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대선보다
    더 요동치는 프랑스 대선
    극우파 르펜, 강경좌파 멜랑숑 부각
        2017년 04월 21일 05: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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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3일 실시되는 프랑스 대통령선거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결선투표 진출이 유력한 후보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과 무소속의 엠마뉘엘 마크롱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집권당인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후보는 물론, 제1야당인 공화당의 피용 후보조차 결선에 오르기 어렵다는 것이 여론조사의 일관된 결과였다. 그 자체가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 충격이었다. 모두가 충격에 빠진 사이, 르펜과 마크롱의 결선 진출을 흔드는 후보가 등장했다. 좌파당(PG)의 장 뤽 멜랑숑이다.

    르펜은 대선이 시작되면서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사회당의 올랑드 대통령은 역대 최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결선에는 제1야당인 공화당에서 선출되는 후보가 진출한다는 것이 기정사실이었다. 공화당은 쥐페 전 총리가 유력한 가운데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접전이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낙승을 거둔 것은 사르코지 밑에서 총리를 역임했던 무색무취의 피용이었다. 쥐페가 후보로 선출될 것으로 예상했던 공화당은 조금은 당혹스러운 결과였다. 하지만 결선에 오를 후보는 르펜과 피용이라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공화당의 후보가 쥐페든 사르코지든 마찬가지였다.

    사회당의 분열과 정당정치의 실종

    대선을 앞둔 집권 사회당은 처참한 상황이었다. 올랑드 대통령은 한 자리 숫자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고, 당내 여론에 밀려 불출마를 선언해야만 했다. 사회당의 주류가 대안으로 미는 후보는 마뉘엘 발스 전 총리였다. 발스의 최대 약점은 올랑드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배어 있다는 것이었다. 당의 우파에 대항한 좌파의 희망은 아르노 몽뜨부르(Arnaud Montebourg)였다. 몽뜨부르는 2012년 당내 경선 당시 올랑드(39%)와 마르틴 오브리(Martine Aubry)에 이어 3위(17%)를 차지하면서 좌파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오브리(31%)와 몽뜨부르의 색깔이 가까운 탓에 당내 결선에서 역전의 전망도 나왔지만, 여론조사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을 앞서는 것으로 나오는 올랑드가 후보로 선출되었다. ‘사르코지, 공화당 타도’는 사회당을 유령처럼 지배하고 있었다.

    2017년 1차 당내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재출마를 포기한 올랑드 진영이 밀고 있는 발스가 아니라 브누아 아몽이었다. 2년 동안 경제장관을 지내는 동안 아몽은 올랑드의 우회전 노선에 맞서면서 대립했고 끝내 교육장관으로 밀려났다. 그런 아몽을 당원과 지지자들은 좌파의 구심으로 전폭적으로 지지했지만 1위를 차지한 것은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결선에 오르지 못한 몽뜨부르는 즉각 아몽의 지지를 선언하면서 경선은 예상을 뒤엎고 싱겁게 막을 내렸다. 아몽은 ‘로봇세’와 같은 급진적인 정책과 중도좌파의 전통적인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집토끼를 잡는 전략에 주력했다. 당의 지지기반인 노동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면서 눈에 띄게 지지율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아몽에 이어 경제장관을 맡아 복지 후퇴와 반 노동정책을 주도했던 마크롱이 사회당을 탈당할 때만 해도 조직과 자금이 없는 그가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은 낮아보였다. 하지만 경찰이 공화당의 피용이 부인과 자녀들을 허위로 보좌관에 등록해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사회당의 후보로 선출된 아몽은 지지율을 만회하고 있었지만 두 자리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마크롱이 선거조직인 ‘앙 마르쉐(En marche, 전진)’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순식간에 피용을 제치고 르펜과 2파전을 형성했다. 사회당과 공화당의 실망한 사람들이 마크롱의 앙 마르쉐로 모여들었다. 한때 올랑드를 지지했던 사람과 사르코지의 선거운동을 했던 사람이 지역책임자를 함께 맡고 있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아몽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당의 우파들은 태업을 넘어 사보타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동남부 최대도시인 리옹의 시장을 맡고 있는 제라르 콜롱브(Gerard Collomb)은 공개적으로 마크롱의 지지를 선언했다. 20년 가까이 리옹을 장악하고 있는 콜롱브의 결정으로 당의 선거조직은 마비상태에 빠졌다. 올랑드의 변함없는 지지자인 콜롱브의 행보를 놓고 우파들이 선거를 사실상 포기하고 마크롱을 차선으로 선택하라는 신호가 아니냐는 분석마저 등장했다. 북부 최대도시인 릴(Lille)의 시장이자 전 당수인 오브리는 콜롱브의 제명을 주장하면서 당은 좌우파의 대결 양상으로 치달았다. 조금씩 오르고 있던 아몽의 지지율은 다시 한자리로 추락했다.

