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양의무제 단계적 폐지는 사기”
    가난한 이와 장애인 삶 가로막는 3대 적폐 청산해야
        2017년 08월 19일 10: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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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 농성 5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장애인 단체 등이 18일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 적폐를 완전 폐지하라”고 문재인 정부에 촉구했다.

    228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광화문 북측광장에서 ‘광화문농성 5주년 집중결의대회’를 열고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3대 적폐이자 최우선 해결과제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은 지난 2012년 8월 21일 장애인의 신체에 낙인을 찍고 복지이용을 제한하는 장애등급제와 마지막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만드는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결성, 광화문역사 지하에서 농성투쟁을 이어왔다. 이날까지 1824일 째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2012년 8월 21일, 12시간의 사투 끝에 투쟁의 장소 하나, 깔판 하나 깔았다. 그리고 수일간 투쟁 끝에 천막을 치면서 우리는 조그마한 투쟁의 진지 하나를 얻었다”며 “승리는 결과에 있지 않고 과정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2017년 8월 18일 1824일 투쟁의 시간은 승리를 향한 길이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장애인 수용시설이라는 3대 적폐가 완전 폐지될 때까지 더 폭넓게 일상에 가깝게 투쟁의 진지를 만드는 것을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 결의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유하라

    “부양의무제 단계적 폐지 발표는 대국민 사기극”

    문재인 정부 100일, 지지율은 고공행진하고 있지만 장애인단체에선 지지 철회 목소리까지 나왔다. 지난 10일 발표한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담긴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안 때문이다. 정부는 주거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는 이유로 1차 종합계획을 ‘단계적 폐지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애계는 지난 보수정부와 다를 바 없는 소극적 완화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의 주장대로 단계적 폐지라면 최종적으로 언제, 어떻게 폐지할지를 분명히 명시해야 하지만 이러한 계획이 전혀 포함돼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특히 1차 종합계획 중 ‘부양의무자 가구에 중증장애인이 있는 경우 2019년 1월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정책에 대해선 “대국민 사기”라는 질타가 나왔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발표문엔 ‘중증장애인을 포함하는 가구’라고 돼있지만, 실제론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부양의무자일 경우 그의 자녀에 대한 부양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라며 “이걸 가지고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라고 얘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이렇게 사기를 칠 줄은 몰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이 정부에는 희망 없을 거라는 생각이 굳어졌다”며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까지 기나 긴 싸움이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정부는 사람을 등급으로 구분하는 장애등급제, 인간의 존엄성을 가진 국민임에도 가족에게 생계비 구걸해야 하는 부양의무제, 감옥 같은 수용시설을 즉각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예비후보 당시에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거론했다가 당 후보가 된 후엔 단계적 폐지로 공약을 후퇴시킨 바 있다. 결국 대통령이 된 현재로선 단계적 폐지보다도 못한 단계적 완화안을 내놓은 것이다.

    정의당은 원내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이날 결의대회에 참가했다. 정의당 대선후보였던 심상정 의원은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장애인수용시설 완전 폐지를 공약한 바 있다.

    이정미 대표는 “새로운 정부가 가장 절실하고 가장 절박하게 삶의 변화를 원했던 장애인들의 삶의 문제를 후순위로 미루고,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를 얘기하고, 등급제와 수용시설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현재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절대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한발이라도 내딛었다 평가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6명밖에 없는 정의당이지만, 여러분의 입이 되고 눈이 되어 국회 안에서 싸우겠다”며 “반드시 부양의무제와 장애인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수용시설을 철폐하는 싸움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2004년에 장애인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자신의 소득 때문에 아들이 수급을 받지 못한다면 자살했다. 2012년엔 거제에 이 씨 할머니가 사위 소득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후에 ‘법이 어떻게 사람에게 이럴 수 있냐’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고 전했다.

    김 국장은 “문재인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전한 폐지를 선언해야 했지만 기준 완화로 이들의 죽음에 응답했다”며 “하루하루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만을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국민들에게 ‘분위기 봐서, 재정을 봐서 폐지하겠다’고 하는 정부의 말에 모욕감까지 느낀다”고 말했다.

    “촛불로 탄생한 정부, 가난한 이와 장애인의 요구에 응답하라”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삶의 고통은 하루도 이어갈 수 없을 만큼 절박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전한 폐지는 먼 희망이 아니라 당장 쟁취할 현실”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1980년 세계장애인 인권선언문에 기록된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는 투쟁으로 쟁취하고 역사가 될 것”이라며 “그 길은 가다가 포기할 수 없는 길이며 그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박 대표는 장애인수용시설 등에서 화재사고 등으로 사망한 장애인 13명의 이름을 모두 거론했다. 박 대표는 “그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우리의 분노, 1824일의 무게를 모아 문재인 정부에 제안한다”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광화문 농성장을 찾아와 죽어간 사람들에게 조문하라. 문재인 정부에선 그 누구도 그렇게 죽어가지 않도록,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인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1차 종합계획은 단계적으로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폐지의 방향을 제시하라”며 또한 “장애인 시설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담아 2017년을 장애인 탈시설의 원년이라고 선포하고, 구체적인 계획과 예산을 논의하고 사회적 로드맵을 만들 위원회를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박 대표는 “광화문의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제안의 답을 보여줘야 할 최소한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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