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교익의 기레기 비난,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이유
    국정원장 후보 부인의 부동산 보도
        2017년 05월 24일 02:43 오후

    Print Friendly

    최근 논란이 된 서훈 국정원장 내정자 부인의 부동산 거래에 대한 한겨레 보도에 대해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 씨가 이런 보도는 선정적인 보도일 뿐이라며 자신이 이 기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기레기 정신밖에 없다고 맹비난을 했다. 이에 대해 임대업에서 일을 하고 있는(던) 20대 청년노동자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황교익씨의 비판에 반박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용이 공유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에 필자의 동의를 얻어 레디앙에 게재한다. 황교익씨의 반박에 대한 재반박 글도 이어서 게재한다. 물론 다른 이들의 찬성과 비판 등 적극적인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지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

    황교익씨에게

    저는 외국인 여행객과 한국인을 두루 상대하는 숙박업소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20대 청년입니다. 공식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이지만, 보통 그보다 일찍 일을 시작해 늦게까지 일합니다. 한 달에 휴무는 두 번이고요. 월급은 기본급 더하기 개인 방 제공을 감안해도 130만원에 불과합니다. 사장은 전화 예약 받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잠깐씩 와서 시설 둘러보고 몇 가지 지시내리고 수금하고 가는 게 하는 일의 전부입니다. 이 게스트하우스의 실질적 업무 90%는 제 부담입니다.

    아침저녁 점등 및 소등, 주방 청소, 일반․재활용․음식물 쓰레기 비우기, 복도 및 계단 청소, 빈 객실 청소, 빈 객실 TV 및 와이파이 점검, 손님 짐 픽업, 침구류 교체 및 세탁 관리, CCTV 점검, 손님 체크인․체크아웃 관리, 소모품 수시로 채우기, 손님 요구사항 및 컴플레인 받아주기, 발코니 재떨이 비우기, 에어컨 켜고 끄기, 환풍기 키고 끄기, 화장실 및 샤워실 청소, 실리콘 공사, 가끔 튀어나오는 바퀴벌레 퇴치 … 등등

    숙박업소를 관리한다는 것은 엄청난 중노동은 아니지만 꽤나 번거로운 일입니다. 남는 시간 틈틈이 책을 읽어도 좋다는 조건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지만, 하루종일 신경쓰고 실행해야 하는 일이 수십 가지가 넘기 때문에 흐름은 자주 끊기고 독서 효율은 떨어집니다. 그러고도 한 달 꼬박 일해도 박봉입니다.

    반면에 우리 사장의 한 달 매출은 1500만 원 가량입니다. 건물주에게 월세로 500만원을 주고, 수도세․전기세․가스비와 같은 공과금, 인터넷과 케이블TV 사용료, 세금, 짜잘한 부대비용 등을 제외하고 나면 600~700만 원을 손에 쥡니다. 사장은 이런 게스트하우스를 다른 곳에 하나 더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 사장은 과연 윤리적인 사람인가요. 얼굴 한 번 비친 적 없는 건물주는 윤리적인 사람인가요. 저는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 생각이 틀렸나요. 이 환경에서 열심히 노동해 90%의 가치를 생산해낸 것은 저입니다. 하지만 제가 손에 쥐는 건 생산한 가치의 9%도 안 됩니다.

    이게 윤리적인 상황입니까?

    이쯤 되면 어김없이 사장의 창업 노력과, 건물주의 재테크 성과도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사장은 장사를 접게 되면 인테리어 비용 등을 포함해 창업 당시보다 다소 오른 권리금을 회수해갈 수 있는 상황이고, 건물주는 땅에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하나 박아놓았을 뿐인데 이 지역 건물 시세는 계속 올랐습니다.

    물론 권리금과 건물 자체는 사장과 건물주의 몫입니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건물주는 몰라도 저희 사장은 자기는 부모한테 세습 받은 게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는 건설 회사에서 일한 돈에 대출을 껴서 창업을 한 것입니다.

    만약 사장이 건물주와의 분쟁으로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 할 위기에 처하면 저는 권리금 문제에 한해서는 사장 편을 들 겁니다. 또한 대부분의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알바만큼(혹은 그 이상) 일하고 매출도 비슷한 몫으로 가져가시므로 나쁜 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권리금이 오르는 것도 그들이 노동을 해 상권을 활성화시킨 기여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희 사장처럼 불로소득이 지나치게 많은 일부 숙박업자나, ‘일반적인’ 건물주들 같은 임대사업자들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들이 매달 가져가는 돈은 사실상 노동자들이 대부분 생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과연 윤리적인가요. 저는 사장과 건물주가 무임승차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위를 진지하게 고민해봤지만 윤리적인 정당성을 찾지 못 하겠습니다. 그들이 단지 저보다 자본주의적으로 더 ‘강자’라는 것, 법적으로 이 행위가 허용된다는 것 말고는 설명 불가입니다.

