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의 트럼프,
    자유당의 빌더르스 대표
    [유럽 극우파 ⑥] 복지강국에서도
        2017년 03월 28일 11: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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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유럽에서 시작된 극우정당의 약진을 넘어선 돌풍은 독일(AfD)를 거쳐 프랑스(국민전선)까지 넘어오자 좌파정당뿐만 아니라 중도우파정당들도 극우정당들을 저지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4선에 도전하는 기민당의 메르켈총리는 AfD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AfD가 기민당의 지지율을 잠식하자 사민당은 지그마어 가브리엘 당수 겸 총리 후보를 명예롭게 퇴진시키고 마르틴 슐츠 전 유럽의회의장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인기가 없는 가브리엘 대신에 슐츠를 발탁한 것이다.

    슐츠가 총리 후보로 나서면서 주목받은 것은 그의 인생역전 때문이다. 슐츠는 고교 중퇴에 밑바닥을 전전하다 유럽의원과 의장까지 올랐다. 독일 국민들은 이런 슐츠에게 높은 호감도를 가지고 있었다. 승부수는 성공했다. 사민당은 불과 몇 달 만에 기민당을 오차범위까지 따라잡으며 역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슐츠를 앞세운 사민당은 적(사민당)적(좌파당)녹(녹색) 대연정을 꿈꾸고 있다. 이런 급변이 일어난 것은 난민정책으로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이 집권 이후 최저치까지 급락하자 AfD가 기민당에 실망한 중도우파 유권자를 빠르게 흡수한 탓이다.

    4월에 실시될 프랑스 대선에서는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이 1위를 달리고 있다. 15년 전 아버지가 2위로 결선에 오른데 이어 이번에는 딸이 1위로 결선 진출이 유력한 상태다. 현직 대통령인 사회당의 올랑드는 한 자리 숫자의 지지율을 보이자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해야만 했다. 당원들은 예상을 뒤엎고 당내에서 왼쪽에 위치한 베느와 아몽 전 경제장관을 선출했다. 블루칼라 등 정통적 지지자들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 아몽이라는 좌회전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공화당의 경우 사르코지와 쥐페 전 총리의 대결로 점쳐졌지만 예상을 뒤엎고 프랑수아 피용이 선출됐다. 하지만 피용은 후보로 선출된 이후 부인과 자녀를 보좌관에 허위로 등록을 시켜 세비를 횡령했다는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게 되면서 지지율이 3위까지 추락해 결선진출마저 불투명한 상태다.

    르펜의 턱밑까지 추격하며 결선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인물은 무소속으로 출마한 엠마뉘엘 마크롱이다. 마크롱은 집권 사회당의 올랑드 대통령 밑에서 경제장관을 지내며 반(反)노동정책과 복지삭감 정책을 주도해왔다. 분노한 노동자들이 사회당을 이탈하고 당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당원들은 쥐페 전 총리 대신에 올랑드와 대립해왔던 아몽을 후보로 선출했다. 사회당을 탈당한 마크롱은 공화당의 피용이 횡령혐의로 인해 연일 언론의 1면을 장식하는 사이에 2위에 올라선 후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르펜을 앞지르는 발표까지 등장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들라노에 전 파리시장 등 사회당 거물들이 마크롱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면서 사회당은 적전 분열 직전이다. 마크롱이 결선에 오른다면 르펜을 누르고 프랑스 사상 첫 무소속 대통령이 탄생할 전망이다.

