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감옥에 갇히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⑤] 할매
        2017년 01월 19일 02: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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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바보 입시산 동행기-4 ‘딸, 중학교를 졸업하다’ 링크

    병실에 들어섰다. 밤 9시 조금 넘어서였다. 할매는 대보름 음식을 잘못 먹고 탈이 나는 바람에 대장 일부를 잘라냈다. 틀니가 없는 상태에서 억센 보름나물을 똑바로 씹지 못하고 과하게 먹은 까닭이었다.

    할매는 나물에 사족을 못 쓰는 체질이었다. 정월 대보름이었던 2월 24일 밤에 입원하고 다음날에 수술 받았다. 오늘로 8일째였다. 의사는 며칠만 더 있다가 퇴원하라 했다. 도착한 병실엔 딸아이가 있었다. 가족이 번갈아 간호했는데, 기특하게도 어린 딸은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아이는 할머니 말벗을 하며 잔심부름을 했다.

    할매는 나를 보자마자 꾸중했다. 아이는 할매를 말렸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나는 멋쩍게 웃으며 못 들은 척했다.

    나는 동생과 교대로 밤을 지키기로 되어 있었다. 한데 몇 번이나 술 취해 갔고, 가자마자 간이침대에 곯아떨어지기도 했다. 그 탓에 엊그제는 할매가 단단히 뿔났다. 꼴 보기 싫으니 다신 오지 말라 했다. 노가다 하는 동생은 고되게 일하고서도 밤새워 간호하는데, 장남이란 놈은 코골며 잠만 잔다고 나무랐다.

    할매 역정에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아니었다. 나더러 거듭 가 버리라 했고, 표정에도 노한 기색이 역력했다. 병실의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은 숨죽였다. 나는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찍소리 못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스럽긴 했다.

    그랬던 엊그제에 비해 말투는 많이 누그러졌으나, 잔소리는 똑같았다. 서운한 감정이 채 풀리지 않은 거였다.

    “수술하러 들어가기 전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손녀만 생각났다. 저거 두고 죽으면 어쩌나 해서 얼마나 슬프고 겁이 나던지…….”

    나는 뭉클했다.

    “병원에는 누리만 있으면 되니까 아무도 안 와도 돼. 아이고, 내 손녀 이리 와. 한 번 안아 보게.”

    아이는 침대 옆으로 바싹 붙었다. 할매와 아이는 얼싸안았다.

    “나는 우리 누리밖에 없어. 사랑해.”

    “나도 할머니 사랑해.”

    한1

    수술하러 들어가면서 손녀만 생각했다는 할매의 눈길이 참으로 애잔하다

    할매 잔소리가 잦아들고서야 딸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3월 4일, 오늘은 딸의 고등학교 입학 날이었다. 나는 가지 않았다. 딸이 마다했고, 나 또한 고등학교 입학식까지 따라갈 필요가 있나 싶었고, ‘민족 지도자 장준하 선생 겨레장’ 준비회의가 있기도 했다.

    장준하 선생은 독립운동을 했고, 해방 직후엔 김구 선생 비서였다. 박정희 유신체제에선 민주화운동을 했고, 1975년 포천 약사계곡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발견됐다. 박정희가 죽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로부터 37년이 흐른 작년에 폭우로 묘소 석축이 붕괴됐고, 이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부 타격에 의한 두개골 함몰이 발견됐다. 죽음의 진상을 밝히자는 여론이 일면서 암살 의혹 규명 국민대책위가 구성됐다. 여전히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선생을 이제 그만 편히 모셨으면 좋겠다는 유족의 간곡한 뜻에 따라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입학식은 그저 그랬단다. 다음 주부터 야간 자율 학습이 본격 진행된다고 했다. 1주 주기의 수업 시간표를 설명해 주는데,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적어 보라 했다. 딸은 내 수첩에 표를 그렸다.

    숨이 막혔다. 08시까지 등교해서 21시까지 의무적으로 학교에 남아 있어야 했다. 13시간이다. 금요일만 학원을 전제로 빠질 수 있었다. 딸은 웬만하면 23시까지 남아서 야자하겠다는 의욕을 밝혔다. 그러면 장장 15시간이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수면에 필요한 8시간을 빼면 16시간인데, 그중 15시간을 학교에서 지내는 거다. 남는 건 고작 1시간, 등교 준비에도 빠듯할 터다. 결국 아이는 잠을 줄이는 방법 말고는 없을 것이다.

    수업 시간표는 붕어빵 찍듯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틀이었다. 저마다 특성을 다르게 지닌 아이들이 오로지 하나의 틀에 갇힌 입시 기계로 살아야 했다. 인생에서 가장 푸르른 시기인데, 더 뛰어놀면서 감성을 키우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키우며 꿈을 구상할 시기인데,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그렇게 공부 감옥에 갇혀야 했다.

    딸아이는 지독한 입시감옥에 갇혔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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