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의 '정치철학, 국가론'
    [책]『정치신학논고』(김명석/레디앙)
        2017년 01월 21일 08: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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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핵심 사상은 자유 평등 평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입에 올린다. 전 세계적으로 매주 20억여 명이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하고 찬송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예수의 생각과 사상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설교하는 사람들은 절반에 못 미치는 시간만 신약성경을 다루고, 4대 복음서에 대한 이야기는 그 절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설령 예수 이야기를 하더라도 예수의 행적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며, 행적 이야기를 할 때도 주로 부활, 승천, 기적을 이야기한다. 예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예수의 생각, 사상을 다루지 않는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의 행태, 교회의 행태 등을 비판한다. 사람들은 의외로 예수의 생각, 사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치신학논고』에서 중심적으로 풀어내는 주제는 예수의 생각과 사상이다. 저자는 이 책을 ‘기독교 교리가 아니라 예수의 생각과 사상에 초점을 둔 예수 에세이’라고 말한다. 저자인 김명석 교수는 물리학을 공부했으며, 언어철학과 심리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물리학, 수학, 철학을 공부한 저자가 어려서부터 집중해 온 또 다른 공부가 ‘예수 공부’였다. 신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의 눈과 입으로 예수를 보고, 예수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독특한 특징이자 매력이다. 저자는 말한다.

    “철학자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예수보다 나은 이로서 짜라투스트라를 선보이고 싶었지만, 그는 예수가 무엇을 말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전’을 쓴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기독교 교리를 체계화한 많은 조직 신학자들도, 예수의 핵심 사상을 드러내는 데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하느님이 예수를 통해 자신을 직접 드러내었다고 믿었던 라이프니츠나 스피노자 같은 철학자도 예수의 생각을 지성의 눈으로 풀이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일을 하고자 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반그리스도인이든, 예수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는 모든 이들에게 예수 생각의 핵심을 알려줄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예수의 생각과 사상은 무엇일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진보를 이룩했던” 예수의 사상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는 물질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아주 빨간 사상을 가졌다. 예수는 가장 평등하고, 가장 평화롭고, 가장 자유로운 국가의 이념을 이야기했다. 그는 마음의 힘을 믿으면서 여전히 빨갱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었다. 어쩌면 예수야말로 진정한 빨갱이의 길을 보여 준 것인지 모른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난폭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화해하고 포용하는 ‘빨갱이’가 돼야 하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예수가 걸었던 길에 비하면 사람들은 아직 빨갛지 않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아직 말뿐이고 게으로고 치열하지 못하다. 우리는 더 빨개져야 한다.”

    정치신학논고

    예수, 신학의 이름으로 ‘정치철학, 국가론’ 밝힌 것

    저자는 예수가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를 ‘낮은 사람들을 위한 기쁜 소식(복음)’을 전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부분(마태복음 11장 5절)에 주목한다. 이는 예수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4대 공관 복음서 문헌 분석을 통해 낮은 사람을 위한 기쁜 소식이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의미한다는 점을 밝혀내면서 하나님 나라의 의미가 무엇인지 면밀하게 설명한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한 것은 곧 하나님의 정치와 하나님의 정의를 이야기한 것이다. …… 하나님의 정치란 가장 탁월한 정치이다. 하나님의 정의란 가장 합당한 정의다. 예수는 신학의 이름으로 정치철학 또는 국가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의 메시지를 논문 형태로 발표한다면 그것은 <정치신학논고>가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예수가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기쁜 소식은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고, 이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관한 기쁜 소식’인데, 하나님의 다스림은 ‘탁월한 정치’와 ‘합당한 정의’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예수의 정치철학이자 국가론이라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는 예수가 전한 기쁜 소식은 가난하고 억눌린 낮은 사람들, 낮은 계급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가난하고, 억눌리고, 핍박받는 ‘낮은 사람’들이 기뻐할 하나님의 탁월한 정치와 합당한 정의는 어디 있나? 지금 이 세상에 그런 것이 있나? 이 책은 ‘이미 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예수의 기쁜 소식이 ‘뉘우치고 믿으면 천당 간다’는 말도,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협박도 아니며,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예수가 다시 오는 것(재림)을 고대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예수, 하나님 나라의 행정 수반”

