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살아남았다"
    설 명절 앞둔 집배노동자의 현실
    매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꼽히는 우정사업본부
        2017년 01월 26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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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특별소통기’라 불리는 명절이 다가오면 하루 업무를 마친 집배노동자들은 “오늘도 살아남았다”고 안도한다. ‘죽음을 각오한 노동’, 집배노동자들의 사고는 매순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8일엔 34살의 젊은 집배노동자가 사망했다. 1톤 트럭에 부딪혀 즉시 병원에 이송됐지만 이틀 만에 숨을 거뒀다. 그가 사고를 당한 날은 배송 물량이 급격히 집중되는 설날 특별소통기가 시작된 주였다. 그 보다 앞서 지난해 12월 31일, 또 다른 집배노동자는 택배를 배달하던 중 빌라 건물에서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그가 사망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2014년 부활한 토요택배제로 인한 과노동이 사망의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매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뽑힌다. 2015년 산재사망대책 마련 공동캠페인단 등에 선정한 ‘최악의 살인기업’에도 우정사업본부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등 건설사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시민이 뽑은 살인기업엔 2위에 선정됐다. 10위권 내에는 노동현장의 특성상 비교적 위험한 업무가 많아 산재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 건설사나 중공업을 제외하면 우정사업본부가 유일하다.

    일반적으로 집배노동 자체를 위험한 업무라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지난 3년간(2011~2013) 우정사업본부에서 드러난 것만 19명의 집배노동자가 사망했다. 이는 전체 노동자 평균의 6배 이상 높은 사망률이다. 같은 기간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한 집배노동자는 1,182명이나 된다. 이 또한 평균 보다 4.3배나 더 많은 재해율이다. 그러나 이 필연적인 ‘죽음의 통계’를 다시 쓸 방안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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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명절 특별소통기 때의 우편물 분류작업 모습(우정사업본부 블로그)

    업무량 폭발하는 명절 특별소통기
    “점심은 거르기 일쑤, 밤 12시까지 야근, 일요일도 못 쉬어”

    명절 연휴를 기준으로 전후 일주일, 2주 정도를 특별소통기라고 한다. 이 시기 집배노동자들은 그나마 하루 쉬던 일요일도 반납해야 한다.

    새벽 6시에 출근해 택배 물품을 구역별로 분류하고 각자 자기 차에 실어 배송준비를 마쳐야 하는 시간이 오전 9시. 이 때부터 시작된 배송은 꼬박 오후 9시까지 이어진다. 평소에도 빵으로 대충 때우던 점심, 저녁 끼니는 특별소통기가 되면 아예 먹지도 못한다. 집배노동자들은 “급하게 먹어 체하느니 안 먹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쫄쫄 굶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 정도로 빡빡하게 배송을 하고도 사무실로 복귀해 전산작업을 해야 한다. 다음날 업무 준비까지 하면 밤 12시나 돼야 퇴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업무량을 감당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해진 날짜 내에 물량을 배송하지 못하면 민원이 들어온다. 잦은 민원은 인사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2013년 12월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표한 ‘집배원노동자의 노동재해·직업병 실태 및 건강권 확보방안’에 따르면, 집배원노동자는 연평균 노동시간은 3,379시간으로 전체 노동자의 평균노동시간에 비해 1,100~1,200시간 이상 많은 초장시간노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기에는 하루 15.3시간에 이르는 장시간노동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별소통기간엔 그나마 하루 쉬던 일요일도 반납한다. 배송일이 자유로운 일반우편을 처리해야 해서다.

    고지서 등을 휴대폰이나 전자우편으로 받아보면서 우편 배송량이 줄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우편물의 양은 줄었지만 대신 1, 2인 가구가 대폭 증가하면서 세대 수도 그만큼 늘었다. 집배노동자 입장에선 과거에 한 가구에 여러 개의 우편물을 한꺼 번 전달했다면 지금은 소량의 우편물은 여러 세대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시간은 오히려 더 늘고 있는 형편이다.

    업무량이 폭증하는 특별소통기엔 어쩔 수 없이 대체인력이 투입된다. 이번 설 성수기엔 지난해보다 물량도 13%나 더 늘었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설 성수기보다 고작 200여명 정도 증원한 2400여명만 배치할 계획이다. 집배노조는 “우정사업본부의 완벽한 배달체계에 집배원의 안전배달이라는 요소는 전혀 검토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체인력의 비효율성도 지적된다. 허소연 집배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선전국장은 “계속 집배 일을 해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하고 기존에 현장 노동자들은 더 신경 쓸 게 많아진다. 그래도 현장에선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보니 그런 대체인력이라도 와주는 게 감사하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우정사업본부, 공공기관이 적자 탓하며 인력감축

    상황이 이렇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인력충원에 소극적이다. 적자 때문이다. 오히려 정원 자체를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인력감축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아 갑작스러운 인력감축에 나서진 못하지만 정년을 채운 노동자들이 퇴직을 해도 신입직원을 뽑지 않는 방식으로 서서히 정원을 축소하고 있다.

