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탈핵’ 대통령?
[에정칼럼] 진짜와 가짜 구별 방법
    2017년 03월 15일 12: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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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6주기인 지난 11일 전국에서 ‘탈핵’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매년 열리는 행사임에도 올해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기대는 여느 때와는 달라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된 다음 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 후보자 중에서 유일하게 집회에 참석한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2040년 탈핵 공약을 최근 발표했고, 주요 대선주자들도 탈핵 ‘비슷한’ 공약을 내놓고 있는 것도 시민들의 기대를 높였을 것이다. “탄핵 다음엔 탈핵”이라는 구호가 행진 내내 이어졌다.

후쿠시마

그러나 핵발전소 관련 공약들이 ‘진짜’ 탈핵 공약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탈핵이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는 않지만, 핵에너지로부터 벗어난 에너지 시스템을 의미한다면, 그 시점과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는지 여부가 진짜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점이 현재에서 너무 먼 미래이거나 이를 위해 필요한 정책 및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공약(空約)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 일정이 5월 초로 예상되는 가운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차기 대권 주자들이 탈핵 관련 공약들을 제시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는 한편 ‘탈원전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신규 원전 건설을 전면 중단하고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40년 후(2057년?) 원전 제로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신고리 5,6호기 건설과 노후 원전 가동을 재검토해 원전, 석탄화력 중심의 전력수급 방식을 재조정하겠다는 입장이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시점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원전 제로화를 선언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추가 원전 건설 재검토 입장을,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기존 원전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는 모든 원내 정당 대선 후보들이 핵발전소 추가 건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라 할 수 있다.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새누리당을 제외한 각 정당은 2030년에서 2060년까지 다양한 시점의 탈핵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림 1>과 같다.

2015년 기준 핵발전소 발전설비는 21,716MW이다(2016년 12월 20일 신고리 3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하면서 23,116MW로 증가했다). 전력을 생산하는 전체 발전설비 중 21.4%를 차지한다. 핵발전소는 1978년 고리1호기가 처음 가동을 시작한 이래로 발전설비가 줄어든 적은 없다. 2015년 핵발전소 전력 발전량은 164,762GWh로, 전제 전력 발전량 중 30%다. 각종 사고·고장 및 불량 부품비리로 일부 원전을 잠시 가동 중단했던 2013년에 발전량이 하락했지만 2014년부터는 다시 상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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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핵발전소 발전설비 용량과 발전량 추이(출처: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

이제는 탈핵으로 가기 위한 로드맵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8차 전력기본계획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언급하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 건설 중인 원전과 건설 계획 중인 원전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꼼꼼히 따져야 ‘진짜’ 탈핵을 말하는 후보가 보일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심상정 후보가 유일해 보인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력계획’)은 전력수급 안정을 위하여 「전기사업법」 제25조 및 시행령 15조에 따라 2년마다 15년을 계획기간으로 수립·시행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5년 7월 제7차 전력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으며, 2017년 말까지 제8차 전력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전력계획의 주요 내용은 전력수급의 장기전망, 발전설비 및 주요 송변전설비계획에 관한 사항, 전력수요의 관리에 관한 사항 등이다. 이처럼 국가 전력수급의 전반을 다루는 만큼 전력계획에 따라 탈핵으로 가는 길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제7차 전력계획의 에너지원별 발전 설비 계획

<표 1> 제7차 전력계획의 에너지원별 발전 설비 계획

제7차 전력계획에서 원전 설비용량은 2029년에 38,329MW로 증가한다. 2015년에 비해 16,613MW 증가하는 것으로 핵발전소 11기가 추가로 건설되는 계획이다. 이대로라면 탈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탈핵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으려면, 제8차 전력계획에 탈핵 로드맵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또 다른 계획도 살펴야 한다. 바로 전력계획의 상위 계획인 에너지기본계획(이하 ‘에너지계획’)이다. 에너지계획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41조와 「에너지법」 제10조제1항에 따라 20년을 계획기간으로 5년마다 수립 시행된다. 2014년에 수립된 제2차 에너지계획에서 원전 비중은 2035년 전체 발전설비용량의 29%인 42,705MW로 계획돼 있다. 2015년 설비용량 대비 20,989MW로, 2배 가까이 증가한다. 제7차 전력계획보다 원전 3기가 추가로 건설되는 것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탈핵은 더욱 더 불가능하다. 탈핵로드맵이 에너지기본계획에도 반영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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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2035년 핵발전소 설비용량과 비중(출처: 산업통상자원부(2014))

이제는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감축도 고려해야 하고, 거의 모든 대선 후보들이 이야기하는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 정책도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 기후정책을 평가·분석하는 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CAT)은 한국의 기후변화대응 등급을 ‘불충분’으로 평가하면서 대부분의 나라가 한국처럼 행동할 경우 지구 기온 상승폭은 섭씨 3~4도를 초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이 유엔에 제출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반영한 결과다. 한국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30년 기준전망(BAU)대비 37%로 결정했고, 이 중 25.7%는 국내 감축 수단을 통해 달성하고, 11.3%는 국제시장을 활용해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의 2015년 총발전량 대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1.5%로, OECD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아이슬란드(100%), 노르웨이(97.9%), 뉴질랜드(80.1%), 오스트리아(77.7%), 캐나다(65.6%), 스위스(64.2%), 덴마크(63.2%), 스웨덴(63%), 포르투갈(47.8%), 핀란드(44%), 칠레(41.5%) 등 재생에너지원이 풍부한 국가들은 물론, 이탈리아(39.9%), 스페인(35.6%), 독일(31.5%), 영국(25.8%), 일본(16.9%), 프랑스(16.2%), 호주(13.7%), 미국(13.3%) 등 주요 선진국에도 크게 못 미친다.

7차 전력계획 수립과정에서는 수요예측과 전력소비량의 오차, 이에 따른 공급설비 규모의 적절성, 온실가스 감축과 핵발전의 수용성 등을 포괄하는 전원구성 문제, 송전망 건설의 불확실성 등 전력계획과 관련된 다양한 쟁점들이 제기됐다. 최근 들어 미세먼지로 대표되는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 높아졌다. 이제는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 원자력발전의 위험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전력계획이 필요하다.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가 단계적으로 폐쇄되고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될 에너지다소비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고려도 필수적이다. 녹색경제로의 산업개편 과정에 정의로운 전환 프로그램이 도입되어야 한다. 에너지다소비산업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녹색산업으로 일자리 전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해당 지역 공동체의 사회적 지원을 위한 재원도 확보해야 한다.

전 세계적인 저성장 시대가 현실이 되었고, 한국 경제는 대내외적인 악조건 속에 직면해 있다. 핵발전소와 기후변화 등에 따른 전 지구적인 에너지·기후 위기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탄핵 이후의 탈핵 대통령은 이 모든 가능성을 감안한 비전을 제시하고 실행해야 하는 ‘소명’을 부여받았다. 부디 이 소명을 끝까지 다하는 대통령이 당선되길 바란다.

탈핵 공약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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