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만의 현실 정치,
    배제의 정치 패거리 정치
    [기고] 민주공화국 미래를 꿈꾸며
        2017년 05월 01일 10: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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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5일 JTBC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의 발언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문재인 후보가 동성애에 대해 “반대하지요”라고 단언한 것에 대해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이 글은 이 논쟁에 개입하고자 쓴 글이다. 허나 단순히 문재인 후보의 발언이라는 ‘현상’의 이면에는 단순히 성소수자의 배제‧차별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의미와 범주에 대한 문제, 87년 체제에서 수혜를 입은 양당체제, 촛불 이후 나타난 정치 지형의 변화와 체제의 균열, 그리고 진보정치의 의미까지 포함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팩트 체크

    먼저 ‘팩트’와 그 맥락부터 짚어보자. 동성애와 관련된 홍준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질답은 두 장면에서 나왔다. 첫 번째 장면은 다음과 같다.

    홍: “군에서 동성애가 굉장히 심합니다. 군 동성애는 국방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어떻습니까?”
    문: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홍: “그래서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문: “반대하지요.”
    홍: “반대하십니까?”
    문: “그럼요.”
    홍: “그런데 박원순 시장은, 동성애 파티도 그 (서울시청) 앞에서 하고 있는데?”
    문: “서울광장을 사용할 권리에서 차별을 주지 않는 것이죠. 차별을 금지하는 것하고, 그것을 인정하는것 하고 같습니까?”
    홍: “아니, 차별금지법이라고 제출한 게, 이게 동성애 사실상 허용법이거든요. 문후보 진영에서, 민주당에서 제출한 차별금지법인가 그게 하나 있는 게.”
    문: “차별금지하고 합법화하고 구분을 못합니까?”
    홍: “아니, 합법화가 아니고. 분명히 동성애는 반대하는 것이죠?”
    문: “예, 저는 뭐, 좋아하지 않습니다.”
    홍: “아니 좋아하는 게 아니고, 찬성하냐 반대하냐고요.”
    문: “합법화 찬성하지 않습니다.”
    홍: “에이, 알겠습니다.”

    위 대화의 맥락을 살펴보자. 홍 후보는 군 가산점제에 대한 문 후보의 입장을 물었고 문 후보는 그에 준비된 듯한 답변으로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 다음 홍 후보의 질문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군 내 동성애 문제였고, 이것은 군 가산점제와 마찬가지로 문 후보에게 실언을 얻어내기 위한 공세였다.

    여기서 문 후보는 망설임 없이 분명하게 “반대하지요”라고 단언했다. 여기서 “그래서 동성애 반대하십니까?”라는 홍 후보의 교묘한 질문의 맥락을 짚을 필요가 있다. 홍 후보는 군 내 동성애가 허용되서는 안 된다는 맥락에서, 그러나 그 장면만 두고 보면 동성애 일반에 대한 말처럼 들리도록 질문을 던졌다. 이후 문 후보는 “차별금지하고 (동성혼) 합법화하고 구분”해야 한다며, 자신의 말이 동성애 일반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리고 이 장면의 말미에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얽힌 논점들을 하나씩 짚어보자. 나는 ‘차별금지법’과 ‘동성결혼 합법화’를 구분하는 논리는 차라리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력 대선후보가 자신의 당선과, 특히 이후 민주당이 계속 보수 개신교 세력에게 공격받는 것을 막기 위해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합법화’를 구분하는 것은 이해해줄 수 있다. 이건 대선국면에서 민주당의 일관된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초의 논점은 군 내 동성애 이슈였다. 이것을 “반대하지요”라는 말로, 현재 동성애자의 인권침해나 시민권에 관한 논점들에서 사실상 ‘반인권적 입장’을 택한 셈이다.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으로, 홍 후보의 질문의 논점을 흐리며 넘어갈 수많은 방법들이 존재했음에도, 망설임 없이 분명하게 “반대”를 입에 담았다.