    멜랑숑의 ‘맨 파워’와 ‘불굴의 프랑스’

    두 번째 대선에 출마한 멜랑숑의 지지율은 5년 전처럼 10% 언저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멜랑송에게 기회가 온 것은 집권 사회당이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고, 공화당의 피용 후보가 공금횡령으로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후보 교체설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반전의 시작은 TV토론이었다. 멜랑숑은 1차 TV토론이 끝난 후 여론조사에서 마크롱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호감도’를 기록했다. 호감도가 조금씩 지지율과 연결되면서 2차 TV토론의 승자는 멜랑숑이 차지했다. 멜랑숑의 지지율이 공화당의 피용을 앞지르며 르펜과 마크롱을 5% 차이까지 따라 잡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속속 등장했다.

    TV토론에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멜랑숑은 자신의 강점인 대중연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공화당의 근거지인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에서 열린 유세에서는 수만 명의 유권자들이 몰려들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20년 이상 시장을 맡고 있는 공화당의 쟝 크라우드 고든(Jean-Claude Gaudin)는 ‘위험한 현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고든의 말은 곧 현실이 됐다. 마르세이유에 이어 디종, 릴 등의 유세가 계속해서 화제와 성공을 거두면서 멜랑숑의 결선 진출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마르세이유

    마르세이유 집회(위)와 멜량숑 모습(아래)

    멜랑숑

    르펜과 멜랑숑의 결선 진출이라는 시나리오를 우려한 대기업들은 일제히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마크롱과 피용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했다. 진보언론인 일간 르몽드는 집권 사회당과 제1야당인 공화당이 실종되고 있는 현상을 ‘미증유의 정치’라고 호명하면서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전망했다. 선거가 2파전이 아니라 4파전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 한 것이다.

    멜랑숑의 선전에는 탄탄한 선거조직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멜랑숑의 주도로 지난해 초에 결성된 ‘프랑스 앵수미즈(France insoumise, 불굴의 프랑스)’는 2012년의 ‘좌파전선(Left Front)’의 확장판이다. 멜랑숑이 소속된 좌파당과 공산당(PCF)을 비롯해 ‘새로운 사회주의 좌파(New Socialist Left)’와 같은 정치운동조직들이 대거 참여했다. 급진좌파정당과 광장의 조직들이 하나로 뭉친 셈이었다. 불굴의 프랑스는 1만 명의 활동가들이 대표자로 참여하는 형식으로 결성되었는데 공산당의 참여는 당의 공식결정은 아니었다.

    결선 진출이 불투명하자 아몽은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공산당 지도부가 이를 받아들인 반면에 좌파당과 멜랑숑은 단호히 거부했다. 공산당의 피에르 로랑 서기장이 재차 선거연대를 촉구했지만 멜랑숑은 독자적인 완주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광장의 정치운동조직들도 아몽과의 선거연대에는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공산당의 지도부가 선거연대라는 방침을 고수했지만 활동당원들은 개별 자격으로 대거 불굴의 프랑스에 참여했다. 공산당의 지도부만 무기력한 것은 아니었다. 사회당의 크리스토프 캉바델리 서기장은 ‘멜랑숑은 혁명가’라고 비난하면서 아몽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있다.

