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시와 삶] 또 곡기 끊은 하늘사람들
    2017년 05월 01일 10: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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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나는 날이 좀 선 사람이 좋다

그저 시비만 붙자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뿌리내린 사상으로

세상을 섬뜩하게 가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가난한 사람이 좋다

철없이 거진 것 많아 눈길이 허망한 사람보다

의복은 남루하여도 가슴이 넓어

사연이 있거나 아픈 놈 보면 품을 빌려주는

그런 이가 좋다

 

난 밥그릇이 큰 사람이 좋다

조막만한 그릇에 제것만 담고

돌아앉아 먹는 사람은 재미가 없다

푸지게 담아 일없이 들른 누구라도

숟가락을 꽂을 수 있게끔

큰 그릇을 가진 이가 좋다

 

난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좋다

멍청하게 퍼마시는 게 아니라

눈치보고 저울보고 엉덩이 떼는 게 아니라

눈에 한가득 눈물을 준비하고

없는 놈 눈물나는 주사에 펑펑 눈물 쏟아주는

술꾼이 좋다

 

그리고 나는

나보다 좀 냉정한 사람이어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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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시간이 멈춰 서있는 것처럼, 성장이 멎어 낮게 웅크린 들짐승처럼, 기계가 돌아가지 않는 기타 공장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한겨울 추위를 막기 위해 건물 안에 비닐 천막을 치고 다들 정세훈 시인의 시집출판기념회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한쪽에서 몸통만한 들통에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대접할 것이 이것밖에 없으니 맛있게 드시고 가라며 씩 웃던 그는 지금 광화문에서 15일째 굶으며 고공 농성중인 콜트콜텍 노동자 이인근씨였다

콜트콜텍 노농자들은 그 텅빈 공장 건물마저 빼앗기고 길거리에 천막을 치고 또 몇차례 계절이 바뀌면서 영혼마저 빼앗길 것같은 길고 지난한 투쟁을 이어왔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강제로 부서 이동을 당하고 항의하다가 해고당한 노동자의 복직을 요구하는 집회가 매주 목요일마다 명동 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세종호텔 앞 길거리에 방석을 깔고 앉으면 화려한 호텔 불빛 앞에 모여 있는 우리들이 도시 안에 섬처럼 둥둥 떠 있는 것같았다

세종호텔 전 노조위원장 고진수씨는 마이크를 잡으면 발언이 길다 그러나 듣고 있으면 지루하지가 않고 한마디 한마디에그들의 긴 싸움이 아프게 녹아 나와 마음이 시리다

 나는 해고자가 아니다. 세종호텔에 입사한 지 이제 16년차다. 2011년 회사는 의도적으로 또 하나의 노조를 만들었고, 구조조정과 외주화, 비정규직 확대를 반대하는 기존의 세종호텔노동조합을 6년 내내 탄압해 오고 있다.

물과 소금만으로 지탱하며 글을 쓰는 오늘(27일)이 단식 13일차다. 공동투쟁을 함께 시작하고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인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노동법을 제·개정 하지 않고는 인간답게 살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각자의 싸움들 속에서 서로 연대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있었고 각기 달라보였던 사업장들의 투쟁들이 자본주의 안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확인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끝장내지 않으면, 노동3권을 온전히 쟁취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희망도 내일도 없음을 알았다 – 고진수씨의 글에서

세종호텔 고진수
하이텍코리아 김혜진
아사히글라스 오수일
동양시멘트 사내하청 김경래
콜트콜텍 이인근
현대차 울산사내하청 장재영

장기 투쟁에 이미 몸도 마음도 상한 이들이 또 하늘 사람이 되어 곡기를 끊고 있다

평화로운 일상이 미안해진다

선거 차량은 분주하게 지나다니지만 아직도 노동자들의 싸움은 뒷전이다

아래에서 바라보고만 있어야하는 하루하루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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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노조를 만들었다가 해고를 당하고 이후 민중당에서도 활동했고 지금도 거리의 시인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있는 김홍춘 선생의 ‘시와 삶’ 칼럼이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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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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