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회사의 신입사원 유령?
[그림책] 『새내기 유령』(로버트 헌터/ 에디시옹 장물랭)
    2017년 08월 18일 04: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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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유령회사 신입사원

새내기 유령이 있습니다. 신입 유령이라고도 하지요. 새내기 유령인 ‘나’는 오늘이 유령으로서 임무를 맡은 첫 날입니다. 그런데 유령들은 참 이상합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냥 다른 유령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 배우라고만 합니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을 따라 날아갑니다. 동료 유령들은 우아하게 날면서도 동시에 아주 재빨리 날아다닙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날아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동료들은 ‘나’를 훈련시키려는 듯 굳이 나무를 한 바퀴 돌아 밑으로 지나가는 묘기를 부립니다.

‘나’는 동료들을 따라잡으려고 나무 밑이 아니라 나무 기둥 사이로 지나갑니다. 하지만 아직 비행 기술이 서툰 ‘나’는 갈라진 줄기 사이에 몸이 끼이고 맙니다. 그 사이 동료들은 둥근 지붕 건물 너머로 사라집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둥근 지붕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그리고 지붕 사이로 거울 같은 것이 ‘나’를 향합니다. 이윽고 어렴풋이 누군가 움직이는 게 보입니다. 그는 건물에서 나와 랜턴을 들고 ‘나’에게 다가옵니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요? 나뭇가지에 끼어 외톨이가 된 새내기 유령 ‘나’는 이제 어떻게 될까요?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아주 새롭게 만들다

로버트 헌터의 『새내기 유령』은 니콜라우스의 하이델바흐의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를 떠올리게 합니다.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는 우리로 치자면 ‘선녀와 나무꾼’과 흡사한 ‘바다표범 셀키’ 이야기를 각색해서 세련되고 환상적이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림책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를 만들었습니다.

로버트 헌터는 우리로 치자면 ‘귀신’ 이야기와 흡사한 ‘유령’ 이야기를 유머와 재치와 감동으로 버무려낸 그림책 『새내기 유령』을 만들었습니다. 로버트 헌터는 자신이 보고 듣고 자란 수많은 유령 이야기를 각색해서 아주 세련되고 현대적인 유령 이야기를 완성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유령이 되고, 유령이 되면 유령 회사의 신입 사원이 돼서 임무를 맡는다고요? 이처럼 유쾌하고 엉뚱한 상상을 누가 또 할 수 있을까요? 로버트 헌터의 상상에는 옛날이야기 속 유령의 어둡고 무시무시한 이미지는 없습니다. 유령이 되어서도 취업하고 일을 해야 하는 로버트 헌터의 유령은 그야말로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하며 모던하고 친숙합니다.

문화 속의 귀신 혹은 유령

우리 전통 문화에서 귀신은 언제나 단역이었습니다. 아마도 사람 사는 이야기에 귀신이 주인공이 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우리 전통 문화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금기시 여기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우리는 묘지를 인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만들었고 귀신과 유령을 두려워했습니다.

인간이 현대 의학을 통해 장수를 꿈꾸고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애쓰는 것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심 때문입니다. ‘생로병사가 자연의 섭리다.’ ‘죽어야 다시 살아난다.’ ‘이것이 우주의 진리다.’ 이렇게 머리로는 백번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한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문화적으로는’ 귀신과 사람 또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영혼의 존재라는 것을 문화적으로 수용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문화적으로는’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데는 문화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만화와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미 오래 전부터 뱀파이어와 마법사와 신과 좀비와 슈퍼 히어로와 돌연변이와 로봇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화적으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초자연적 존재들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무의식 속에 주인공으로 친구로 가족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로버트 헌터의 『새내기 유령』 역시 이런 문화적인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완성된 수작입니다. 더불어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귀신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나왔습니다. 바로 드라마 <도깨비>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우리 작가가 만든 멋진 유령 그림책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삶과 죽음, 인간과 유령에 관한 새로운 세계관

그림책 『새내기 유령』을 보고 나면 유령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작가인 로버트 헌터가 삶과 죽음 그리고 유령과 인간의 관계를 전혀 새롭게 상상하고 아름답게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만약 유령과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죽은 뒤에 더 멋진 존재로 태어나서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면? 그렇다면 누가 유령을 두려워할까요? 누가 죽음을 두려워할까요?

물론 로버트 헌터가 상상한 사후 세계는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로버트 헌터가 상상한 세계가 사실이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의 상상을 따라 기꺼이 유령이 되거나 더 멋진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습니다.

더불어 저는 로버트 헌터가 상상한 세계가 이뤄지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꿈꾸겠습니다. 왜냐고요? 아름다운 세상은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비록 그것이 지금 이 세상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저 세상일지라도!

필자소개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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