    그러나 이것조차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헌데 “좋아하지 않습니다”는 마치 쐐기와 같은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문 후보의 지지자들은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싫어할 수 있지, 문제는 공과 사를 구분 못한 실수’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차별적 시선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 발언이 문 후보의 호모포비아적 세계관의 반영인지는 알 수 없다. 문 후보의 마음까지 알 도리는 없다. 허나 그가 “반대”와 호오를 분명하게 밝힌 것은, 사실상 준비된 기조로 읽힌다. 준비되지 않았다면 머릿속에서 계산하느라 그렇게 즉답이 나올 리 없다. 도저히 실수일 수 없다. 다른 대답이 가능했음에도 그런 대답을 준비했다는 것은, 문 후보가 명백하게 ‘반 동성애’의 입장을 천명한 것으로 이해된다.

    홍: “아까 동성애 물어보겠는데, 동성애는 반대한다고 하셨죠?”
    문: “동성혼은 합법화할 생각 없습니다.”
    홍: “합법화가 아니라,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하셨죠?”
    문: “차별은 반대합니다.”
    홍: “차별은 반대하다니. 동성애 때문에 지금 얼마나 우리 대한민국에 에이즈가, 14,000명 이상 에이즈가 창궐하는 줄 아십니까?”
    문: “그런 식의 성적인 지향 때문에 우리가 차별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하고, 동성혼을 합법화한다고 하는 것 하고는 다르죠.”
    홍: “그게 사실상 동성애 합법화하는 법입니다.”

    두 번째 장면이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홍 후보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고 차별금지법/동성결혼 합법화를 구분하는 논리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이 문 후보의 진의라고 변명하는 지지자들이 많다. 그러나 그 전 장면을 다시 돌려보시라. “반대하지요”, “그럼요”에 이어 “좋아하지 않습니다”까지 언급한 그 맥락은 너무나 ‘반 동성애’로 읽힌다. 첫 번째 장면의 맥락을 덮으면서 두 번째 장면이 ‘진의’라고 말하는 것은 합리화일 뿐이다. 이후 문 후보가 사과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반 동성애’에 대한 논점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후 벌어진 논쟁은 더 심층의 문제를 드러냈다.

    인지부조화와 피해의식

    당시 토론회에서의 맥락을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문 후보 지지자들이 맥락 전체를 말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 후보 지지자들의 논리는 맥락을 짚어 논박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서 집단적인 인지부조화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언급할 것은, 나는 문 후보와 그 지지자들에 대해 SNS 상에서 온갖 비난과 조롱이 난무하는 것에 한편으론 문제의식을 느낀다. 이른바 ‘달레반’들이 사용하는 진영론적 언어와 논리와 그들의 멘탈리티는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된다. 나 역시 문 후보의 지지자들을 맹비난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들의 모습을 닮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믿는다. 저들과 똑같아질 순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문 후보 지지자들의 양태가 훨씬 심각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매우 이성적이라 믿으며, 문 후보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선 비이성적, 비정치적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정확하게 인지부조화가 나타나는 대목이다. 문위병, 달레반, 월베와 같은 단어들이 그냥 나온 말이겠는가. 정작 그들이야말로 맥락과 논점을 흐리고 소통을 거부하며 자신들의 정의를 강요한다. 그것은 이성적인 대화나 토론이 아닌 집단적 자위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후보가 털 끝 하나도 다치지 않도록, ‘꽃길’만 걷도록 기원하며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정치적 입장은 배제한다. 문 후보를 지지하는 민주당 내 정치인이나 팟캐스트 진행자들의 언어가 구설수에 오른 게 한두 번인가? 진보를 욕하기 전에 자신들부터 돌아봐야 한다. 현재 비이성과 감정의 과잉은 문 후보 지지자들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 집단적 인지부조화의 기저에는 피해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문 후보 지지자들은 이른바 ‘한경오’를 비롯한 민주진보진영에서 ‘친노는 왕따’로 고립되었고, 그렇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고 말한다.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을 억울하게 죽게 만든 보수정권에서 10년 동안 자신들이 피해자였으며, 정권교체를 통해 자신들의 억울함을 되갚는 것이야말로 정의 구현이라 믿는다. 자신들의 정권교체에 조그마한 흠결이라도 내려는 이들은 모두가 ‘악’이다. 문 후보를 공격하는 이들이야말로 자신들을 ‘왕따’시켜온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 악은 구체적으로 적폐‧기득권‧일베와 같은 이름으로, 혹은 메갈‧동성애와 같은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그런데 전자의 악마들과의 관계는 역설적이다.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의 언어는 민주주의 정치의 언어와는 분명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적폐’라는 말을 꺼내든 것이 원래 박근혜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민주화 이후 가장 반민주적인 정권과 대통령이 사용한 언어를 지금 문 후보 지지자들이 전유하고 있다는 것은 두 세력 간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암시한다.

