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고등학생과
딸의 3년을 생각하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⑭] 살자
    2017년 04월 07일 02: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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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16세에서 18세, 청소년이면서 성인의 문턱이다. 신체는 술·담배를 소화할 만큼 성장한다. 성적 호기심은 극대화된다. 옛날엔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던 연령대다. 힘으로 성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내가 앞으로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를 대할 때, 고려해야 할 첫 번째 지점이다.

지금까지의 특성과 친구 관계를 봤을 때 가능성은 희박하나, 딸은 성인의 신체가 하는 행동을 전부 할 수 있다. 담배 태우고, 몰려다니며 싸움하고, 집 나가고, 깊은 연애를 할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어찌 될 것인가. 할매와 아내는 기겁하고 집안은 바람 잘 날 없을 것이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쓰라릴 것이다. 더구나 딸은 어린 여성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아무리 그런 시절을 보냈다 해도, 내겐 아직도 남성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찌꺼기가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무조건 딸아이 편이 되어야 한다. 딸아이와 술을 마시면서 맞담배 할 것이다. 술을 신나게 마시면서도 덜 망가지는 요령, 때리지 않고서도 상대방 기를 꺾는 기술, 연애하면서 야생마를 휘어잡는 방법 따위를 미주알고주알 조언할 것이다. 세상의 손가락질에 딸이 뿔따구 내면, 그 어른들과 세상은 손가락질 할 주제가 아니니까 전혀 신경 쓰지 말라고 함께 흥분할 것이다. 뒷구멍에서, 아니 대놓고 못된 짓 다 하면서, 성인군자 행세하는 위선적인 어른이고 세상이라고 낱낱이 얘기해 줄 것이다.

단, 나에겐 하나의 전제가 있을 것이다. 뭘 하더라도 다 좋은데, 살아만 있어라,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딸아이 세대는 과학 발달에 힘입어 120살 넘게 살 것이다. 장거리도 보통 장거리가 아니다, 살아만 있다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살아만 다오. 나는 단호하게 주문할 것이다.

고등학생의 정신세계는 아이와 어른의 중간이다. 어떤 어른이 될지 윤곽이 잡히는 단계다. 고등학생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현실적 고민을 시작한다. 본인의 특성, 하고 싶은 일, 세상의 실재 등을 종합하면서 자신의 삶을 구체적으로 고민한다. 내가 염두에 둬야 하는 두 번째 지점이다.

딸은 살고 싶은 삶과 자신의 능력이 맞지 않아 답답해 할 수 있다. 그 삶을 살아갈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울해질 수도 있다. 나는 딸이 꿈을 잘 꿀 수 있도록 조언할 것이다. 제3자 입장에서 딸의 특성을 면밀히 관찰할 것이다. 자신의 특성에 합당한 길을 선택한다면, 그 길이 어떤 길이든 무작정 존중하고 응원할 것이다. 길을 선택하는데 세상과 충돌하는 상황이라면, 그래서 고민한다면, 무조건 그 길을 선택하라 조언할 것이다. 빛나지 않고 가난하게 살더라도 본인 스스로 의미를 찾는 그런 삶을 살라고 조언할 것이다. 딸의 삶은 딸이 사는 것이다.

딸은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다. 다른 나라의 고등학생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다. 대한민국은 예체능을 제외하고, 모든 학생을 입시로만 판단하는 골 때리는 나라다. 오로지 나뿐인 나쁜 경쟁지상주의가 작동한다. 사실은 예체능도 경쟁의 논리에 갇혀 있기는 마찬가지다. 딸아이의 3년에서 내가 주목해야 할 세 번째 지점이다.

대한민국은 차별 왕국이다.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경쟁 사회다. 경제, 정치, 문화, 의료, 교육 등 전 분야에서 지방이 차별받고, 강북이 차별받고, 비정규직이 차별받고, 여성이 차별받고, 장애인이 차별받고, 성소수자가 차별받고, 학력으로 차별받고, 외모로 차별받고, 그러고도 차별받고, 또 차별받는다.

신자유주의라 칭하는 돈놀이 자본주의, 돈 놓고 돈 따먹는 체제가 휩쓸며 뿌리 깊게 고착된 상황이다. 부모 입장에서 어찌 자식 앞날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할 수 있겠나.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속에라도 뛰어든다는 대한민국 부모 아닌가. 대학 간판, 남들 자식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좀 더 그럴싸한 졸업장을 위해서라면 공부 감옥에 가두는 게 뭔 대수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딸을 그렇게 세상에 내보내고 싶지 않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개천에서 용 나는 단계를 훌쩍 넘어섰다. 이미 이 사회는 대학을 나와도 비정규직에 실업자인 시대로 들어섰다. 만약 할매나 아내가 조바심 낸다면 그것은 자신 있다. 설득할 거고, 안 되면 윽박질러서라도 포기하도록 만들 것이다. 굳이 대학에 안 가도 훌륭하게 살아갈 방안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새벽, 거실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딸

새벽, 거실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딸

문제는 딸이다. 딸내미는 일찌감치 대학에 꽂혔다. 입시 경쟁의 틀에 스스로를 가둘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를 어느 정도까지 극단으로 몰아붙일지 불안하다. 나는 예의주시하면서 딸의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최선의 방법은 딸이 이른바 대학 등급에 연연하지 않도록 영향을 미치는 것이리라.

지금의 나는 딸의 고등학교 3년에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5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나의 머리와 가슴에 축적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을 믿지 못한다. 나는 이미 딸아이 교육 앞에서 별 수 없는 속물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더 얼마나 속물근성을 드러낼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내 기준의 중심은 분명하다. 내 심연에서 흐느끼고 있는 절박한 주문이다. 고등학교 3년 전쟁 기간, 어떠해도 다 좋으니, 제발 살아만 있어라. 바로 이 기준을 최우선 가치로 아이와 더불어 입시산을 오를 것이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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