    르펜과 멜랑숑 결선 시나리오와 러스트 벨트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르펜과 마크롱은 23%대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으며, 멜랑숑과 피용은 20%에 근접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지지율의 차이가 작기 때문에 마지막 TV토론에 따라 모든 시나리오가 열려있다. 부동층이 3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다 투표율이 낮을 것이라는 전망도 변수다. 조직표가 결선에 진출할 후보를 결정할 열쇠가 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여전히 유력한 후보는 르펜이다.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는 반 난민·반 이슬람 정서의 최대 수혜자로 여론조사에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극우정당 지지자들의 특징인 이른바 숨은 표도 무시할 수없는 강점이다. 트럼프 당선에서 나타난 러스트 벨트(산업쇠락지역) 노동자들의 반란도 플러스요인이다. 최대 약점은 고정된 지지율과 막판 조직표의 부재다.

    마크롱은 르펜과 결선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고 압도적인 당선이 확실한 후보다. 부패스캔들에 휘말린 공화당의 피용에 실망한 지지자들과 르펜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유권자들의 대안으로 급부상하면서 빠르게 르펜과 2파전을 형성했다. 사회당의 아몽 후보에 반대하는 당내 우파들이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프랑스 전후 최초의 ‘무소속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급조된 선거조직인 ‘앙 마르쉐’가 약점이다. 6월에 실시될 총선을 두고 벌써부터 지역조직들에서 잡음이 일어나면서 다국적 조직의 한계가 보이고 있다.

    멜랑숑의 기회는 마지막 TV토론과 조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을 걸어야할 조직은 자신이 속한 좌파당이 아니라 당의 무능력에 반발해 불굴의 프랑스에 참여한 공산당의 지역조직이다. 수많은 부침과 몰락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탈리아 공산당과 함께 합법적인 최대 공산당이었던 프랑스 공산당의 지역조직들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공화당의 아성인 마르세이유를 비롯한 남부지역에서 공산당의 조직은 여전히 유의미한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당의 위성정당으로 전락해버린 당 주류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멜랑숑에게 또 다른 조직적 힘이 되고 있는 곳은 프랑스 녹색당(EELV)이다. 녹색당의 야닉 자도(Yannick Jadot) 후보는 아몽의 선거연대 제안에 후보를 사퇴하고 지지를 선언했다. 그린피스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야닉 자도는 ‘녹색 현실주의자’였고, 당내 생태좌파들은 격렬히 반발하면서 멜랑숑의 불굴의 프랑스에 참여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가까운 그르노블 등의 지역은 녹색당이 강력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르펜과 마크롱의 조직은 취약하다는 것이 멜랑숑의 보이지 않는 득표요인이다.

    6월 총선과 위험한 코아비타시옹

    투표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사회당의 올랑드 대통령도 멜랑숑을 공개적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멜랑숑의 결선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였다. 사회당의 우파들은 대선을 포기하고 이후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5월 결선투표 이후 실시될 국민의회(하원) 선거는 공화당이 제1당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마크롱이 당선된다면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다른 동거정부 (cohabitation)가 탄생하게 된다. 마크롱의 앙 마르쉐가 어느 정도 의석을 차지할 것인지도 변수다. 앙 마르쉐가 마크롱의 당선 여세를 몰아 예상을 넘는 의석을 얻는다면 공화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사회당 우파들이 앙 마르쉐와 연대를 주장하는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다.

    1차 투표에서 50% 이상을 획득하지 못할 경우 상위 2명이 실시하는 결선투표(유권자 12.5% 이상 득표후보 포함)에서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철강산업의 몰락으로 대표적인 러스트 벨트로 전락한 알자스-로렌 지역은 사회당의 텃밭이었지만 지금은 르펜과 멜랑숑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민전선(1석)과 좌파당(3석)이 얼마나 약진할지도 관전포인트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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