    전자의 악마를 적폐로 규정함으로서 자신들의 정의를 세우려는 것과 달리, 후자의 악마의 경우엔 ‘정치’와 운동을 구분함으로써 자신들의 정당성을 지키려한다. 문 후보 지지자들은 동성애 이슈에 관해, 자신들의 정치는 보수정권과 다른 민주주의의 정치이며, ‘냉철한 현실 정치’에선 과격한 목소리와 행동으로 밀어붙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주지하다시피 그들의 언어야말로 비이성과 감정의 과잉이며, 냉철한 계산과 합리적 소통보다는 극렬지지자들의 인지부조화로 문 후보에 대한 모든 비판을 방어하고 있다. 그들의 언어는 민주주의의 언어가 아닌 적대와 전쟁의 언어에 가깝다. 그 아래엔 자신들만이 유일하게 올바르다는 진영론적 독선, 그리고 그 올바름이 늘 적들에게 짓밟혀왔다는 피해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들만의 ‘현실 정치’, 패거리주의

    문 후보 지지자들이 말하는 ‘정치’의 의미를 좀 더 곱씹어보자. 그들은 동성애 이슈에 대해 정치와 운동을 구분하면서 전자를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며 점진적인 것, 후자를 감정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자신들은 현실 정치를 하기에 ‘어대문’까지 이뤄냈지만, 진보는 감정적인 배설과 비현실적 운동에 그치기에 힘이 없지 않냐는 조소적 뉘앙스까지 섞어가면서.

    그러나 이 ‘냉혹한 현실 정치’는 현실을 적확하게 포착한 개념이라기보단, 문재인 후보나 민주당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우선 기존에 그들이 보여온 무능력한 ‘현실 정치’의 행태를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권 10년 동안 제대로 한 것 없이 무력했던 민주당의 과거는 벌써 잊힌 듯하다. 여대야소를 탓하지만, 엄혹한 독재 시절에도 김대중 총재는 소수의석의 민주당을 이끌고 정국을 주도했다. 지난 4월 총선 이후 의회권력 분포가 크게 변화했는데, 아니 지난 겨울의 촛불로 많은 것이 뒤바뀌었는데, 개혁입법 하나 제대로 통과된 게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특검 연장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는 제1 야당이, 정권교체하면 모든 게 좋아질 것이니 믿어달라고 한다. 대체 무얼 보고 믿으란 말인가? 이런 맥락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동성애에 대한 차별도 점진적으로 시정될 것이란 약속 역시 얼마나 믿을 수 있겠는가.

    ‘어대문’은 민주당의 실력의 결과가 아니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촛불의 반사이익 덕분이었다. 그리고 촛불은 시민들의 장엄하고 절박한 ‘운동’이었다. 여당이 민주주의를 뒤흔들고 야당이 무기력할 때, 그들만의 ‘현실 정치’가 아닌 넓은 의미의 정치인 운동이 정치의 지형 자체를 크게 뒤흔든 것이다. 그러나 문 후보 지지자들은 ‘현실 정치’의 개념을 자신들의 집권과 동일시함으로써, 정작 촛불에서 나타난 거대한 민심을 배제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많은 시민들을 제도정치의 영역에서 배제시킬 때 운동은 그것에 저항하는 대항정치의 역할을 한다. 허나 민주당과 문 후보 지지자들이 ‘현실 정치’의 의미를 최대한 협소하게 규정함으로써, 그것은 현실주의가 아니라 현실을 빌미삼아 퀴어들을 포함해 촛불마저도 정치에서 배제하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그런 ‘정치’ 개념은, 만약 문재인 정권에서 촛불 시위가 일어날 경우 그것을 ‘항쟁’이 아닌 ‘광광’으로 비하시킬 것이다.