    이 행위를 윤리적으로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많이 고민해봤지만 ‘착취’말고는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강자가 약자의 몫을 뺏어가는 것을 ‘착취’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을 ‘착취’라고 하겠습니까.

    황교익

    황교익씨 페이스북 글 캡처

    황교익씨의 기레기 언론 비난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교익씨께서는 한겨레 신문의 5월 19일자 “[단독]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부인, 상가 점포 6곳서 월세 1250만원” 기사를 쓴 기자를 “기레기”라고 모욕하셨습니다. 황교익씨가 내세운 근거는 한겨레가 “그 어떤 불법이나 윤리적인 흠결을 확인한 바 없”다, “단지 임대업으로 돈을 많이 번다고 비”꼰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근거로부터 황교익씨는 한겨레에서 “기레기 정신”을 발견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황교익씨의 근거는 딱 3분의 1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1) 황교익씨 말씀대로 임대 사업은 합법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2) 법이 곧 윤리는 아닙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린 이유로, 저는 일반적인 임대사업 자체가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3)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도 이런 신념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단지 임대업으로 돈을 많이 번다고 비”꼬았다는 황교익씨의 주장은 억측일 뿐입니다.

    제가 상세히 설명 드린 임대사업자의 수익 구조라는 맥락의 중요성을 몰랐거나,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모르는 척 하는 사람이라면 “윤리적인 흠결”도 없다고 선뜻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못 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해당 기자를 쓴 기자도 “기레기”라고 모욕하지 못 하겠습니다(백번 양보해 기자가 정보 값이 별로 없는 기사를 썼다고 쳐도 “기레기”라고 함부로 욕하시면 안 됩니다).

    단지 제가 대학에서 응용윤리학을 전공해서 ‘윤리’라는 용어가 그리 가볍게 쓰여도 좋은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만이 아니라, 지금 제가 당장 이 건물에서 겪고 있는 현실이 실제로 착취이고 그걸 뻔히 알면서도 숙박업자 사장과 건물주에게 “윤리적인 흠결”이 없다고 여길 만큼 뻔뻔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겨레가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가족의 임대사업 수익 규모를 보도한 것을, 과연 보도 윤리에 어긋났다고 할 수 있나요. 저는 오히려 한겨레에게 고마웠습니다.

    제가 잘린 이유

    최근 저는 사장으로부터 일을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사장도 ‘너 일은 참 잘 한다’고 누차 인정했지만, 제가 일을 게을리 하거나 못 해서 잘린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제가 가진 신념 때문에 잘린 것입니다. 최근 사장이 수금을 하러 온 적이 있습니다. 며칠 동안 손님이 많이 들어왔다가 빠져 업무량이 많아 정신없고 지친 상태였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할 일은 많아서 주방 청소를 신경을 못 썼습니다. 꾸준히 잘 해도 한 번을 못 하면 손님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오고, 사장은 저를 나무랐습니다.

    저는 사장에게 억울한 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장은 제게 뭘 그리 억울하냐고 나무랐습니다. “불만 있으면 다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사장에게 홈페이지에 객실 사진을 올려놓을 때 있는 그대로 찍어서 올렸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사장은 바닥을 기준으로 사진을 찍는데, 이 경우 서서 똑바로 찍는 것보다 객실 크기가 커보이게 나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객실에 들어갈 때 바닥을 기어서 입장하는 손님은 없기 때문에, 예약 손님이 방문했을 때 홈페이지와 사진이 다르다고 컴플레인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과장 광고로 인한 죄책감은 언제나 사장이 아닌 제 몫입니다

    잘못된 정보 때문에 막상 방문을 했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체크아웃을 했지만 예약금을 환불 받지 못 한 손님도 있습니다. 사장은 팔 물건이 손님에게 잘 보였으면 좋겠는 것은 모든 사장의 똑같은 마음이라며 제 말이 어이가 없다고 했지만, 사장은 요즘 젊은 손님들에게 실사진이나 방의 ‘나쁜 점’도 알려주는 진정성 마케팅으로 신뢰를 쌓는 업체도 있다는 것을 알만큼 혁신적이지도 못 합니다. 그는 진실이 아니라 대안적 진실을 원할 뿐입니다.

