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징그럽고 더럽고 매력적인
    [그림책 이야기] 『머릿니』 (엘리즈 그라벨 지음 / 씨드북)
        2017년 02월 02일 10: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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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징그럽고 더럽고 매력적인 지식 그림책

    아주 오랜만에 매력적인 지식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사실 저는 지식 그림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지식을 전달하려는 목적을 지닌 그림책은 교훈을 전달할 목적을 지닌 그림책만큼이나 따분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 ‘미친’ 전달력을 지닌 그림책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소개하는 『머릿니』는 정말 ‘더럽게’ 매력적인 그림책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이 세상에 ‘머릿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사실 저는 ‘머릿니’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머릿니’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이 근질근질 합니다. ‘머릿니’라는 단어조차 싫습니다. 그런데 왜 작가 엘리즈 그라벨은 이런 그림책을 만들었을까요?

    머릿니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머릿니

    놀랍게도 작가인 엘리즈 그라벨은 어릴 때부터 머릿니처럼 작은 동물들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머릿니에 관한 책을 쓰는 작가가 된 것이죠!

    책을 펼치면 왼쪽 페이지에서 작가 엘리즈 그라벨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자 인간들의 친구인 ‘머릿니’를 소개합니다. 오른쪽 페이지에서는 아주 커다랗게 확대되고 빨간 얼굴을 지닌 머릿니가 ‘안녕?’하고 독자 여러분에게 인사를 합니다. 마치 성우인 작가와 개그맨인 머릿니가 무대 위에서 스탠딩 개그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정보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머릿니는 몸집이 아주 작아요. 다리가 6개여서 곤충이라고 하지요.’ 이렇게 작가가 정보를 주는 순간, 머릿니가 ‘내가 설마 과일로 보이진 않겠지?’라고 말대꾸를 합니다.

    또 작가가 ‘머릿니의 몸길이는 2밀리미터예요. 깨알보다 작지요.’라고 하면, 머릿니가 ‘작다고 우습게보지 마. 너희들 엄마 아빠가 사자보다 무서워하는 게 바로 나라고!’라고 받아치지요. 이 장면의 그림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겨봅니다.

    머릿니에 관한 놀라운 지식들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머릿니에 대해 잘 모를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머릿니를 상상조차 하기 싫을 테니까요! 유레카! 그렇습니다. 우리는 머릿니를 싫어하니까 머릿니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즈 그라벨은 이렇게 작고 징그러운 동물들을 좋아했습니다. 좋아하니까 관찰하고 좋아하니까 정보를 수집한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머릿니에 관한 놀라운 지식들을 전해 줍니다. 예컨대 머릿니는 몸이 반투명해서 내장까지 다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다리가 너무 짧아서 뛰어다니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물론 여전히 대부분의 독자들은 머릿니에 관한 이런 지식들을 별로 알고 싶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식의 대상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 대상에 관한 지식을 모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머릿니에 관한 지식을 모아놓은 이 그림책을 우리가 계속 읽게 된다는 것입니다.

    머릿니에 관한, 가장 충격적인 사실

    더불어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싶지 않았던, 머릿니에 관한 충격적인 사실들을 알려줍니다. 우선 머릿니는 인간의 머리에서 인간의 피만 먹고 삽니다. 다른 동물에게는 머릿니가 없다는 것이지요. 세상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머릿니는 우리가 잘 안 씻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머릿니를 지닌 사람에게서 옮겨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보고 알게 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머릿니가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쓸모없는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그저 작가의 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이 세상에 아무런 쓸모도 없는 존재가 있을까요?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머릿니의 추억

    저도 어릴 때 학교에서 머릿니를 옮아온 일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제 머리에서 머릿니를 보더니 당신의 참빗으로 빡빡 빗어서 머릿니를 다 잡아내고, 뜨거운 물로 제 머리를 감겨 주었습니다. 할머니 덕분에 저는 아주 손쉽게 머릿니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머릿니는 제게 아주 쓸모 있는 동물이었습니다. 할머니와 저 사이에 아주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아마도 할머니의 참빗으로 제 머리를 빗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그날 이후 저는 할머니가 참빗으로 당신의 머리를 빗고 말아 올리고 비녀로 쪽을 짓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지식보다 질문을 더 많이 주는 지식 그림책

    머릿니가 인간의 머리에서 인간의 피만 하루에 다섯 번씩 먹고 사는 존재라는데, 의학과 과학이 이렇게 발달한 21세기에도 왜 머릿니는 사라지지 않을까요? 또한 자연은 왜 인류에게 이런 흡혈벌레를 만들어 주었을까요? 이 책은 독자들에게 지식보다 질문을 더 많이 선물합니다.

    무엇보다 싫으면 알고 싶지 않고, 좋아하면 더 알고 싶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미워하기 때문에 더욱 알 수 없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오늘도 사랑에 희망을 겁니다.

    필자소개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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