    이 협소한 의미의 ‘현실 정치’를 강조하는 것은 진보정당을 자신들의 ‘2중대’로 이해하는 것의 세련된 표현이기도 하다. 진보에게 ‘현실 정치’를 하라고 하는 것은, 결국 시끄럽고 짜증나게 굴지 말고 ‘진짜 적’을 공격하라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같은 편’이라고 전제할 때 가능한 것이며, 동시에 자신들이야말로 ‘적폐’에 대항하는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보정당이 잘 되기 위해서는 ‘현실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 ‘현실 정치’의 내용은 가장 정의로운 민주당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일 뿐이다. 사실상 ‘현실 정치’란 말로 진보정당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현실 정치’ 개념의 이면에는 민주당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그 ‘권력’은 87년에 형성된 양당 중심의 정당체제 하에서 민주당이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의미한다. 자신들이 정권을 탈환해 기득권을 획득하기 위한 도정에 놓인 정치적 과정‧행위만이 ‘현실 정치’의 범주에 속한다. 그 외에는 전부 비정치 혹은 반정치로 치부된다.

    이런 멘탈리티는 ‘패거리주의’의 사고방식이다. 피해의식과 ‘내로남불’의 신념이 뒤섞여 자신들의 정권교체만이 유일한 정의인 것처럼 외치면서, 실제로는 온갖 ‘적폐인사’들까지 캠프에 줄을 대고 정권교체 이후 어떻게 자리를 챙길지 골몰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민주당에 줄을 댄 수많은 정치낭인이나 재벌인사 등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인물들의 다수가 실은 기득권 획득을 위한 이해관계로 뭉친 것이다. 그것을 ‘현실 정치’라는 말로, 자신들이야말로 피해자이자 정의의 구현자라는 말로 은폐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87년 정당체제의 현실이다. 87년 정당체제의 핵심은 보수정당과 민주정당이라는 두 패거리의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현재 20세기의 ‘냉전형 보수’가 물러난 자리에 ‘냉전형 진보’가 그 자리를 꿰차려 한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현실 정치’의 본 내용이다.

    우리들의 ‘현실’ 정치

    “우리는 진보의 치어리더가 아니다.” 이것은 2011년 나꼼수 비키니 사태를 촉발시킨 한 네티즌이 쓴 글의 제목이다. 문 후보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언급했으나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삶의 현실이 문 후보의 정치적 비전에서 배제되어 있음을 목도해야 했다. 퀴어들은 유력한 대선후보가 자신들의 존재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있어야 했다. 매일 마다 헬조선에 절망한 청년들이 자살하고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비루한 현실을 견디거나 농성투쟁을 해도, 정작 ‘현실 정치’로부터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껴야 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걷어 치워버린 다수의 국민들 모두가 마주한 현실이 그러하다. 여전히 ‘현실 정치’의 주체가 되는 시민들은 ‘패거리’에 속한 일부의 사람들일 뿐이다. 이것이 지금 심상정에 대한 지지율의 상승이 전통적 진보 지지층의 결집 그 이상인 이유다.

    그렇기에 더욱 외쳐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공화국 시민으로서 그 누구도 억압되거나 배제되어선 안 된다. 그것은 젠더나 성적지향, 사회경제적 지위, 출신 지역, 학벌 등 어떤 차이에 의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을 이뤄나가는 게 진정한 의미의 정치이며, 민주공화국의 본 의미이다. 우리는 이미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로부터 배제된 시민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배제된 이들의 정치는 저들이 말하는 ‘현실 정치’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허위의 정치이며 저들만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일 따름이다.

    지금 시민들이 요구하는 정치는 기존의 보수/민주진보 구도의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적폐의 한 측면만을 강조함으로써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할 뿐이다. ‘그들만의 현실 정치’가 아니라, 다수 시민들의 현실을 제대로 대변하고 반영할 진짜 ‘현실’ 정치에 대한 염원이 선거판을 뒤흔들고 있다.

    그들에겐 미래의 대안에 대한 비전이 없다. 이미 ‘어대문’인 상황에서도 여전히 안보 이슈가 토론의 중심이 되는 현실이 그것을 방증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87년 정당체제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일이다. 바로 그 협소한 ‘정치’를 깨뜨리는 일, 배제에 저항하기 위해 시끄럽게 떠들고 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진짜 현실 정치다. 그 시작은 정치의 경계를 확장하여 87년의 제도가 소화하지 못하는 갈등, 제도로부터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일이 될 것이다. 나아가 그 목소리들을 놓치지 않고 더 나은 민주공화국의 미래를 함께 꿈꾸는 것, 이번 대선에서 심상정이 가진 의미가 바로 그것일 게다.

    필자소개
    대학생.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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