    실패로 끝난 자유당(PVV)의 1당 등극

    유럽의 극우정당들은 유럽의회에서 ‘유럽 민족 및 자유’(ENF)라는 정식 교섭단체를 꾸린 후 수천만 유로의 보조금을 활용해 상호 협력해 왔다. 이들은 대선과 총선을 앞둔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독일의 AfD 등 유럽의 극우정당들은 네덜란드의 총선 결과에 주목하고 있었다. 극우정당인 자유당이 집권당인 중도우파 자민당(VVD)에 앞선 채 줄곧 1위를 달리고 있었고, 1당에 오른다면 프랑스 대선과 독일 총선에도 극우의 훈풍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독일과 프랑스에 불어 닥친 극우정당 바람은 북유럽으로 가는 길목인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뒤덮는 데는 실패했다.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되면서 자유당에게 악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대표가 “모로코인들은 쓰레기”라며 이들을 네덜란드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화근이었다. 20여만 명에 이르는 모로코 이민자를 겨냥한 극우 발언은 언론과 유권자들의 역풍을 받았다. 지지율이 치솟고 있는 녹색좌파당의 대표인 예시 클라버가 모로코 2세라는 것도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게다가 빌더르스의 신변 정보가 모로코 범죄조직에 넘겨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위협을 느낀 당의 간판이 공개적인 선거운동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자유당은 모스크(이슬람사원)의 폐쇄와 반 난민을 전면에 내세우며 만회에 나섰지만 지지율은 계속해서 추락했다. 자민당의 뤼테 총리는 난민문제에 우려를 표시하는 동시에 빌더르스의 극단적인 주장을 비판하면서 지지율을 역전시켰다.

    총선 결과 자민당은 상당수 의석이 하락하기는 했지만 150석 중에 33석을 차지해 1당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의석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자유당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20석을 얻으며 2당 자리에 그쳤다. 뒤를 이어 중도우파 정당인 기민당(CDA)와 민주66(D66)가 19석을 얻었다. 녹색좌파당은 4석에서 14석을 얻어 최대 승자로 떠올랐으며, 급진좌파당인 사회당(SP)도 14석을 차지했다. 노동당(PvdA)은 38석에서 9석으로 추락하며 몰락했다. 급진좌파정당의 약진은 30년 만에 최대투표율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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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왼쪽)와 반 유럽연합을 주장하는 지지자

    네덜란드의 트럼프, 헤이르트 빌더르스

    빌더러스는 네덜란드 남동부의 벤로(Venlo)에서 네덜란드 아버지와 인도네시아계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출생으로만 보면 극우주의자로 변신한 것이 의아스럽지만 빌더러스는 젊은 날 몇 년 동안 이스라엘 모샤브에서 일하면서 반 이슬람주의자로 변모했다.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했지만 빌더러스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보험업이었다. 국제보험업에 발군의 실력을 보인 빌더러스는 자민당 당수인 프레데리크 볼케슈타인(Frederik Bolkestein)의 눈에 띄어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보좌관으로 일하는 동안 중동국가들을 순방하면서 반 이슬람주의에 대한 확신은 더욱 커졌다.

    볼케슈타인은 빌더러스에게 반 이슬람주의와 반 유럽연합에 대한 많은 영감을 제공했지만 당수로 있던 8년 동안은 중도좌파 노동당의 세상이었으며 제1야당도 기민당이었다. 당내에는 다양한 세력들이 뒤섞여 있어 선거 때마다 조정하느라 진을 빼는 것이 일과였다. 두 번째 당수임기에도 집권에 실패하자 학자였던 볼케슈타인은 대학으로 돌아가 버렸다. 빌더러스는 고민에 빠져들었고 마침내 탈당해 극우정당인 자유당을 창당했다. 당을 창당했을 때 빌더러스가 가진 것은 의석 하나와 볼케슈타인의 수제자라는 것이 전부였다.

    2006년 중도우파 자민당(VVD)을 탈당한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극우정당 자유당(PVV)를 창당할 때만 하더라도 성공을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사민주의의 본토인 네덜란드에도 극우 바람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동안 대안을 찾지 못한 극우주의자들은 중도우파정당인 자민당이나 기민당에게 표를 던지곤 했다. 그런 틈새를 이용한 자유당의 창당은 적중했다. 자유당은 창당 직후인 2006년에 실시된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9석(5.9%)을 차지하며 연착륙하는데 성공했다. 네덜란드에도 극우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자유당의 성공에 대해 극우 바람보다는 볼케슈타인의 후광에 힘입은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2009년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반 이슬람주의와 반 유럽연합을 전면에 내세우고 제2당에 오르자 우파정당들도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2009년 빌더르스는 반 이슬람주의 색채의 영화 ‘피트나’(Fitna)를 제작해 선전선동의 도구로 사용하는 등 파시스트의 문화정치를 모방하기도 했다. 반 난민, 반 이슬람을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광장에서 극우 목소리를 선동하는 정치를 통해 자유당의 덩치를 키웠다. 이런 자유당의 전략은 기대 이상으로 효과를 발휘했다. 2010년 총선에서는 24석(15.5%)을 얻어 자민당과 연립정부를 수립하자, 모두 자유당의 대약진을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네덜란드는 중도좌파인 노동당(PVDA)이 오랫동안 집권해오는 동안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복지체계와 연금체계를 마련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우파에게 표를 주는 경우는 많지만 극우파에게 이렇게 높은 지지를 보내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유당의 급성장과 복잡해진 연립정부

