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다시 생각하며
[종교와 사회] 새 종교의 꿈 꾸어야
    2017년 07월 19일 11: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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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호 목사(거창 씨알평화교회)의 종교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한다. 종교는 보편적으로 사랑과 평화를 지향하고 있지만 오히려 현실은 종교가 폭력과 갈등의 이유가 되고 있는 역설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종교의 존재 의미를 다시 고민하고, 종교와 사회의 관계맺음을 생각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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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구촌의 수많은 갈등 속에서 미움과 전쟁, 테러와 복수 등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그 원인은 정치, 경제, 사회, 인종적 갈등으로 인한 것도 많지만, 종교적 갈등으로 인한 다툼들이 그 어느 것보다 적지 않다는 것을 매일 저녁 TV뉴스만 조금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기독교인이라 그런지, 그 어느 종교보다도 인류 역사의 대표적 종교인 이슬람과 기독교의 갈등으로 인한 전쟁이 가장 역사에서 참혹하게 기억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많은 전쟁들, 십자군의 무자비했던 역사, 근대의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전쟁과 갈등을 생각하면, 그 배후의 뿌리에는 종교적 신념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종교의 근본 존재 목적은 역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평화롭게 살게 하기 위한 것일 텐데, 역설적으로 전쟁과 테러를 종교가 조장한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그래서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의 가사처럼 차라리 종교가 없었다면 인류는 좀 더 평화롭게 공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더구나 하나의 유일신 아래 형제자매들이라고 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현재 가장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종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 게 오늘 지구촌의 현실 아닐까. 기타 아시아에서의 불교, 기독교, 이슬람의 갈등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종교로 인해서 벌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의 성지가 모두 모여 있는 예루살렘

21세기 인간 진보의 최고 지성과 감성, 최고 과학기술로 인한 최고 문명시대를 향유하는 인류로서 이 문명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큰 요소 중 하나가 평화를 지향하는 종교라면, 이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종교는 정말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사람에게 필요한 것인가? 필요 없는 것인가? 종교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종교기원에는 몇 가지 이론들이 있다.

영국 인류학자 타일러(1832-1917)는 종교는 모든 물체에 영(靈)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Animism)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았다. 죽은 사람들이 꿈에 나오는 것을 보고 죽었지만 뭔가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것이 영이고 이 영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동물, 산, 강, 나무나 돌 등에도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영들에게 기도하고 제사하고 해야 산 사람들이 평안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종교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종교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뮐러는 원시인들이 해, 달, 별의 변화에 따른 자연현상을 관찰하면서 해, 달, 별 등 자연을 의인화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신화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많은 신들이 만들어지고, 이 신들을 중심으로 종교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결국 자연숭배가 종교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프레이저는 종교의 기원을 세 단계로 설명했는데, 첫 단계는 자연의 힘을 제어하는 방법으로 마술(Magic)을 의존하는 단계였다. 이 마술이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듣는 것 같기도 해서 만든 다음 단계가 바로 종교였다. 그런데 종교도 자연을 제어하는 방법으로는 역시 불확실하므로 셋째 단계인 과학의 단계로 넘어갔다는 주장이다. 결국 종교의 근원은 마술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9세기 유럽의 사상가인 포이어바흐(1804-1872)는 종교의 기원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원하지만 가지고 있지 못하는 이상(理想)들의 투사(投射)라고 했다. 사랑, 지식, 덕, 지혜, 용기 등 모든 것을 소유한 어떤 존재를 神으로 투사한 것이다. 결국 인간이 신을 인간의 이상대로 창조한 셈이다. 그래서 그는 “신학(神學)은 인간학”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처럼 다 일리가 있는 이론들이지만,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종교의 기원에 대한 말이다. 그 기원이 이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처럼 그 양태나 현상들도 다양하기에 종교에 대해서 딱 이렇다고 말한다는 것이 참 쉬운 일은 아니다. 어쨌든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종교는 인간을 위한 것이고, 인간이 만든 것이고, 궁극 목적은 인간의 평안한 삶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평안한 삶, 곧 인간의 행복이 목적인 종교가 과연 그 역할을 사회 속에서 잘 하고 있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게 오늘 인류 사회의 문제가 아니냐 하는 것이다.

