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줄 요약이 싫어요!
    [왼쪽에서 본 F1] 사실·현상의 단순화에 익숙해져
        2017년 07월 06일 07: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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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세 줄 요약’이란 말이 싫습니다. 물론 ‘한 줄 요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아니 요 몇 년간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의견을 나누는 커뮤니티의 글이나 소셜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던 그 표현에 대한 얘기입니다. 너무 고리타분한 생각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싫은 건 싫은 겁니다.

    물론, 세 줄 요약을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황한 설명 글을 읽기는 힘들고, 긴 글을 읽는 동안 머릿속이 하얗게 돼버려 무슨 얘기인지 정리가 안 되는 사람들에게, 세 줄 요약과 같은 간단한 정리는 큰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그런 정리도 필요하고, 마치 논문의 앞부분에 제시되는 ‘요약’처럼 ‘세 줄 요약’ 역시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세 줄 요약이 싫습니다.

    때로는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세 줄 요약이 싫은 이유는 너무 복잡한 문제를 독자가 평면적이고 단편적으로 이해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독자가 그 요약을 읽으면서 평면적이고 단편적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를 더 자주 보는 것 같습니다. 세 줄 요약과 같은 과도한 단순화 덕분에 길고 장황한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지 못하면 감도 잡기 힘든 분야에서,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속출하기도 합니다.

    그나마 깊은 지식과 오랜 학습이 필요하다고 널리 알려진 분야에선 이런 문제가 덜합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전공했던 물리화학(화학의 한 분야입니다) 중 NMR과 같은 분야, 혹은 그 전공에서 많이 다룰 수밖에 없었던 양자역학 같은 분야는 세 줄 요약이 쉽지도 않지만 어디서 요약 내용을 보더라도 쉽게 ‘내가 다 안다.’고 얘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 역시 대학 때도 제 전공 분야를 그리 깊이 이해하지 못했고 ‘다 안다’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이런 얘기는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F1의 기술 규정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틀에서 엔진 배기량이나 형식, 눈에 확 띄는 규격 같은 경우는 기술 규정에 대해 ‘내가 좀 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실제로 기술 규정을 모두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피곤하고 머리 아픈 일이다 보니, 기술 규정 자체를 다 읽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F1 해설이나 전문적인 글을 쓰는 사람을 제외하면 이런 골치 아픈데다가 때로는 지루하기도 한 일에 공을 들이지 않는 것이 정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같은 F1이더라도 기술 규정이 아니라 운영 규정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이것은 ‘이러이러해야 한다.’, ‘이것은 이렇게 진행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F1 운영 규정은 현실 세계라면 사법 체계에 해당하고 사회적 혹은 정치적인 접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렇듯 사람들은 사법 체계나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쉽게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접근합니다. 문제를 단순화해서 세 줄 요약을 만들거나, ‘이 문제의 답은 이것이다.’라고 쉽게 결론을 내버리려는 시도도 많습니다.

    2017 아제르바이잔 그랑프리에서 가장 큰 논란의 중심에 선 베텔과 해밀턴

    지난 6월 말,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시티 써킷에서 펼쳐졌던 2017 아제르바이잔 그랑프리의 레이스 중 올 시즌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앞으로 F1 역사에서 결코 잊히지 않을 논란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17시즌 F1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던 페라리의 세바스찬 베텔과 메르세데스의 루이스 해밀턴이, 레이스에서 선두를 다투던 중 충돌한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짧은 글 속에 다 정리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이 또한 세 줄 요약이 돼버릴 수도 있습니다) 굉장히 복잡한 배경 상황이 존재하고, 사건이 벌어진 시점 각 드라이버의 움직임에도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문제의 사건이 벌어진 뒤 베텔은 10초 스탑/고 페널티라는, 레이스에서 실격 처리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무거운 징계를 받으며 우승 기회를 놓쳤고, 문제의 사건과 관련은 없지만 해밀턴 역시 헤드레스트 문제로 5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습니다. 경기 이후에도 베텔의 ‘보복 운전’으로도 볼 수 있는 드라이빙에 대해 비난이 끊이지 않았고, 해밀턴이 과연 원인 제공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만큼, 사건이 펼쳐진 뒤 일주일 동안 크고 작은 의견 충돌이나 비난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일단, 레이스의 스튜어드, 즉 심판관들이 베텔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판단을 내려 페널티를 줬고, 반대로 해밀턴에게는 책임이 없었다고 판단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왈가왈부를 하든 말든 이미 내려진 법원의 판결이 항소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면 바뀌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항소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지금 당장 항소가 이뤄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FIA에서는 베텔의 행동에 대해서 추가적인 조치를 위한 논의를 계획했지만, 이 역시 커뮤니티나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나름의 기준에 따라 조치가 내려지거나 내려지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커뮤니티든 소셜미디어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팬들이 나름의 주장을 펼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안타까운 점은 서로 다른 생각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자기 생각과 판단이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옳다며 상대의 주장을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리고, 무시하듯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단편적으로 누가 옳다 그르다를 얘기하기 힘든 상황에서, 관점의 차이까지 감안해야 되는 사안에 대해 너무 쉽게 단정적인 결론을 얘기하는 경우가 너무 많이 목격됩니다.

    아무리 차근차근 입체적인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더라도, 한 쪽이 다 잘못했다거나, 다른 쪽이 다 잘못했다고 얘기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양쪽이 똑같이 잘못했다는 얘기냐?’라고 되물으며 다시 단편적인 결론을 요구하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심판관들의 판정은 어쩔 수 없이 단 하나의 결론을 낼 수밖에 없지만, 사건의 경위는 쉽게 단편적인 결론을 낼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복합적이라는 현실 인식의 양립이 불가능한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처럼 단순한 결론이 아니면 이해하거나 받아들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진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세 줄 요약’처럼 사건과 사실, 현상을 단순화시켜 설명하는 방법에 길들여진 것이 아닐까 의심합니다. 깊게 사고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나 할까요?