    사장은 저에게 이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자신의 경영 방침에 따라야 한다고 화를 내며 불쾌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장님의 경영 방침을 존중하지만 이 정도 의견은 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습니다. 사장은 제가 너무 “예민”한 게 문제라며 이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은 자신이니 이 정도 지적과 홍보도 못 받아들이면 나가라고 소리 쳤습니다. ‘끝났구나’ 싶었던 저는 결국 자포자기하고 속내를 꺼냈습니다.

    이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은 사실 사장님만이 아니라, 이곳을 거쳐 갔던 수많은 매니저들이며 들인 노력으로 따지자면 사장님은 이들에 비해 불로소득을 많이 가져가셨다고 했습니다. 사장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면서 ‘너 일은 잘 하는데 사상이 너무 급진적이네?’ ‘너 그런 생각을 가졌으면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데 어디를 가도 계속 부서질 거다’ ‘세상을 점진적으로 바꿔야지 너는 높은 이상을 정해놓고 거기에 다른 사람을 맞추려고 해’ 등 오히려 제 신념과 태도를 문제시하면서 논점을 흐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장에게 일을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내일 사장이 몇몇 구직자들을 면접을 볼 것이고 저는 며칠 내로 백수가 될 것입니다. 불만을 다 말해보라던 사장은 제가 ‘진짜’ 저의 모습을 드러내자 정작 저란 존재를 거부했습니다.

    제가 사장에게 수익을 반반으로 분배하자고 요구한 것도 아니고, 사장의 생각에 대한 제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이것이 “선을 넘은” 발언이기 때문에 자른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사장이 나쁜 사람처럼 묘사됐다고 느끼실 수 있지만, 제 생각에도 우리 사장은 동종 업계 평균으로 볼 때 별로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착취는 어쨌든 착취이기 때문입니다.

    게스트하우스

    제 신념과 이상은 분명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현재 사람들은 서로를 착취하고, 착취당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일 뿐, 그 자체로 가치나 당위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불로소득을 추구하고 과장광고를 한다고 내가 추구하는 불로소득과 과장광고도 옳은 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은 사실로부터 규범을 부당하게 도출하는 자연주의 오류입니다.

    사장은 제게 세상은 “점진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힘을 가진 자리에 올라서 바꿔야 한다고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제가 무슨 당장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려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사장 혼자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음에도. 사장은 단지 제가 사장과는 다른 윤리적 신념을 가졌고 또 그것을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선을 넘었다고 합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자를 포용하지 못 하는 자. 과연 사장과 저 둘 중 누구일까요. 저는 먼저 그만두겠다고 사장에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이날의 일이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장에게 제 가치관을 드러내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장들에게 진짜 제 신념을 드러냈다가는, 제 밥줄이 끊겨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저는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진짜 제 모습을 숨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장은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라도 시도했지, 건물주는 이 순간에도 없었습니다. 건물주는 대체 무슨 노력을 합니까. 바로 그런 이유로, 한겨레가 “[단독]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부인, 상가 점포 6곳서 월세 1250만원” 보도를 냈을 때 저는 오히려 한겨레의 존재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드러낼 수 없는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제 계급적 이해를 대변해줄 수 있는 언론이 있어서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과, 새로이 임명될 주요 공직자의 재산 축적 방식의 정당성을 평가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새 정부가 리버럴 정부로서 성공하기를 기원하고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몇몇 모습에 감명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지만, 제 신념에 비추어볼 때 그가 임대사업의 비윤리성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리더라는 것은 이번 기회에 깨닫게 됐습니다.

    이것은 제가 앞으로 정치적 선택을 할 때 참고할 중요한 정보입니다. “단독”으로 이런 정보를 전해준 한겨레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황교익씨께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해당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는 과연 황교익씨 말씀처럼 “기레기”입니까? 생각이 다른 자를 수용하지 못 하는 진짜 민주주의의 적은 한겨레와 일부 극성 문재인 지지자 중 누구입니까? 황교익씨가 진짜 알고 싶은 것은 이 사회에 관한 진실입니까, 혹은 그저 일부 극성 문재인 지지자들의 불안감을 달래줄 ‘대안적 진실’일 뿐입니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제 세대까지는 제가 꿈꾸는 수준의 진보적인 세상이 오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제 뒤 세대는 그런 세상을 조금 누리다 가길 희망합니다.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의 존재는 절실합니다. 이들이 꿋꿋하게 이번 새 정부도 잘못된 길로 가면 비판의 목소리를 내주길 바랍니다. 이들 언론 속에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을지 모를 기자들이 있다는 것 정도면 위안으로 삼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작은 교감을 추구할 가능성조차 “기레기 정신”에 선동당한 것이라 용납 못 하시겠다면, 저는 기꺼이 “기레기”들 편이 되겠습니다.

    필자소개
    임대업에서 일한 청년노동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