교회나 절을 다니고, 기타 종교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어떤 사회의 영역에서도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 그리고 삶의 용기를 주는 것이 또한 종교라는 것을 부인할 수도 없다. 종교의 긍정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나 가정공동체를 넘어서 한 사회나 국가, 나아가 지구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면 과연 종교가 평안과 기쁨, 행복과 삶의 용기만을 주는 선한 가치체계라고 할 수만은 없는 게 사실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기독교 신도가 절에 들어가 불상이나 절을 훼손한 일이 있었다. 이를 본 어느 기독교 신학교 교수가 미안한 마음에 절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다가 학교로부터 면직 당하게 되었다는 뉴스를 봤다.

일부 광적 신도들이 벌이는 무모한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 일을 평화라는 종교적 가치로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던 사람을 그 소속 종교공동체가 몰아냈다고 하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부 극단적 광신적 신도들은 그렇다고 해도 이성과 상식 차원으로 생각해도 그 신학교공동체는 도대체 어떤 종교공동체인가? 그 종교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사람의 눈을 가리고, 날카로운 칼로 목을 치면서 “알라흐 아카바르!”(신은 위대하시다) 외치는 중동의 IS(이슬람국가) 전사들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911테러 이후 악의 축이라고 이라크를 몰아치면서 거짓 증거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민간인들을 죽인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그를 지지하고 후원했던 미국의 전통적 기독교회들은 정말 예수를 믿고 따르는 공동체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지 않았는가. 종종 일어나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의 갈등과 폭력사태들도 다 마찬가지다.

개인적 가정적으로는 각각의 종교를 통해 평안을 누리고 행복을 맛보면서도, 사회적, 국가적, 인류공동체적으로는 엄청난 살상과 폭력사태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종교체제들이라는 걸 부인 할 수 없는 현실 아니겠는가.

나는 전통적 기독교의 목사 신분으로 살지만,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보나, 세계적 전통 교회의 행태를 보나 인류사회를 위한 기독교의 희망적 미래를 말하기가 어렵다. 뭔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심정이라 할 수 있겠다. 마치 이명박근혜 정권을 보면서 이건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이건 아니다 해서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정권을 무너뜨린 후 새 정권을 세웠듯이, 지금의 한국 종교체제들의 모습도 이건 아니다 정말 새로운 종교체제가 등장해야 한다는 종교혁명적 절박감은 정치혁명적 절박감에 못지않은 시점에 도달한 게 아닌가 싶다.

역사는 항상 새 종교를 요구하고, 종교가 새로워지지 않고 새 시대가 올 수 없다고 했던 5-60년 전 함석헌 선생의 말씀이 더욱 더 절박하게 들리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된다. 역사와 시대, 민족과 인류공동체를 살리는 참 종교, 새 종교를 부르짖었던 선생의 목소리가 더욱 생생한 시점이다.

이것이 절대 진리다 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거짓이 되는 것이라고 했던 선생은 새로운 종교는 둥근 것이라고 했다. 둥글어서 하나라는 것이다. 앞으로 시대에는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것을 거부하는 종교는 몰락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세계는 하나가 될 것이기에 종교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새 과학과 이성을 기초로 하는 합리적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과학자가 신앙을 가르치고 종교집회에서 우주학을 배우는 날이 와야 한다고 했으니, 지금 21세기를 선생께서는 미리 예측하셨다 할 수 있다. 그의 새 종교는 인격의 종교요, 새 마음의 종교요, 새로운 깨달음의 종교였다. 그래서 그의 새 종교운동은 새 인간운동이었고, 새 문명, 새 생명공동체, 새 역사, 새 인류공동체 운동이었다 생각된다.

그의 말이 생각난다. “새 종교가 어떤 것일지 누가 아느냐? 새 종교를 꿈꾸는 것이 곧 새 종교지”. 종교적 갈등이 폭력으로 전쟁으로 이어지는 이 21세기에도 우리는 새 종교의 꿈을 계속 꾸어야 할 것 같다.

필자소개
목사. 거창 씨알평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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