    다시 한번 충돌한 라이코넨과 보타스

    깊게 사고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일반 대중에 대해서 나쁘게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동시에 계몽주의적인 접근으로 그런 대중을 ‘교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에도 반대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런 이들에게 얘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긴 합니다. 가끔, 아주 가끔 비교적 간단하게 설명할 사건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런 복잡한 사건을 세 줄 요약할 방법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논란이 되는 대부분 사건 사고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베텔과 해밀턴의 충돌 때문에 비교적 심각하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역시 각각 페라리와 메르세데스의 드라이버인 라이코넨과 보타스의 사고는 더더욱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스페인 그랑프리로부터 단 세 경기 만에 똑같은 1랩에, 똑같이 라이코넨이 앞서나가는 상황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보타스의 사고는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서로 다른 다양한 층위의 해석이 가능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 역시 스튜어드들에 의해 ‘비교적 간단하게’ 결론이 나서 추가적인 조치 없이 넘어가 버렸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본다면 논란의 여지가 매우 많은 사건이었습니다.

    베텔과 해밀턴의 충돌이나, 보타스와 라이코넨의 충돌 모두 논란의 여지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날 선 주장과 공방도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주장을 깔보고 비꼬면서 무시하듯 얘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냥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렇게 생각한다.’는 식이라면 강력한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당연한 걸 왜 그러냐?’는 식으로 논리적인 근거 없이 사건을 단정적으로 결론 내 버리면 얘기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는 꼭 F1의 운영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현실 세계의 사법적인 문제나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서 특히 심한 것 같습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전문 분야나 전공 분야가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깊은 고민을 하고 공부하고 학습하지 않았더라도, 왠지 ‘정의로운 사법적 결론’이나 ‘올바른 정치적 판단’에 대해선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상당히 복잡한 자연과학 분야나 최신 기술이 접목된 공학 분야의 얘기에서는 볼 수 없는 자신감 말입니다.

    정확한 경중을 따지기는 쉽지 않지만, 인문사회 분야가 자연과학이나 기술, 공학 분야보다 더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고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사람과 집단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자연 현상을 예측하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누군가의 생각과 의도, 특정한 집단이나 결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이런 분야일수록 좀 더 신중해야 하고, 좀 더 공부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문사회 분야가 더 논리적이어야 하고, ‘세 줄 요약’은 훨씬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저의 바람과 반대인 것 같습니다. 정치 사회적인 문제가 떠올랐을 때, 논리적으로 따지기보다는 네 편인지 내 편인지 진영을 먼저 따지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의 기준으로 논리와 생각을 재편성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보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건에 대해서든, 어떤 사람에 대해서든 단편적인 결론이 내려집니다. 좋은 사람이거나 나쁜 사람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고, 옳은 행동이거나 그른 행동이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이든, 어떤 사건이든 세 줄로 요약되고, 종종 한 줄로 요약되곤 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단편적으로 판단해버리는 방법론에 대한 비판조차 묵살당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자칭 타칭 ‘진보적’이라는 분들조차 ‘간단한 설명’에 집착하다 보니 애써 촌철살인이나 세 줄 요약을 해보려 노력하는 것 같아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다시 F1 얘기로 돌아와서, 베텔과 해밀턴의 사건이나 보타스와 라이코넨의 사건에 대해 혹시 저의 의견을 묻는 사람이 있다면, ‘매우 복잡한 문제다.’라고 얘기할 것 같습니다. 꼭 덧붙이고 싶은 얘기는 ‘F1 운영 규정’에 대한 접근이 ‘F1 기술 규정’에 대한 접근보다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없이 깐깐하고 정교하게 짜놓은 듯했던 기술 규정 역시, 각 F1 팀들이 빈틈을 파고든 뒤 다시 살펴보면, 매우 허술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곤 합니다. 한두 가지 사건의 얘기가 아니라 60년이 넘는 F1 기술 규정의 역사가 다 그랬습니다.

    규정이란 것이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운영 규정 쪽은 더더욱 ‘사람이 하는 일’의 의미가 크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논란의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논리적이라기보다 정치적으로 처리되는 일들도 많고,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매우 중요한 요소가 배제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실 세계의 사법 체계가 그런 것처럼, 스튜어드의 판정이나 제소, 항소에 따른 상급 심판 기구의 판단 과정도 과연 정말 타당한 결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지 의심스러운 과정이 많이 목격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오래 지켜봐 왔다면, ‘사람이 하는 일’의 다면성과 복잡한 층위에 대해 인정하면서 어렵더라도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적어도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쉽게 결론을 이야기하고 사건을 단정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제 관점이 너무 ‘꼰대’ 같다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그래서 죽도 밥도 아닌 결론을 내자는 것인가?’라는 비판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더 배운 사람과 연구한 사람, 학습하고 공부하면서 고민한 사람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더 고민한 사람의 생각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노력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많은 단정적이고 단편적인 얘기들이 팽배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부디 ‘사람들이 벌인 일’에 대해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법적인 문제, 사회정치적인 문제에서 ‘세줄 요약’식의 단순하고 단정적인 얘기가 많이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소개
    윤재수
    2010년부터 지금까지 MBC SPORTS, SBS SPORTS, JTBC3 FOXSPORTS에서 F1 해설위원으로 활동. 조금은 왼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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