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김남주를 생각한다
[책소개] 《김남주 평전》(강대석/ 시대의 창)
    2017년 06월 11일 0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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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고 있다 또한 이 길의 어제와 오늘을
이 길을 걷다가 쓰러진 다리와 부러진 팔과 교살당한 모가지를
고문으로 구부러진 손가락과 비수에 찔린 등과 뜬 눈의 죽음을
그들은 지금 공비와 폭도와 역적의 누명을 쓰고 능지처참으로 쓰러져 있다.
아무도 그들을 일으켜 세워 자유와 조국의 이름으로 노래하지 못한다
해와 달과 조국의 별이 밝혀야 한
다 밤이 울고 있다
나는 또한 알고 있다 내가 걷는 이 길의 오늘과 내일을”
―〈길〉 부분

이 책은 한국의 ‘파블로 네루다’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인 김남주의 삶과 사상, 그리고 그가 지녔던 세계관을 드러내는 평전이자 ‘철학적 전기’이다. 단순히 독재정권에 저항한 혁명가의 삶을 그린 것이 아니라 김남주의 사상적, 정치적, 철학적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그의 대표작 《나의 칼 나의 피》, 《사상의 거처》, 《조국은 하나다》,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등에서 발췌한 다수의 시와 산문도 초판본과 철저히 대조하여 이 한 권의 책에 수록했다.

1970년대에 김지하가, 1980년대에 황석영이 있었다면 1970~80년대를 통틀어서는 온몸으로 치열하게 저항하다 스러져간 ‘전사’ 김남주가 있었다. 그는 남미의 혁명시인 네루다처럼 명쾌한 의식과 철저한 원칙을 지니고 억압받는 민중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으며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사라지는 세상을 염원하고 실현하려 했다.

역사상 어떤 독재정치도 진실을 향한 외침을 원천 봉쇄할 수 없다. 아무리 군화가 평화를 짓밟고 자유와 진리의 숨통을 틀어막아도 저항하는 세력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1960~80년대 한국 민중의 움직임은 독재의 발걸음에 미약하나마 제재를 가했고, 이들의 용기 있는 저항은 행동하는 지성인의 올바른 태도에 관해 생각하게 했다.

아무리 자유와 평등, 화해와 협력 등의 보편적 진리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정통하다 하더라도 불의가 공공연히 행해지던 때에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은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김남주는 이러한 신념으로 평생을 독재와 폭력에 맞서 싸웠다. 고된 감옥 생활 탓에 얻은 병으로 출옥한 지 5년 만에 삶을 마감했지만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2004년 문예진흥원 우수도서에 선정되었고 2008년 국방부 불온도서에 이름을 올렸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김남주의 정신도 새롭게 계승하고자 이번에 개정신판으로 재출간하게 되었다.

칫솔을 갈아 우유갑에 시를 새기며 독재와 폭력에 맞서 싸운 시인 김남주

먼저 1부에서는 김남주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한다. 김남주는 가난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창시절에는 미국식 교육과 입시 위주의 교육에 반발하여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민주화 투쟁을 위해 전남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해 3선 개헌과 유신 헌법에 반대하여 《함성》이라는 지하신문을 펴내어 1973년 수배되기도 했다. 피신하는 와중에도 그는 《함성》지의 이름을 《고발》로 바꿔 전국에 배포하려 했지만 곧 체포되었다. 이때 받은 고문으로 인해 육체적 고통 앞에서 스스로 한없이 나약해졌던 체험을 〈진혼가〉에 자조적으로 고백하기도 했다. 이 시와 더불어 〈잿더미〉라는 시가 1974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실렸고 이후 본격적으로 문인이자 저항시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한때 광주에서 민중문화연구소와 해남농민회를 결성하는 등 지역 활동을 활발히 하기도 했다.

1978년에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이하 남민전)’을 결성하여 조직 신문인 《민중의소리》를 펴냈다. 남민전 전위대 활동으로 체포되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면서도 독서와 독학을 하며 투쟁 준비를 계속했다. 그에게 시는 투쟁의 무기였고 시를 계속 쓸 수 있는 토양은 민중의 삶이었다. 감옥 안에서는 종이와 연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칫솔 끝을 뾰족하게 갈아 우유갑에 시를 썼고 이를 교도관의 눈을 피해 밖으로 내보냈다.

2부에서는 투쟁의 무기가 되었던 김남주의 작품을 다수 살펴보며 그의 예술관과 세계관을 해설한다. 김남주는 자유를 존중하고 진리를 숭상했으며 보편적으로 귀하게 여겨야 할 가치들이 이 땅에 실현되기를 바랐다. 돈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으며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사라지는 세상을 염원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억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실현하기 위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동경했다.

이런 김남주에게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는 현실과 타협하고 입 닫는 것을 원치 않았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정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에 저항하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악에 반하여 행동하지 않는 것을 그에 동조하는 것이라 여기고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저항할 것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민중에게 요구했다.

남민전을 조직하여 적극적으로 투쟁하고 민중의 애환을 담은 작품을 썼을 뿐 아니라 루카치, 네루다, 브레히트, 푸시킨, 오도옙스키 등 유물론적이고 계급적인 관점에서 세계와 인간관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글들을 번역하고 책으로 엮어 널리 배포하며 독재에 항거했다. 옥중에서도 그는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한 편의 글이 독재정권의 총칼보다 무섭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변화는 시작되었지만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4.19 혁명, 5.18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 항쟁,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그리고 이름만 4대강으로 바꾼 대운하 사업. 우리는 분노했고 맞서 투쟁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기지 못했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광장에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134일간 20회에 걸쳐 누적인원 1,600만 명이 광장을 찾았다.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다시 불리기 시작했다. 김남주가 세상을 떠난 지 어언 20여 년이 흘렀고 이 땅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아직도 그가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온전히 오지 못했다. 여전히 우리는 이 거대한 자본주의적 구조와 친일 잔재들 속에서 노예처럼 소외당하고 착취당하며 살고 있다. 변화는 시작되었지만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을지언정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하며 저항했던 김남주의 말처럼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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