    2010년 자민당은 기민당, 자유당과 우파 연립정부를 구성했지만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자유당이 반 이슬람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자민당은 난감한 태도를 표시했다. 빌더러스는 멈추지 않았다. 네덜란드에 이주민이 많은 모로코인들 2,3세들의 귀화를 어렵게 만드는 법안을 꺼내들었고 연립정부는 내부에서 자멸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2,3세들이 대규모로 갑자기 아프리카로 추방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불과 4년 만에 친정과 연립정부를 수립하는데 성공했지만 빌더르스의 독단적인 행동이 계속되면서 연립정부는 2년 만에 파국으로 끝났다.

    조기총선에 따라 자민당이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수립하며 재집권했지만 사태는 훨씬 더 악화되었다. 경기침체가 네덜란드에도 불어오자 자민당은 대규모 긴축재정과 복지예산을 전면적으로 후퇴시켰다. 실업률을 줄이고 성장을 늘리려는 고육책이었지만 이 때문에 자민당의 지지율은 반 토막이 났고, 노동당은 1/3까지 지지율이 추락했다. 분노한 유권자들은 자유당으로 몰려들면서 지지율이 급성장한 것이다.

    자민당은 1당을 유지하는데 성공했지만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과반수(76석) 의석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우선 선거기간 동안에 자유당과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이 때문에 기민당과 민주66만으로는 과반수에 모자라는데다 노동당을 포함할 경우 정부 구성은 가능하지만 안정적인 의석이 아니라는 것이 약점이다. 노동당 대신에 녹색좌파당을 포함하는 연정을 구성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녹색좌파당의 예시 클라버 대표도 연정에 참여할 의사를 내비치고는 있지만, 자민당이 내어줄 대가가 관건이다.

    네덜란드 좌파는 지금

    총선 결과 결승선을 앞두고 주저앉은 자유당이 패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1당을 차지해 정부 구성 우선권을 쥔 자민당도 의석수가 줄어들면서 승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자민당이 그나마 선전한 것은 자유당의 빌더르스가 자멸한 것도 한몫을 했기 때문이다. 최대 승자는 4석에서 14석으로 급등한 녹색좌파당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녹색좌파당의 성공은 메시아에 빗대 ‘예시아’라고 불리는 31세의 예시 클라버 대표의 인기가 크게 작용하면서 좌파 성향의 표가 결집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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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 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예시 클라버 녹색좌파당 대표

    녹색좌파당은 20년 전 소규모 생태사회주의와 급진좌파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초창기에는 녹색과 좌파가 하나의 당 안에 모여 있는 탓에 연방주의적인데다 활동가들의 개성들이 강했다. 총선과 같은 전국 선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사분란하지 못한 약점이 노출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에 뿌리내리는 강점을 보여주었다. 한때 10석이 넘는 의석을 보유하기도 했었지만, 전국적으로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있는 급진좌파정당인 사회당(SP)의 존재가 당이 성장하는데 하나의 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20년이 지나면서 당을 대표할 새로운 간판이 부재하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예시 클라버는 10대에 당의 청년조직에 참여해 두각을 나타냈고,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당 지도부에 진입했다. 20대 후반에 대표를 맡으며 당을 새롭게 도약시켰다.

    네덜란드의 주요 집권정당은 중도좌파 정당인 노동당(PVDA)이었다. 8~90년대 집권하는 동안 복지국가의 기반을 만드는데 기여했지만 이후 점점 우경화하여 노동자들의 지지기반을 상실하였다. 2012년에는 중도우파인 자민당 연립정부에 참여해 복지 후퇴와 긴축재정의 파트너로 전락하였다. 이번 총선에는 30%에 이르던 암스테르담 등 대도시의 지지율이 한자리 숫자로 추락해 재기마저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역기반이 탄탄한 급진좌파당인 사회당은 안정적인 의석(14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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