    허소연 국장은 “집배노동자는 워낙 평균 연령이 높다. 신입직원을 뽑지 않기 때문”이라며 “만약 2명의 노동자가 명예·정년퇴직을 하면 본래 40명이던 정원을 38명으로 줄이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이런 상황이고 지방으로 갈수록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업무는 많은데 일손이 부족하니 우정사업본부는 정규직 충원 대신 비정규직이나 재택위탁 집배원의 규모를 늘려나가고 있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는 오는 2020년까지 비정규직·재택위탁 집배노동자의 규모를 5~6배가량 늘릴 계획이다.

    우정사업본부는 매년 노동시간이 줄고 있다는 이유로 집배 노동자 인력 감축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2016년 우정사업본부 ‘집배원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개선방향’에 따르면, 집배인원은 2011년에 18,189명에서 15년 18,561명으로 372명 증가했고, 초과근무는 1인당 연평균 2011년도에 762시간 대비 2015년에 528시간으로 30.7%가 줄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2016년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발표한 ‘집배원 노동자의 초장시간노동 실태와 무료노동시간 분석결과 발표’ 자료에 따르며 최근 비용절감을 위한 시간선택제 유연근무제가 도입되면서 무료노동이 비일비재하다. 회사가 집배원이 처리할 하루 업무량을 비교한 적정 업무시간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짧은 업무시간을 정해놓고 턱없이 많은 업무를 지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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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근무 폐지와 장시간 중노동 철폐를 요구하는 집배노동자 집회 모습

    토요택배제의 부활
    죽음의 문턱에 선 집배노동자는 안중에 없는 우정노조

    주5일제 근무가 시작되고 10년만이었다. 2014년 어렵게 폐지시킨 토요택배제가 1년 만에 부활했다. 한국노총 우정노조와 우정사업본부의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 노사는 ‘국민불편’과 ‘적자해소’를 이유로 들었다. 당시 조합원 70%가 반대했지만 우정노조는 다 같이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기어코 토요택배제를 부활시켰다. 노조는 회사에 토요택배제 부활을 ‘주고’ 인력충원, 토요근무 휴일수당 지급을 ‘받는’ 합의를 했지만 토요택배제가 다시 시행된 것 외엔 제대로 지켜진 게 없다는 것이 집배노조의 지적이다.

    허소연 국장은 “우정노조가 합의 사항에 대해서 회사가 이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토요택배를 하다가 돌아가신 분도 생기고, 5명이 과로로 길에서 쓰러져서 죽었다. 그러나 우정노조는 (노동시간 증가에 대한) 성명서를 내는 것 외엔 합의 이행을 위한 실천은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토요택배를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적자해소였는데 토요택배가 부활하고 2년 동안 적자는 나아지지 않았다. 문제에 대한 해결을 잘못 짚은 것”이라며 “집배노조는 토요택배의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적자는 필연적이다. 더 많은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이 아닌, 국민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지어 노조가 적자를 운운하며 노동시간을 늘이는 합의를 한 것이다. 집배노동자의 ‘죽음의 통계’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우정본부의 적자는 상당 부분 부풀려 있고, 그 원인도 다른 곳에 있다는 게 집배노조의 지적이다. 허소연 국장은 “우편사업만 가지고 낸 적자폭은 일정한 반면 우정본부 내 외주용역비가 과도하게 책정을 된 것으로 인한 적자 폭은 굉장히 높아졌다”며 “결국 방만한 운영이 적자의 원인임에도 그 책임은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집배노동자 안전 고려하지 않은 값싼 이륜차
    낡은 안전장비, 허울뿐인 안전교육

    집배노동자의 이륜차에서 불이 났다. 연쇄적으로 일어난 이륜차 화재 사고였다. 입찰을 통해 가장 값싼 이륜차로 바꾼 후 벌어진 일이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우정본부는 이전에 계약을 맺던 회사의 이륜차로 바꿨다. 우정사업본부가 노동자 안전 문제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허소연 국장은 “우정본부가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해 조금만 고민하면 해결책이 나오는 문제”라며 “예컨대 일본은 삼륜차를 이용하는데 아무래도 이륜차보단 사고위험이 적다. 특히 현장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해서 노사합의를 통해 직접 공장에 주문제작을 한다”고 전했다.

    반면 “우정본부는 1년에 2번 씩 공개입찰을 하는데 가장 가격이 싼 곳의 이륜차를 낙찰한다. 당연히 집배 업무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이륜차이기 때문에 사고가 많이 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업무량이 많아 바쁘다보니 안전장비를 챙기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결국 인력을 충원해 일손을 더는 것만이 사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본 대책임에도 회사는 “안전모를 세게 묶어서 써라”와 같은 안전교육을 한다.

    허 국장은 “가장 중요한 건 인력이 부족이다. 시간에 쫓겨서 일하다보니 신호도 어기게 되고 시간이 많으면 안전장비 같은 것들도 꼼꼼하게 챙길 텐데 대충 나가게 된다”며 “그런데도 회사는 사고가 나면 아침 시간에 바쁜 집배노동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사고사진을 보여주거나 안전모 쓰는 법과 같은 안전교육이나 강연을 한다. 정작 안전모는 낡고 오래돼서 끈이 떨어지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다쳐서, 과로로 죽었는데 그런 교육을 한다는 건 죽은 이유를 결국 스스로 안전을 챙기지 못한 노동자 개인의 탓으로 몰고 가는 것 아닌가”라며 “회사의 그런 태도가 우정본부를 최악의 산재기업으로 뽑힐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라며 덧붙였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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