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시
    [시와 삶] 정권이 바뀌고 사는 풍경이 달라져가도
        2017년 03월 30일 03: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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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시

     

    투쟁 시를 참 아름답게 쓰네요

    누군가 말한다

     

    요즘 시는 노동 시 같지 않고 부드러워

    어느 노동자의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문학계 인사가 말한다

     

    모르는 게야

    노동시는 언제나 아름다웠다는 걸

     

    기계를 지키며 파업하는 노동자의 팔뚝이

    거칠기만 할까

     

    동료의 영정을 끌어안은 사내의

    웅크린 등에 떨어지는

    연대의 눈물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진정 모르는 게야

    시를 쓰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 내 마음에 걸어놓은 달이라는 걸

     

    일하지 않는 메마른 노래에

    눈이 먼 눈에는

    보이지 않는 달인 것을

     

    바람이 거세 어지러운 날

    가라앉는 나를 일으켜 주는 건

    걸려 있는 달의 무게라는 걸

     

    별들이 하나씩 터져 나와

    자꾸 빛내는 바람에

    달빛이 아름답다는 것을

    ————————

    <시작노트>

    공장의 모든 샷다를 내리고 기계들 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동조합 결성식을 하고 있었다. 전날의 설렘으로 다들 잠을 설친 얼굴이었지만 비장한 숨소리가 공장과 공단 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꽝꽝! 문을 부수는 소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각목을 들고 문을 사수하던 어린 종태와 창근이는 구사대에게 죽도록 맞으며 밀려났고 전원이 두들겨맞으며 질질 끌려나왔다. 그렇게 노동조합을 세웠건만, 사장이 위장폐업을 하고,117일간 우리는 빈 공장 컨베이어벨트위에서 농성을 했다.

    1987년이었다.

    2017년 3월 도시 여기저기에 당시와 다르지 않은 노동자들의 모습이 있다.

    20년의 세월에 변한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여 노동자를 쓰다가 버릴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고, 손해배상 청구라는 살인적인 방법으로 탄압의 질을 높였다는 것이다.

    구미의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 170명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한꺼번에 그것도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노동조합 만들었다고 공장 문을 부수는 것만 폭력인 것은 아니다. 느닷없는 해고로 생계를 위협받은 이들의 천막인생이 벌써 1년하고도 10개월이 되어간다.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시간이 멈췄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2년을 달렸다.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달려왔다. 후회도 있고 아쉬움도 있지만 우린 작은 역사를 만들어왔다. 투쟁하는 노동자는 소수이고, 무력한 것처럼 보여도 우린 분명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다.” – 구미 아사히글라스해고자 차헌호씨의 글에서

    정권이 바뀌고 사는 풍경이 달라져가도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노동자들의 투쟁 앞에선 시간이 쉬어가는 것인가.

    열병이 난 것처럼 광화문으로 달려갔던 어느 날 이 촛불이 노동자들의 천막에 한 번씩이라도 들러 힘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공상을 해보았다. 놀라운 성과를 가져온 우리들의 발걸음이 부디 더 상처 입은 곳을 찾아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오늘도 거리로 시를 읽으러 간다.

    아사이

    작년 아사히글라스 앞에서의 노동절 집회 모습(사진=뉴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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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노조를 만들었다가 해고를 당하고 이후 민중당에서도 활동했고 지금도 거리의 시인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있는 김홍춘 선생의 시와 시작노트 연재를 정기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관심과 애정 부탁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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