    ‘보잘것없는 식민지 팔레스타인의 촌뜨기 청년’인 예수는 자신이 이 땅에 옴으로써,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의 시대는 끝이 났으며, 사랑과 해방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종교 의식에 참가해야 했으며, 관례와 규칙을 지키고 미래에 나타날 날들을 기다려야 했고, 복종과 헌신과 의무를 먼저 요구하던’ 율법과 예언자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기쁜 소식(복음)의 새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 위해, 구원 받기 위해, 해방되기 위해,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율법에 의존할 필요가 없고, 해방의 힘이 지금 작동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예수는 바로 해방의 힘이 미치고 있는 나라, ‘탁월한 정치와 합당한 정의’가 이뤄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행정 수반이다. 예수는 지금도 행정 수반으로서 억눌린 이들을 위해 ‘인질 구출 작전’, ‘포로 석방 작전’을 진행 중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수는 주로 세리, 불가촉천민, 창녀 등 당시 사회에서 죄인으로 취급받던 사람들과 함께 했다. 하지만 이들이 죄인이 된 것은 스스로 죄를 범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율법에 따라 죄인이 된 것일 뿐이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농민과 노동자들 가운데 십일조를 내지 않는 사람들도 죄인으로 간주됐는데, 당시 보통 농민과 노동자들이 내야 하는 세금과 헌금은 수입의 35%에 이르렀다. 지금처럼 각종 감면 제도도 없고 사회복지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35%는 매우 높은 세율이었다.

    결국 죄인은 법을 어긴 자들이라기보다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의 권력구조와 율법이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예수는 이들을 범인으로 만든 율법주의자들이나 율법적 세계관에 파산을 선고하고 이들과 한 편에 서기를 선언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되는 셈이다.

    기독교계 일각에서는 자본주의, 특히 초국적 대형 자본들이 세계경제를 좌지우지 하면서 국가 간, 기업 간, 노동자 간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현대판 21세기 노예 계급인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는 점에 대해 비판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 당대의 죄인, 사회 구조적 약자 편에 서서 싸운 예수,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한 예수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인 셈이다.

    “죄인들과 같이 밥을 먹는 일은 사람의 본모습에서 멀어진 이들을 찾아 위로하는 그 나라의 행정 활동이다. 이런 활동이 지금 이 땅에서 예수를 토해 강력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지금 이 땅에 펼쳐지고 있다.” – 본문 중에서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오냐고?”

    하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 당시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었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같은 질문을 하고 싶을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라고. 이미 그 나라가 와 있다고? 그렇다면 그건 어디지?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언제 어디에 오는지에 관한 통상의 시간 예측과 장소 추측을 반대하면서 그 나라에 관한 매우 놀랄 만한 주장을 한다. 하나님 나라는 ‘그대 안에’ 있다! … (문헌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대 안에’는 ‘그대의 선택 범위 안에’ 또는 ‘그대가 가닿을 수 있는 곳에’를 뜻한다.

    가장 정의로운 나라 곧 하나님 나라는 언제 올지 모를 아주 먼 미래에 실현되는 다스림이 아니다. 그 나라는 가닿을 수 없을 만큼 저 밖에 멀리 놓여 있는 다스림이 아니다. 그 나라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가닿을 수 있는 곳에 지금 와 있다. 그 나라는 손닿을 만한 곳에 있으며 지금 우리의 선택 범위 안에 있다.”

    생각, 사상, 신앙은 실천과 연결되지 않을 때 의미가 반감된다. 저자가 이 책에서 풀어내고 있는 예수의 생각과 사상도 우리에게 실천을 주문하고 있다.

    “이토록 우리 곁에 가까이 온 가장 정의로운 정치를 지금 알아차리고 그 다스림을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 … 그 길은 예수가 억눌리고 가난하고 흠 많은 사람들과 어깨를 기대고 오울릴 때, 그 일을 조롱하지 않고 함께 웃고 기뻐하고 박수치는 것이다. … 그 다스림의 영역에 들어갈지 말지는 당신의 선택 범위 안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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