의 기반에 루쉰의 사상이 있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 루쉰 연구자라는 사실을 너무 오래 망각하고 있었다는 깨달음, 어쩌면 자신이 ‘아Q’ 였는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은 이 책의 집필로 이어졌다.

이 책은 루쉰의 작품에 나타난 ‘풍자정신’을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반제·반봉건을 기본 축으로 전개된 중국의 근대화운동(혁명)에 있어서, 루쉰이라는 ‘지식인’이 어떻게 역사와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문학적으로 실천해왔는가를 밝혀내고 있다.

1981년 인민문학출판사(人民文學出版社)에서 출간된 <루쉰전집(魯迅全集)>을 중심으로, <외침(吶喊)>(1923), <방황(彷徨)>(1926), <들풀(野草)>(1927), <아침 꽃 저녁에 줍다(朝花夕拾)>(1927), <옛 이야기 다시 엮다(故事新編)>(1936) 등에 수록된 소설 및 잡문(雜文) 등 풍부한 원문 텍스트를 바탕으로 루쉰 특유의 풍자정신을 분석하면서 그의 근대인식 과정을 검토하는 한편 풍자소설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풍자론을 재구성하고, 마지막으로는 루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형상 분석을 통해 루쉰의 풍자정신을 도출하고 있다.

1장에서 루쉰의 사상 전반을 스케치하고, 2장에서 루쉰이 살았던 시공간과 당대 근대성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이를 통해 루쉰의 근대의식과 현실인식의 단초를 규명했다. 3장에서는 3단계로 전변하는 루쉰 사상의식의 철학적 기초를 단계적으로 분석했으며 그중 특히 초기의 의식에 집중했다.

4장에서는 소설보다 잡문을 통해 보다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했던 후기를 집중적으로 다루었으며 5장에서는 루쉰 작품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형상들을 통해 다양한 풍자의 특징을 검토했다. 중국문학사상 최고의 인물형상이라 할 ‘아Q’와 정신계 전사로서의 상징성을 지닌 ‘광인’ 형상을 통해 루쉰이 치열하게 투쟁했던 봉건과 식민성에 대해 드러낸다. 6장에서는 중국의 20세기 전반기에 출현했던 다양한 풍자작가와의 비교를 통해 루쉰 풍자정신의 특징을 규명했으며 마지막으로 7장에서 이상의 과정을 통해 루쉰이 의도했던 탈식민주의와 풍자정신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부각시켜내고 있다.

지난 촛불혁명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는 여전히 수없이 많은 ‘아Q’들이 들어앉아있다. 영혼의 식민성을 극복하기 위한 혁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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