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핵‧탈석탄 추진,
    정의로운 전환 전략 필수
    [에정칼럼] '탈핵 에너지 전환의 정치․사회 시나리오' 만들자
        2017년 06월 23일 03: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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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이 열렸다. ‘탈핵’을 자처한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탈석탄 국가 선언’으로 에너지 정책이 정치 의제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거 공약을 재천명하는 수준이었으나(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벚꽃 대선, 차기 정부 에너지․기후정책 제언”, 에너진포커스 76호, 2017년), 기념사를 통해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탈핵 전투’가 벌어질 분위기가 감지된다.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의 문재인 대통령

    이미 싸움은 시작됐다. 신한울 핵발전소 3․4호기 시공 설계 보류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일시 가동 중단 등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를 향해 싸움을 먼저 건 쪽은 ‘찬핵 진영’이었다.

    대선 국면에서 찬핵 정치진영의 몰락으로 위기감을 느낀 세력들은 “탄핵 포퓰리즘”을 유포시키고자 했으나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6월 1일,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은 “국가 에너지 정책 수립은 충분한 전문가 논의와 국민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상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이들이 쓰곤 하는, “국민 의견 수렴” 같은 표현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는 적극적으로 여론전과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다. 230명의 교수 혹은 그 이상의 전문가들은 왜 이렇게 ‘찬핵 포퓰리즘 코스프레’를 하는 걸까.

    찬핵 진영 교수들의 기자회견

    한국원자력학회,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경희대 미래사회에너지정책연구원 등의 연구기관들은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문화재단,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산업회의,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 등과 함께 ‘핵 마피아’로 거론되곤 한다. 이 세력들이 핵발전소를 40년 후라는 “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줄여가는 것”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이유가 단지 이권의 카르텔이 깨질 것을 우려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더 큰 차원의 무언가, 말하자면 ‘핵 권력’의 상실이 두려워서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사라지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할 일은 기억의 가공과 재생산이지 않을까. 고리1호기 퇴역을 맞아 ‘핵 업적’을 기념하며 유포되는 담론을 보라. 문재인 대통령도 고리1호기가 경제성장에 기여한 바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무엇보다 찬핵 진영의 고리1호기의 추억은 근대화와 산업화로 저장될 태세다. 1978년에 제작된 고리원자력본부 내 박목월 시비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모양이다. “원자력 발전에 의한 최초의 불이 켜지고 보람찬 역사를 창조하려는 겨레의 굳은 의지는 끝내 평화통일을 이룩하여 북녘 땅까지 환하게 불 밝힐 것이다.”

    그렇다면 고리1호기가 민주화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에너지 민주주의’ 관점에서 핵발전은 ‘에너지 독재’일 따름이다. 반면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던 핵발전의 ‘위험’이 강제와 동의라는 이중의 구조로 변주되었다는 해석을 따르면(이상헌 외,『위험한 동거: 강요된 핵발전과 위험경관의 탄생』, 알트, 2014년), 현재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로 갈등을 겪고 있는 지역의 상황, 그리고 노동 진영의 불안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40년 동안 가동된 우리나라 첫 핵발전소, 고리1호기. 40년 전에 2017년 현재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마찬가지로 2057년의 미래를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원칙과 방향이 있을 뿐이다. ‘탈핵 에너지 전환’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밝힌 새 정부의 과제들은 적지 않다.

    △원자력위원회의 대통령 직속위원회로 승격과 다양성․대표성․독립성 강화, △신규 원전 건설계획 전면 백지화, 설계 수명 연장 금지, 월성 1호기 신속한 폐쇄, △원전 안전기준과 운영의 투명성 대폭 강화, △천연가스 발전설비 가동률 증가,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전면 중단과 노후 발전소 10기 임기 내 폐쇄,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한 청정에너지 산업 육성, △친환경 에너지 세제 합리적 개편, △에너지 고소비 산업구조의 효율적 개선 및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 △동남권 지역 원전해체센터 설립 지원.

    이에 대해 탈핵 진영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문제점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여부에 대해서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투입 비용, 보상 비용, 전력 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하여 빠른 시일 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다는 발언이 쟁점이 되고 있다. “건설 중단” 약속이 후퇴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그리고 15년 이상 걸릴 폐로 및 해체 계획도 앞으로 논쟁적인 사안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탈핵과 찬핵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있는 상황일까. 아니면 ‘교수 일동’ 중 누군가가 평가했듯이, “탈핵이라는 방향은 정해 놓고 그 방향으로 진행해 나가는 데 사회가 합의”만 해주면 될까. “국가 에너지정책에 대한 새로운 합의”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지속가능한 환경”, “지속가능한 성장”, “안전을 최우선하는 청정에너지”, 이 정도면 에너지 정책의 목표로 대부분이 공감을 표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빠진 게 있어 출발 준비가 덜 돼 있다는 인상을 준다.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가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이라는 판단이 틀린 게 아니겠지만, 2015년에 2차 수명연장 시도가 좌절되었기 때문에, 이는 사실상 기정사실화된 계획을 정상적으로 집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

    아쉬운 점은 따로 있다. 사람과 지역 중심의 ‘정의로운 전환’의 관점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사람을 위하고 환경을 위한다는 주장은 상식이 되고 있지만, 발전소 노동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독성경제 의존적인 지역사회에 대한 고려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대한 전환 전략을 동시에 고려하지 않고서는 반쪽짜리 탈핵․탈석탄에 그칠 것이고, 에너지 전환을 향한 사회적 대타협은 불가능할 것이다(필자가 몸담고 있는 연구조직의 정식 명칭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대로 빼야 할 것도 있다. ‘협치’ 따위의 접근이 그러하다. 뜬금없이 협치가 유행하면서 번지고 있는 부작용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협치가 강조될수록, ‘탈정치’로 흐르는 경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거버넌스’의 정당성이나 필요성과 무관하게, 실체 없는 협치 남발은 오히려 몰정치와 불통의 핑곗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탈핵 협치’가 탈핵 방향을 뒤집는 데 악용되어서는 곤란하다. 그 대신 에너지 전환 로드맵과 정의로운 전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것들을 토론․결정하는 데 국민과 지역 주민들이 주도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하는 프로세스가 마련되어야 한다. 과거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식의 참여로는 어림도 없다. 당연하게도 전문가 집단의 역할도 재설정되어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그 이전 정권에서 누렸던 영광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핵발전소․석탄화력발전소의 단계적 축소와 해체 기술 확보라는 “파괴적 혁신”과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창조적 혁신”의 시대가 열렸다.

    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면 새로운 ‘탈핵 에너지 전환의 정치․사회 시나리오’를 구상해야 한다. 이 접근은 어떻게 탈핵 에너지 전환을 시작할 것이며 이를 지속해나가는 데 파악해야 할 정치사회․경제사회․시민사회․언론지식사회의 균열구조와 그 변화 과정에 집중한다. 탈핵의 정치․사회 의제 설정 과정, 탈핵 결정을 둘러싼 균열과 갈등 그리고 합의의 동학, 그리고 탈핵의 전환 관리 등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것이다(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탈핵 에너지 전환의 정치․사회 시나리오 연구, 2012년). 이미 몇몇 지역에서 탈핵, 탈석탄의 미래상을 수립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더 늦기 전에 함께 착수하자.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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