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소식?
여기서 그렇게는 못 산다
[늡다리 일기] 끊어진 전화선
    2017년 06월 23일 03: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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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할 때는 끊어진 전화선 찾으러 가는 날

얼마 전에 끊어진 전화선을 또 찾아 나섰다. 올 들어 여섯 번째다.

늡다리에 들어와 살면서 지게질에 무릎 관절이 다 닳아도 단 한 번도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후회를 할 때가 있는데 바로 오늘같이 끊어진 전화선을 찾아 이으러 가는 날이다. 길이 험해 그만큼 힘이 들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전화선을 좋은 길 따라 깔면 좋겠지만 좋은 길로 깔면 길이가 5.5킬로미터다. 전화가 아예 안 된다.

전화국에서는 지도상으로 늡다리와 가장 가까운 뒷마을까지 전화를 놔주고 그 다음부터는 내 몫이었다. 군용 삐삐선을 깔면서 산 하나를 넘어 집까지 오는 길이가 3.5킬로미터. 어디서 끊어졌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선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끊어진 선을 찾을 때는 발밑에 신경 쓸 틈이 없다. 그런데 뭔가 물컹하게 밟히는 느낌이 있어 본능적으로 발을 뗐는데… 독사였다. 장화를 신었기에 망정이지 등산화를 신었더라면 한 달쯤 고생할 뻔했다.

언제는 봉우리쯤에서 번개에 맞아 정신을 잃은 적도 있었다. 선을 까고 있던 순간 눈앞이 번쩍하더니 뒤로 나가떨어져 버렸다. 소리 없이 치는 번개가 전화선을 타고 내 손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 셈인데, 독사 한 마리쯤이야….

난 늘 지게를 지고 다닌다. 한번도 빈몸으로 계곡을 오르내린 적이 없다.

해 나기 전에 땔감이라도 한 짐 져다놓아야 했다. 작년에 쓰러진 소나무가 길을 막고 있어 그것을 엊그제 토막을 내놓고 아직까지 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지게질을 몇 번 하고나자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옷을 홀랑 벗고 알몸으로 마당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갔다.

보는 사람도 없고 올라올 사람도 없다. 행여 보는 사람이 있다하더라도 보는 사람만 안타까울 뿐이다. 내키는 대로 벗고 살아도 되는 나만의 공간이 늡다리다. 관습을 비웃어 보는 이런 자유도 느끼지 못하고 살면 무슨 재미로 산속에 산단 말인가. 옷을 벗고 나갔으니 옷을 벗은 채로 돌아와 마루에 앉아 바람에 몸을 말린다. 오늘은 수건 한 장도 버리기 싫다.

가끔 만나본 사람 중에 특히 4, 50대 남자 중에 이런 사람들이 여럿 있다. 머리 기르고, 수염도 기르고 산속에 집 한 채 짓고 살고 싶은 로망. 하지만 그 꿈은 그냥 꿈으로만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해봐서 하는 얘기다.

물론 도로가 있어 자동차가 마당까지 들어가고, 전기가 있어 TV, 인터넷, 휴대폰이 터지는, 거기다 병원하고도 가까운 그런 전원생활을 꿈꾼다면 모를까, 나처럼 도로도, 전기도 없는, 거기다 모든 것을 6킬로미터의 산길을 지게로 져 날라야 하는 곳은 아예 꿈도 꾸지 말기 바란다. 살아봐서 하는 애기다.

마당에서 계곡을 건너는 짚라인은 놀이기구라기보다 내 산속 활동범위를 더 넓히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산속에서 자전거나 타볼까 해서 만든 자전거 로라…내가 만든 작품(?)이다.

산에서는 못 먹으면 탈이 난다

가끔 찾아오는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혼자 산속에서 혼자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무섭지는 않는지, 무얼 먹고 사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피운다고 하면 아연 질색이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산속에 살면서, 몸에 좋은 것이 얼마든지 있는데 몸에 안 좋은 그런 것들을 먹는다고 핀잔이다. 어떻게 변명을 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대충 얼버무린 다.

여기서는, 먹고 당장 죽는 것이 아니면 이것저것 가려가면서 먹을 처지가 못 된다. 커피든 통조림이든 라면이든 없어서 못 먹는다. 하루 네 끼를 먹어야 하는 여기서는 가끔 도시사람들이 말하는 불량식품을 먹고 싶을 때도 있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늘 몸을 움직여야 하는 여기서 채식? 소식? 그렇게는 못산다. 그렇게 먹고 어떻게 산에서 나무 한 짐을 지고 내려온다는 말인가. 여기서는 못 먹으면 탈이 난다. 그것이 불량식품이든 건강식품이든 기어 다니는 놈이든 헤엄치는 놈이든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먹고 살아야 한다. 솔직히 담배도 공기가 도와주니까 피는 거다.

농사랄것까지 없는 텃밭. 다 먹지도 못하고 항상 남는다.

오늘은 계곡에 멧돼지들이 바글바글하다. 모두 합치면 20여 마리는 됨직하다. 등에 줄무늬가 귀여운 새끼들도 예닐곱 마리다. 태백에서 소백으로 건너는 중이었다.

물살이 가장 약한 곳을 골라 돼지들이 무리지어 계곡을 건너고 있다. 새끼들이 계곡을 다 건널 때까지 어미돼지가 숫자를 세듯 새끼들을 하나하나 점검한다. 5분도 되지 않아 돼지무리들은 소백산 숲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예전에도 애기한 적이 있지만, 6, 7월은 어미 돼지가 가장 사나울 때다. 아직 어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어미는 어떤 희생도 치를 각오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새끼들이 다 피할 때까지 현장을 지키는 놈이 멧돼지다. 새끼들에게 조금만 위협적인 행동을 해도 바로 들이대는 놈이 어미 멧돼지다.

필자소개
늡다리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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